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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웃는 아이 04화

욕하는 엄마

by 꽃님

"새롬아, 새롬아."


"으,, 응.. 엄마?"


흐릿하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곱게 화장을 하고 나를 보며 웃고 계신 게 아닌가. 가까스로 잠을 쫓으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연분홍의 고운 비단한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마치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이렇게 편안하고 온화한 엄마를 실로 오랜만에 본다. 엄마의 모습이 낯설지만 싫진 않았다. 엄마는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딸, 내 새끼. 엄마가 많이 미안해..."


엄마는 나무껍질처럼 거친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졌다.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올라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엄마의 손가락에 닿았다.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참고 있는 내게 엄마는 거칠지만 따뜻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갑자기 밝은 섬광 같은 것이 내 방을 비추더니 그 밝은 섬광이 엄마를 감싸 안고 엄마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 엄마!"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흑흑흑."


활화산 밑에서 꿈틀대며 언제고 밖을 향해 뿜어져 나갈 채비를 마친 용암처럼 슬픔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엄마는 없고 밝은 섬광이 들어왔던 창문은 회색빛 커튼이 세상과 단절시키려는 듯 단단하게 쳐져 있을 뿐이다.


'꿈이었구나...'


꿈이었을 뿐인데 현실처럼 괴롭고 가슴 아팠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궁금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꿈은 늘 꾸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엄마한테서 겪는 고달픔이나 서로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그덕 거려서 일거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엄마의 세상을 아빠는 모르겠지만 난 이해하기 힘들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오빠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엄마는 20년이 지나도 오빠를 놓질 못했다. 아직도 오빠가 살아있다고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의 방은 20년 전 모습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오빠의 방을 청소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을 정리한다. 처음에 아빠는 엄마가 너무 괴로워해서 그렇게라도 하면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도, 아빠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엄마는 더 깊이깊이 자기가 만든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을 가두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자물쇠로 꽁꽁 잠가버렸다. 세상과 단절한 체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오빠와 매일 조우하길 바라며 평온함과 고통의 경계가 되었던 그 순간을 붙들고 자신을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와 나는 말려도 보고 거들어도 보고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엄마를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고 으름장을 놓아도 보고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엄마를 원래의 엄마로 돌리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수차례 엄마 치료를 권유했지만 아빠는 차마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낼 수 없다며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람이라고 그것만은 절대 할 수 없다며 엄마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 한 번은 아빠가 오빠 방 물건을 엄마 몰래 정리해서 버리려고 했다. 엄마는 문 앞에 놓아둔 상자가 오빠 물건인 걸 알자마자 크게 화를 내며 상자들을 오빠 방으로 다시 가져가려고 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말리다가 격분한 엄마가 아빠를 향해 신발장 위 화분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화분은 아빠의 이마를 쳤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빠는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열 두 바늘을 꿰맨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날의 일은 아빠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엄마가 무엇을 하든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내가 저 꼴 안 보려면 얼른 죽어야지. 그래야 저 여편네가 저 짓을 못하지."


아빠는 엄마보다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고 했다. 20년을 괴로워하며 사는 아내를 옆에서 봐야만 했던 아빠도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거다. 고통을 멈추게 해 줄 수 없고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심정이 더욱 괴로웠을 것이다. 나도 아빠도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고 그 상처에 서서히 고름이 차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일요일 늦잠을 자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꿈에서 깬 나는 엄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빠 생일날 엄마와 한바탕 한 뒤 3개월이 지나도록 엄마를 만나러 가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람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다 부른 엄마가 케이크 위 촛불을 가는 숨을 불어 간신히 껐다.


"오늘 너도 와서 오빠가 무척 좋아할 거야. 이게 얼마만이니? 계집애 좀 자주 와.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케이크를 잘라 아빠 접시 위에 놓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동안 오지 못했던 나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고는 또 한 조각을 잘라 내 접시에 놓는데


"애가 바쁘니까 그렇지. 우리처럼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들처럼 한가한 것도 아닌데 자꾸 애한테 뭐라고 하지 말어."


하고 아빠가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렇다고 일 년에 한 번뿐인 지 오빠 생일날에 안 와요? 지 오빠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걸 알면 그러면 안 되죠!"


"산 사람이 중요하지 죽은 사람이 더 중요한가? 새롬이도 자기 일이 있는데."


매번 같은 대화가 오고 가고 그걸 들어야만 하는 난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대화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 굴레 같은 의미 없는 의식을 이제는 끝내야 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 이제 이거 그만해. 오빠 생일 챙기는 거, 이제 안 했으면 좋겠어."


이제 막 케이크 한쪽 귀퉁이를 포크로 조금 잘라 입에 넣으려던 엄마가 멈칫하더니 포크를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생일을 그만하라고?"


"응. 이제 그만해. 앞으로 오빠 생일이라고 오지 않을 거야."


"네깟 년이 뭘 안다고 입을 나불대!"


갑자기 사납게 돌변한 엄마 옆에 있던 아빠가 불안했는지 하지 말라는 눈짓을 내게 보냈다.


"엄만, 이게 맞다고 생각해? 오빠는 죽었어. 죽은 사람한테 무슨 생일이 있어? 차라리 기일을 챙겨!"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뭐야? 이 년이, 니 깟게 뭔데 그딴 소리를 해? 개 만도 못한 년이.. 그러고도 니가 동생이야? 오빠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 니가 그딴 소리를 해!"


엄마는 점점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독기 서린 눈빛을 하고 딸에게 토해내는 말들은 더 이상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칼이었다.


"쳐 죽일 년! 우라질 년! 니가 뭔데! 오빠 생일을 없애라 마라야! 니가 뭔데?"


흥분한 엄마는 손을 뻗어 내 머리채를 그러쥐고 악다구니를 썼다. 아빠는 잽싸게 달려든 엄마의 손을 있는 힘껏 펴게 해서 내게서 떼어놓으려 애를 썼다. 힘이라곤 겨우겨우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을 정도만 남은 엄마는 아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서 스르르 떨어져 나갔다. 남아있는 힘 모두가 엄마의 입으로 몰려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보다 더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딸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욕들을 토해내듯 쏟아부은 엄마는 거이 반실신 상태가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버렸다.


"엄마! 나도... 엄마 자식이야! 오빠만 엄마 자식이 아니야! 나도... 나도... 엄마 자식이라고! 지금 살아있는 엄마 자식이라고! 왜 나는 안 봐주는 건데? 왜? 왜!"


"뭐? 이년아?"


"우리도 살아야 될 거 아냐? 20년이야! 엄마 이렇게 우릴 괴롭힌 세월이 20년이라고! 아빠를 봐! 왜 이렇게 살아.. 남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래도 되는 거잖아, 엄마!"


"나가! 너 같은 년은 이제 식구도 아니야! 어떻게 오빠를 잊어! 어떻게! 그 어린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일만 안 갔어도 가람이 옆에만 있었어도 우리 가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행복하게 살아! 어떻게 우리가 웃으면서 살아! 난 못해, 내 새끼 불쌍해서 난 그렇게 못 해!"


"아빠는! 나는! 우린 안 불쌍해? 그렇게 죽은 오빠만 붙들고 정신 못 차리고 엄마를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빠, 나까지 엄마 눈치 보면서 죄인 프레임 씌워서 살게 하는 건 그건 안 불쌍해?"


"그래서 내가 뭐 해 달랬니? 내가 니들한테 뭘 어떻게 힘들게 했니? 나는 그저 내 새끼 불쌍해서... 내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엄마! 이제 그만하자. 오빠 이제 그만 보내주자. 응? 제발 부탁이야. 엄마.."



엄마와 다투고 난 후 아빠는 내게 계속 전화를 걸어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다. 엄마를 이해하길 바란다는 말과 아빠도 힘들지만 잘 버티고 있으니 나도 잘 버텨주길 바란다는 말을 하고 끊곤 했다. 꿈에서 만난 엄마만큼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오빠가 죽기 전 엄마는 나에게 미소를 보였던 적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 한편에 남겨진 엄마와 좋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한 엄마를 영원히 외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엄마를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꿈 때문에라도 왠지 엄마를 보러 가야만 할 것 같았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엄마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테이블 위와 바닥에 소주병들이 뒤엉켜 널브러져 있다. 엄마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거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빠의 소리 같기도 한데 어디서 들리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오빠 방문을 열어 보았다. 오빠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있는 아빠 배를 깔고 앉은 엄마가 아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 엄마를 잡아당겨 바닥으로 밀쳤다. 아빠는 몹시 괴로워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고 바닥에 눕혀진 엄마는 일어나 다시 달려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엄마를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막아섰는데도 막무가내로 아빠한테 돌진하려고 했다. 서있기 조차 힘든 엄마한테서 나오는 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셌다. 상황은 긴박했다. 아빠는 층격으로 숨도 돌리지 못하는 것 같았고 엄마는 나를 밀치고 아빠한테 가려고 힘을 쓰고 있다. 나는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괴물로 변한 엄마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간신히 엄마를 방에서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했다. 무섭게 방문을 두드러며 문을 열라는 엄마는 경찰이 와서 제지를 하고서야 진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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