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시의 불빛과 사람들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서울의 밤거리는 매우 매혹적이다.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고, 네온사인과 LED 간판들이 밝게 빛나며 거리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인 말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나를 보자 번쩍 손을 들어 “여기”하고 소리치는 숙영이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어”하고 걸어갔다. 선희가 야들야들 익은 고기를 집게로 들어 뒤집으며 나를 한번 보더니 씩 웃는다. 나는 재킷을 둘둘 말아 비닐봉지에 넣고 단단히 매서 의자 속으로 넣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좀 나와라!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서 나중에 길 가다 만나면 못 알아보겠다.”
선희가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가위로 썽둥썽둥 자르고 내 접시 위에 놓으며 한 소리했다.
“알았어. 자주 나올게.”
사실 접시에 있는 고기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옷을 벗는 내내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희의 핀잔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쌈도 싸지 않고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꼭꼭 씹을 때마다 터지는 고기의 육즙이 입안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내 허기를 더욱 부추겼다. 선희가 주는 대로 고기를 집어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고팠다는 걸 잘 몰랐는데 고기 냄새를 맡는 순간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숙영이가 따라준 맥주도 한 번에 다 마시고 ‘꺽’ 트림을 세차게 한 다음 다른 사람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야, 굶고 다니니? 좀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선희가 급하게 먹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천천히 먹으라고 말하면서도 아기새 입안에 먹이를 넣어주는 어미 새처럼 연신 고기를 구워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세 친구는 며칠을 굶고 다닌 사람처럼 고기를 먹는 나를 신기함 반 걱정 반인 얼굴로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고기로 채우고 조금씩 이성이 돌아올 때쯤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호호, 내가 너무 먹기만 했나?”
“어, 아예 고기 판까지 씹어 먹을까 봐, 보고 있었어!”
“요 며칠, 좀 먹질 못했거든.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나 봐.”
“왜? 무슨, 스트레스받는 일 있었어?”
“으, 응... 조금.”
“아무리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인사는 좀 하고 우리 얼굴도 좀 봐주고 먹지. 놀랬잖아!”
“미안, 미안. 좀 봐주라. 너희들 보니까, 마음이 정말 편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 봐.”
“암튼, 이렇게 보니까 좋다. 고기를 통으로 먹으면 어떻고 고기 판을 씹어 먹으면 어때? 우리 사총사가 이렇게 다시 뭉쳤는데, 안 그래?”
신이 난 선희가 맥주를 한 잔씩 컵에 따르며
“자, 우리 사총사를 위하여. 누리자!”
하고 잔을 높이 쳐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선희를 따라 잔을 들어 서로 맞대었고 뒤따라 나도 잔을 들어 친구들의 잔에 내 잔을 부딪치며
“그래, 오늘만큼은 세상 걱정 다 잊고 누리자!”
라고 말하고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들어가는 맥주 맛은 정말 끝내줬다. 식당에서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2차로 작은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곳으로 가서 떡볶이, 순대, 호떡을 먹으며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의 수다 보따리를 한껏 풀어냈다. 종이컵에 반으로 접어 넣어준 호떡을 받고 호호 불며 막 먹으려던 찰나 건너편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서 있는 여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반바지와 반팔 차림의 깡마른 여자 아이의 뒷모습이 낯이 익었다. 시계를 보았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저 아이는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아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길을 건넜다. 인형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아이는 작은 인형들이 가득 들어있는 기계 앞에서 인형을 뽑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내가 뒤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조용히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혹시...”
무심하게 뒤를 돌아본 여자아이는 지우였다.
“선생님.”
“지우야!”
너무 놀라서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우는 환하게 웃으며 날 반기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왜 오셨어요?”
“지우야! 너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랑 같이 왔어?”
“아뇨. 저 혼자예요.”
“으응? 혼자라고? 혼자 밖에서 놀기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니?”
“지금 몇 신데요?”
“지금... 10시 넘었지.”
“아, 벌써 그렇게 됐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지우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저 이 인형 한 개만 뽑아주세요. 돈은 제가 다 드릴게요. 저 곰돌이 인형 꼭 뽑고 싶어요.”
천진난만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지우는 환하게 웃고 서서 내게 오백 원짜리 동전들을 보여주며 인형을 뽑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다.
"지우야, 집에 가자."
난 지우를 데리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우는 집에 가자는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인형 뽑기 기계 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그거 저 주시면 안 돼요? 배 고파요."
갑자기 지우가 내가 들고 있던 호떡을 보더니 달라고 했다. 난 지우에게 호떡을 건넸다. 배가 고팠던지 지우는 호떡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지우야, 집에 가자. 선생님이 데려다줄게."
"선생님. 저... 선생님 집에 가면 안 돼요?"
"선생님 집에? 왜? 집에 가기 싫어?"
"음... 네..."
"집에 왜 가기 싫은지 물어봐도 돼?"
"엄마가 때려요. 공부 안 한다고 욕하고 화내고 막 때려요.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지우의 말을 듣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지우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지우 팔과 다리 곳곳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이 시간까지 밥도 못 먹고 여기서 인형 뽑기를 하고 있었다니 밤거리는 여자 아이에게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긴 유흥주점도 많고 술을 마시는 거리기 때문에 이런 곳에 지우가 있는 것이 몹시 걱정됐다.
"지우 할머니 댁은 어디야? 할머니 집에 갈래?"
나는 어떡해서든 지우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할머니 집은 멀어요. 시골이요. 그리고 할머니 집은 가기 싫어요. 할머니도 저 싫어해요."
"지우야, 무슨 일로 엄마가 그러신 건진 잘 모르겠지만 지우가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면 엄마가 걱정이 많으실 거야. 선생님하고 같이 집에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
"선생님은 저희 엄마를 잘 모르세요. 지금 집에 가면 엄마는 밤새도록 저 때릴 거예요."
3월이지만 밤 기온은 낮아 쌀쌀했다. 반바지와 반팔을 입은 지우가 추울까 봐 재킷을 벗어 지우에게 입혔다. 그러고는 지우 손을 잡았다. 혹시나 지우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갈까 봐 불안했다. 건너편에 있던 친구들이 오더니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친구들에게 오늘은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고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지우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배가 고플 지우가 먹을 게 있나 찾아보았다. 냉장고 안엔 생수와 계란뿐이었다. 냉동식품이라도 있는지 찾아봤다. 냉동식품은 없었다. 그동안 난 음식을 챙겨 먹는 즐거움이 없었다. 주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마저도 귀찮아 생수를 대신 마셨다.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음식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먹는 반복적 행위라고만 여겼다.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를 꺼내 계란프라이를 해서 주었다. 지우는 계란프라이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오늘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우는 어떻게 됐을까? 그냥 시간을 조금 때우다가 집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밤거리를 헤매다가 안 좋은 일을 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그래도 지우어머니한텐 알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지우 부모님은 걱정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지우 어머니한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우연히 지나다가 길에서 지우를 만났어요.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지우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희 집에 데리고 왔어요. 걱정하실까 봐 연락드립니다.
지우는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없어져서 너무 놀랐어요.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선생님 문자를 보게 됐어요. 지금 데리러 가겠습니다.
어머니, 지우 막 잠들었어요. 오늘은 그냥 재우고 내일 아침에 지우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선생님께 폐가 되는 건 아닌지. 너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여기서 재울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집에 가지 않겠다는 걸 겨우겨우 설득했다. 지우 집에 다다르자
"선생님. 다시 볼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
"그럼. 다시 볼 수 있지."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해주신 계란프라이 진짜 맛있어요."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난 지우 휴대폰을 달라고 하고 내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지우에게 휴대폰을 주며
"보고 싶을 때 전화해."
라고 웃으며 말했다. 문이 열리고 지우어머니는 지우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나를 보며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했다. 난 괜찮다고 말하고 인사를 한 후 돌아섰다. 문이 닫히고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간밤에 지우가 엄마한테 맞았다는 말을 들어서 혹시나 맞는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현관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려고 애썼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12시가 조금 넘어 지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전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지우가 선생님 힘들게 하진 않았나요?"
"네,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말도 잘하고 제 말도 잘 들었어요. 마음 쓰지 마세요."
"다행이네요. 안 그러던 아이가 사춘기가 왔는지 말을 잘 안 들어요. 지우가 선생님이 좋은가 봐요. 선생님하고 공부하고 싶다네요. 혹시 다시 와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럼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그간에 수업을 하면서 어느새 정이 들기 때문이다. 지식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주기 때문에 이별하게 되면 실연이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우울감이 지속된다. 다시 지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지우 어머니의 무례했던 말들은 싹 다 잊어버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다.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닌 오늘만큼은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씹는 즐거움을 느껴 보고 싶다. 어플을 켜고 콧노래를 부르며 무엇을 먹을까 음식 사진을 본다. 알록달록 초밥이 눈길을 끌었다. 윤기 나는 흰쌀밥 위에 신선한 생선이 얹혀 있고 연어는 부드럽고 기름진 살결을 자랑하며, 그 위에 얇게 썬 레몬 조각이 살짝 얹혀 있어 상큼한 향이 퍼지는 듯하다. 참치는 붉은빛을 띠며,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바다의 풍미가 느껴질 것만 같다.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사라질 것 같은 초밥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