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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마우스의 죽음

by 꽃님 Jan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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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이거 보세요."


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지우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지우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내 손을 잡아끌며 방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오늘따라 지우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방 한쪽 구석에 있는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를 열었을 때 초롱초롱한 작은 생쥐의 얼굴이 들어왔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작은 생쥐를 꺼내 자랑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지우는 눈을 반짝이며 말문을 열었다.


"오, 그게 뭐지?"


나는 관심을 보이며 지우에게 다가갔다.


"이건 팬더마우스에요!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주셨어요."


지우는 팬더마우스 두 마리를  손바닥 위에 놓고  웃었다.


"너무 귀엽죠? 팬더와 같은  빛깔을 가지고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귀엽네! 지우야, 엄마가 널 많이 생각해 주신 것 같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지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선생님, 얘는 꼬미고요. 얘는 초코예요 "


"정말 귀여운 이름이네. 지우는 친구들이 생겨서 좋겠다."


"네. 귀여운 친구들이 생겼으니까 이제 혼자서 외롭지 않아요.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잘됐다. 지우야. 잘 돌봐주도록 해. 지우는 정말 잘할 거야"라고 칭찬했다.


지우는 그 칭찬에 얼굴이 밝아지며 말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앞으로 꼬미와 초코랑  함께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작은 팬더마우스는 지우에게 큰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지우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수업을 하러 갈 때마다 지우는 꼬미와 초코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게 검사라도 받고 싶었는지 이 작은 팬더마우스들이 한 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난 칭찬을 해주었다. 지우가 팬더마우스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이리 와보세요."


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이니, 지우야?"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우를 따라갔다.


지우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팬더마우스가 죽었어요. 먹이를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상자 안을 바라보았다. 한 마리는 몸의 절반이 없이 말라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바짝 말라있었다. 두 마리가 서로 물어뜯기라도 한 듯 너무나 참혹한 모습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우야... 이건 정말 슬픈 일이구나.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지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그냥 생쥐일 뿐이에요."


나는 지우의 반응에 당황하며 말했다. 그동안 지우가 팬더마우스들에게 쏟았던 정성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서 지우는 몹시 실망하여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우는 너무 아무렇지 않다.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말하고 있다.


"지우야, 생명은 소중한 거란다. 작은 생쥐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해."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선생님. 다음에는 더 잘 챙겨줄게요."


지우는 팬더마우스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지우야, 얘네들은 죽었는데 왜 계속 그냥 두는 거야?"


지우가 죽은 동물을 그냥 방 안에 방치한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한테 말하면 혼 날 것 같아서요. 내가 얘네들 죽였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


"엄마가 어떻게 얘네들 죽은 걸 모르셔? 방에 들어오실 거 아냐?"


"엄마는 얘네들 싫어하세요. 징그럽다고 못 봐요. 방에 들어와도 이쪽은 안 보세요."


"그래도 이대로 두는 건 아닌 것 같아. 계속 엄마한테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치우도록 하자."


"안 돼요! 그럼 저 혼나요. 엄마한테 맞는다고요!"


지우가  울먹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지우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생명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지우야, 우리 얘네들 장례식을 치르자. 작은 상자 있니?"


"장례식이요?"


"응,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장례식을 해주는 거야. 이대로 두면 너무 불쌍하잖아."


"네, 알겠어요. 상자는 찾아볼게요."


지우는 방 안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어디선가 뚜껑에 예쁜 리본이 달린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난 상자 안에 톱밥을 깔고 그 위에 바짝 말라 납작해진 두 마리의 팬더마우스 를 놓고 상자 뚜껑을 닫았다. 마침 지우 어머니도 안 계셔서 지우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지우네 아파트는 조금 오래돼서 지우네 베란다 뒤쪽으로 숲 같은 정원이 있다. 그곳으로 가서 지우가 가져온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상자를 넣었다. 흙을 덮으려는데 그냥 물끄러미 보던 지우가 옆에서 패랭이꽃을 조금 꺾어와서 상자 위에 올려주었다.


"우리 꼬미와 초코에게 작별 인사 할까?"


내가 먼저 작별 인사를 했다.


"꼬미야, 초코야. 그동안 고마웠어. 끝까지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


그리고 지우를 바라봤다. 그러자 지우가


"꼬미야... 초.. 코야... 그동안 고마웠어. 미안해! 너희들이 이렇게 빨리 갈지 몰랐어. 흑흑... 내가..."


말을 하던 지우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리며


"정말 미안해. 내가 더.. 잘... 돌봐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어. 하늘나라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행복하게 살아. 알았지?"


소리 내서 흐느껴 울면서 지우는 정성스럽게 흙을 덮었다. 그리고  다른 동물이 이 가엾은 작은 동물들을 파헤치지 못하게 발로 꼭꼭 밟았다. 지우는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어쩌면 팬더마우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잘 돌보지 못해서 동족포식이 일어났고 그 광경을 지켜봤던 지우가 큰 충격을 받아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안한 장례식이 지우에게 더 큰 죄책감을 갖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별하는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우가 자라면서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지우도 느끼길 바란다. 내가 아끼고 정성을 들인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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