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어디로 간 걸까?'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지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보아도 휴대폰 속 발송음만 무심하게 울릴 뿐, 지우의 밝은 음성은 들을 수가 없다. 제발 별일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도하듯 휴대폰을 두 손으로 포개어 꼭 쥐었다. 버스가 지우네 아파트 정문에 서자마자 난 쏜살같이 내려 잰걸음으로 지우네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창백한 얼굴을 한 지우 어머니가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선생님, 우리 지우 별일 없겠죠? 우리 지우 어떡해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흑흑."
지우 어머니가 나를 보자 폭풍 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지우 괜찮을 거예요. 친구 집에서 놀고 있을 수도 있어요. 어머니께 혼 날까 봐 연락을 안 받은 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
지우 어머니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 주방의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아 지우 어머니한테 건넸다. 물 한 잔을 받아 든 지우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한두 모금 마시더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 보였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나를 바라보는 지우 어머니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처럼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오른손을 가슴에 대었다.
"실은... 지우가... 조울증을 앓고 있어요."
"네? 조울증이요?"
전혀 몰랐다. 처음 지우를 만났을 때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지만 점점 밝은 아이로 변해서 난 그저 지우가 낯을 조금 가리나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지우가 조울증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우는... 전 전혀 몰랐어요."
지우 어머니는 내 말을 듣더니 나를 데리고 지우 방으로 갔다. 지우 어머니는 커다란 방 안 한가운데 쓸쓸히 놓여 있는 지우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책상 서랍을 열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뚜껑이 있는 네모나고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어 내게 보여줬다. 그 작은 상자 안에는 작은 콩알 크기의 노란 알약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지우가 먹던 약이에요."
"지우가 이걸 왜 책상 서랍 속에 둔 거죠? 어머님이 주신 거예요?"
"그게... 제가 지우한테 하루에 한 알씩 먹으라고 준 건데 그동안 먹지 않고 여기에 모아 두었지 뭐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자기 통제력을 잃어요. 지우는 아직 어려서 어른보다 훨씬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어요. 가끔 혼자서 돈을 가지고 나가서 돌아다니면서 다 쓴 적도 있어요."
문득, 얼마 전 늦은 밤 서울 한복판에서 지우를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지우는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서 있었다. 그날 지우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조울증 때문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지우의 변화가 모두 약을 먹지 않으면서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아이를 잘 못 봤어요. 지우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무심했어요."
"아니에요. 어머니."
"지우가 조울증 증상을 보인 게 작년 이맘쯤이에요.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요. 우리 지우, 혼자서 한글을 뗐거든요. 그런 지우에게 남 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육에 열을 올렸죠. 가르치는 대로 다 배웠어요. 저는 점점 더 욕심이 생겼어요. 우리 지우를 훌륭하게 키워서 좋은 대학에 보내고 유학까지 생각을 했었죠. 그 어린 걸... 6살 때부터 과학영재원을 보내고 영어 유치원을 보냈죠. 지우가 무척 좋아했어요. 잘 따랐고 다녀오면 재밌다고도 했고요. 그래서 일주일 플랜까지 다 짜놓고 본격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주말이면 여기저기 체험하러 다녔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원 스케줄로 빡빡하게 채워졌죠. 그때 지우가 싫다고 했으면 전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지우가 원했다고요. 지우가 정말 좋아하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가 영재라고 생각했어요."
약상자를 들고 지우 어머니는 거실로 나왔다. 나도 지우 어머니를 따라 거실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지우 어머니는 휴대폰을 한 번 보더니
"애 아빠... 문자가 왔네요."
라고 말했다. 지우 어머니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휴대폰을 뒤집어서 탁자 위에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 탓만 하고 있어요. 애 아빠란 사람이...."
지우 어머닌 이맛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듯 휴대폰을 힐끔 쳐다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새벽 6시에 깨워서 책을 읽히고 수학 문제와 과학 문제를 풀게 했죠. 유치원을 다녀와선 계속 학원을 갔어요. 그렇게 해서 지우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이미 방정식까지 다 풀었으니까...."
지우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른 건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힘겹게 입을 떼었다.
"아이를 계속 다그쳤던 것 같아요. 학교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지만 제가 막았어요. 학교 안에서만 친구들과 놀고 집에 와서는 공부만 하게 했어요. 어느 날 지우에게 이상이 있다는 걸 작년 담임 선생님이 알려줘서 알게 됐어요. 아이가 교실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거나 수업 중에 갑자기 큰소리로 말하고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 자기 말만 계속한다고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조울증이라고 하더군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제가 아이를 망친 것만 같아서 괴로웠어요. 죽고 싶었죠. 꽤 오래전부터 증상을 보였을 거라고 했는데 전 진짜 몰랐어요. 그 뒤로 모든 학원을 다 끊고 논술 수업과 바이올린만 배우게 했어요. 아이의 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타 오는데 지우가 한 달 정도 약을 안 먹은 것 같아요.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우리 지우... 우리... 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죠?"
지우는 괜찮을 거다. 내가 본 지우는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절대로 잘못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었다.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확신으로 잠시 둔갑한 건지도 모르겠다. 재잘재잘 떠들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던 지우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지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본다.
지우 어머니가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며 급히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 선생님 지우 찾았어요."
" 그래요? 지우 지금 어딨 어요?"
"경찰서에 있대요."
"네? 경찰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