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지우가 우릴 보자 달려와 지우 어머니에게 안겼다.
"지우야 괜찮아? 엄마 봐봐. 어디... 어디 다친 덴 없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지우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난 달려오는 내내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혹여라도 지우가 잘못됐을 경우를 생각했다. 그럴 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제발 그저 지우가 지갑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길을 잃어서 경찰서를 갔기를 간절히 바랐다.
"안녕하세요. 지우 어머니신가요?"
경찰관이 다가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제 딸 지우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지우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잠시 전에 신고를 받았습니다. 한 식당 주인이 지우와 남자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신고를 했습니다."
"남자요?"
지우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경찰관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식당 주인에 따르면, 지우가 그 남자와 함께 들어와서 저녁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갖다 주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껴서 저희에게 신고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건가요?"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고를 받고 저희가 즉시 출동해서 그 남자를 조사했습니다. 다행히도 별다른 위협 요소는 없었으며, 단순히 지우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 남자에게 주의를 주고,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경고했습니다."
어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경찰관의 손을 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우를 잘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경찰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우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지우 어머니는 지우를 안고 경찰서를 나서며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여기까지 같이 와주시고.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괜찮아요. 별말씀을요. 지우가 안전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지우 어머니와 지우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도 곧바로 택시를 탔다. 마음 졸였던 시간들이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지나고 나니 묵직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네온빛을 뽐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을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자전거 태워 줄까?"
처음 보는 오빠가 다가와 말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천진난만했던 일곱 살의 난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탔다. 땅거미가 지는 저녁이었다. 그 낯선 오빠는 내 오빠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였다. 날 태우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친절하고 재밌기까지 한 낯선 오빠가 우리 동네를 지나 다른 곳으로 자전거 방향을 틀었다. 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이 마냥 신나서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고 난 그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 집에 갈래."
낯선 오빠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앞으로만 달리기 시작했다. 난 더 큰소리로 말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낯선 오빠는 조용히 자전거 페달만 돌렸다. 무서움에 난 울음을 터뜨렸다. 몸을 흔들고 발로 자전거를 차며 무서움이 커져갈수록 더욱 거세게 울며 몸을 흔들었다.
"왜 그래! 가만히 있어!"
자전거가 좌우로 흔들리며 넘어질 듯 말 듯 앞으로 가고 있었다. 얼마 가다 자전거를 멈춘 낯선 오빠는 그대로 날 밀쳐내고 혼자 가버렸다. 혼자가 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캄캄한 밤, 논길이었다. 다행히 달빛이 밝아 주변의 사물들이 조금씩 보였다.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면서 아무도 없는 논길을 혼자서 걸었다. 둥글고 커다란 달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무서움이 엄습해 와도 저 달이 날 지켜줄 거라고 의지하며 계속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고 배도 고파왔다. 그래도 멈추면 안 될 것만 같아서 계속 어딘지도 모를 이 길을 계속 걸었다. 울 힘도 걸을 힘도 거의 없어질 때쯤 저기 멀리 사람의 인기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롬아!"
오빠였다.
"오빠!"
오빠는 날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너 왜 여기 있어! 엄마랑 아빠랑 얼마나 찿아다녔는데! "
나도 오빠한테 안겨서 안도와 반가움의 울음을 쏟아냈다. 오빠는 날 업고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엄마, 아빠도 날 안고 울었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하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겨우겨우 택시에서 내렸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땐 몰랐는데 정말 위험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난 그날 몹쓸 짓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족을 영영 보지 못했을지도. 집안에 들어와 간신히 소파에 앉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우 어머니였다.
"선생님. 죄송해요. 지우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는데 말을 안 해요. 자꾸만 선생님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해요."
"저희 집이요?"
"네... 왜 그 남자를 만난 건지. 갑자기 왜 집을 나간 건지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안 해요. 막무가내로 선생님 집에서 하룻밤만 자고 싶다고 저렇게 떼만 쓰고 있어요."
난 지우 어머니한테 지우를 우리 집으로 오게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우 어머니는 지우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지우가 왔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밝게 웃으며 지우가 날 안았다. 작은 가방을 들고 온 지우는 내가 앉으라고 한 의자에 앉더니 가방 안을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꺼내 보이며
"선생님 거예요."
했다. 작고 귀여운 곰인형이었다.
"저, 이거 제가 직접 뽑았어요."
"그래?"
"처음이에요. 인형 뽑은 거요. 선생님 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고마워. 정말 예쁘네."
"선생님. 저 여기 오게 허락해 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긴. 나도 지우와 함께 있고 싶었어."
진심이었다. 지우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오빠를 보는 것 같았다. 한 번쯤 기회가 된다면 지우와 같이 지내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배 안 고파? 우리 뭐 시켜 먹을까?"
"선생님. 계란프라이 해주세요. 그때 해주신 것처럼요. 그때 해주신 계란프라이 정말 맛있었어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맛있는 계란프라이랑 김치볶음밥 해줄게. 어때?"
지우를 보며 찡긋 웃어 보였다. 지우와 난 김치볶음밥과 계란프라이 여섯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지우는
"선생님. 저 엄청 먹었나 봐요. 배가 불룩해요."
자기 배를 통통 두드리며 웃었다. 열두 살 아이라고 하기엔 그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지우야. 오늘 많이 피곤했지?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어나면 어디 놀러 가자."
난 지우가 어디를 다녔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오늘 하루 고단하고 힘들었을 지우를 편히 쉬게 하고 싶었다.
"네. 선생님."
지우는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서 잠옷을 꺼내 입고 칫솔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가 이를 깨끗하게 닦은 후 침대에 누웠다.
"선생님, 저랑 같이 자면 안 돼요?"
난 침대 아래 이불을 펴고 누웠다. 지우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작은 스탠드 조명만 켜두었다.
"잘 자. 지우야."
"네.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조용한 방안 오늘 하루 고단했던 두 사람의 얕은 숨소리가 방안 공기 속으로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선생님... 그 아저씨 채팅방에서 만났어요."
지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중학생이라고 해서 말이 잘 통했거든요."
난 조용히 지우의 말을 듣기만 했다. 침대 위에 누운 지우가 내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고 나도 지우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워 지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항상 날 응원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못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 말이 좋았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