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안 된다니까. 어떻게 아파트에서 그걸 키우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주방에 서서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오빠의 손에 웬 상자가 들려있었다.
"엄마, 제발요. 키우게 해 주세요. 네?"
엄마와 오빠의 팽팽한 기싸움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난 엄마와 오빠를 번갈아 보며 서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이 주신다고 했어도 안 된다고 했어야지."
엄마는 프라이팬에 빨간 진미채를 반찬통에 담으면서 오빠를 노려보았다.
"엄마, 제가 밥도 주고 똥도 다 치울게요. 제발 키우게 해 주세요. 제발요!"
오빠 손에 들려있는 상자 안에 있는 것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던 난 엄마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오빠 옆으로 다가가 상자 안을 힐끔 쳐다봤다. 그 안엔 노랗고 작은 생명체들이 머리를 서로의 날갯죽지에 묻고 떨고 있었다.
"안 돼!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서 다시 보낸다고 할 거야."
털이 몽실몽실 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은 가끔 삑삑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자꾸만 그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다 한 마리가 배가 고팠는지 고개를 들더니 하늘을 향해 삑삑 울기 시작했다. 남은 한 마리도 덩달아 삑삑 삑삑 따라 울었다. 엄마는 반찬을 다 만들었는지 그릇들을 정리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틈을 타서 오빠한테 바짝 붙어 서서 물었다.
"이게 뭐야?"
나의 질문에 오빤 힘없이 대답했다.
"병아리..."
여덟 살 내 인생에 병아리를 처음 본 나는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자연관찰 책에서만 보던 병아리의 실물을 보자 신기하고 설렜다.
"너무 작고 귀엽다!"
엄마가 안방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통화하던 엄마는 문을 열고 나오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오빠를 쳐다보며
"선생님과 통화했어. 내일 보낸다고 했으니까. 갖다 드리고 와. 알았지?"
오빠는 더 이상의 저항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오빠가 병아리 가지고 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아빠 옆에서 난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병아리? 어디서 가져왔는데?"
"학교에서."
그러자 엄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면서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왔다.
"학교에서 왜 병아리를 줘?"
아빠가 묻자, 난 이때다 싶어서 오빠한테 얼른 말하라고 발로 오빠 발을 툭툭 찼다. 그러자 오빠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방과 후 생명과학 선생님이 주셨어요."
"그래? 옛날엔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았었는데 요즘엔 학교에서 이런 것도 주는구나. 약한 애들이 많아서 금방 죽었는데... 아빠도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 왔는데 세워둔 상틈에 껴서 죽었지..."
아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얼른 끼어들었다.
" 내일 다시 보낸다고 했어요."
엄마의 말에 오빠와 난 동시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냥 키우게 두지, 뭘 또다시 보내? 애들한테 교육도 되고 좋은데."
"안 돼요! 재네들 다 크면 닭이 될 텐데. 어떻게 아파트에서 닭을 키워요!"
"닭 되기 전에 시골 어머니한테 보내면 되지. 그동안에 애들이 키우면 되겠고만."
교육이 된다는 말에 엄마도 솔깃했는지 아빠와 한참의 대화 끝에 2주만 키워도 된다고 허락을 했다. 오빠와 난 신이 나서 대충 밥을 먹고 쪼르르 병아리들이 있는 오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상자 안에서 병아리들이 자고 있었다.
"오빠, 얘네들 이름이 뭐야?"
"얘는 삑삑이고 얘는 빽빽이야."
"그래? 둘 다 똑같이 생겼는데 누가 삑삑이고 누가 빽빽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
"조금 달라. 얘는 머리에 진한 노란 털이 있어. 진한 노란 털이 있는 애가 삑삑이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빠 말처럼 정말 한 마리는 머리털이 조금 더 노랬다. 그래도 두 마리가 똑같이 생겨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린 2주 동안 병아리들을 키울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다. 오빠의 표정이 밝아져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빠는 매일 병아리들에게 나는 연습을 시켰다. 처음엔 낮은 상자에서 밀어서 땅에 떨어지게 하다가 조금씩 높이가 있는 상자로 바꾸면서 연습시켰다.
"오빠, 병아리들이 날 수 있어?"
"날개가 있으니까, 어려서부터 꾸준히 연습하면 날 수 있지 않을까?"
"닭은 못 날잖아?"
"처음부터 나는 연습을 못해서 못 나는 걸 거야 우리도 처음엔 자전거를 탈 줄 모르지만 계속 연습해서 탈 수 있게 되잖아. 얘네들도 어려서부터 계속 나는 연습을 하면 날지도 몰라."
오빠가 병아리들을 의자에서 밀었을 때 병아리들이 날갯짓을 하며 40cm 정도 날았다. 오빠의 비행 훈련 덕분인지 1주일이 지나자 병아리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걷는 속도가 제법 빨라지고 날갯짓도 힘찼다.
오빠와 난 병아리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집 안에만 있는 병아리들에게 바깥공기를 맡게 해주고 싶었다. 놀이터에서 병아리들은 신 나서 뛰어다녔다. 다행히 놀이터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나보다 조금 어린아이 2명과 어른 1명만 있었다.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로 추정되는 어른도 신기한 듯 우리 병아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한 봄햇살을 받으며 병아리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바닥도 쪼아보고 우릴 알아보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매 한 마리가 순식간에 삑삑이를 낚아채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다. 빽빽이는 너무 놀라 후다닥 미끄럼틀 아래로 몸을 숨겼다. 난 그 광경이 너무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넋 놓고 보고만 있었다. 오빠는 필사적으로 껑충껑충 뛰며 삑삑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삑삑이는 이미 오빠 키보다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삑삑이는 살기 위해 세차게 날갯짓을 해대었고 그 바람에 매는 삑삑이를 놓치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삑삑이는 아주 빠르게 미끄럼틀 아래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오빠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과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오빠의 비행 훈련이 삑삑이를 살렸다. 날기 위한 비행훈련이 살기 위한 비행훈련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오빠는 병아리들을 더욱 열심히 비행훈련을 시켰다. 식탁 위에서 밀면 거실 베란다 끝까지 날았다. 오빠와 난 머지않아 이 병아리들이 하늘도 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병아리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고 베란다 전체가 닭똥으로 뒤덮여서 엄마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버렸다. 결국 삑삑이와 빽빽이는 시골로 보내졌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노트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후훗 헛웃음이 나왔다. 오빠도 알았을 텐데. 오빠가 생의 끈을 놓을 때 잠깐이라도 이 문장을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날 우린 생생하게 보았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생과 사의 운명은 아주 짧은 시간에 결정된다는 것과 죽기보단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살아가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고 우린 이 삶을 잘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나와 오빠는 잘 알고 있었다. 오빠의 선택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죽지 못해서 사는 거야! 죽을 수만 있다면 나도 그만 가고 싶어!"
오빠가 그렇게 되고 엄마와 싸울 때마다 듣는 소리는 내 뇌를 찌르는 것처럼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엄마의 말들이 나를 점점 병들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엄마, 좀 어때?"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얼굴이 좋아 보였다. 얼굴에 제법 살도 오르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엄마는 내 질문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 치료 다 받고 좋아지면 우리 아빠랑 같이 여행 가자."
엄마는 날 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엄마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엄마는 삶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없는 병든 노인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언젠간 엄마도 마음의 병이 치유가 되면 삶에 대한 기대라는 게 조금이라도 생겨 나와 함께 살아가길 바라본다. 병원을 나와 벚꽃이 만발한 거리를 걸었다. 햇살을 잔뜩 받은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잔뜩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벚꽃을 바라보며 내 몸 안에 봄의 기운을 잔뜩 채우기 위해 크게 숨을 쉬어 본다. 꽤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지우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우가... 우리... 지우가 없어졌어요. 혹시 선생님한테 연락하지 않았나요?"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지우가 아침에 보니 없다고 했다. 반나절이 다 되도록 지우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다급한 지우 어머니의 전화를 끊자마자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우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 나는 급히 지우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