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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님 Feb 21. 2025

그 남자

조용한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지우와 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은 스탠드 불빛이 지우와 나의 얼굴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지우가 입을 열었다.


"그 아저씨도 힘들었대요. 저처럼요."


"그래? 지우... 힘들었니?"


지우 어머니로부터 지우의 병을 듣고 난 후 지우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한 걸까? 자꾸만 지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속물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저... 조울증이래요. 알고 계셨죠?"


"어? 으응..."


"많이 놀라셨죠?"


어둠 속 지우의 눈망울이 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 비밀을 털어놓은 것처럼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 지우에게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제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이것저것 막 시키거든요. 한 번은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막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사람들이 모두 절 쳐다봤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왜 기분이 좋았어?"


"제가 노래를 잘 불러서 모두들 쳐다보는 것처럼 느꼈거든요."


"지우야, 선생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난 문득 지우 방에서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약상자가 생각이 났다.


"네, 선생님."


"왜 엄마가 준 약을 먹지 않고 모아둔 거야?"


지우는 조금 놀랐는지 동그란 눈이 커지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곤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엄마가... 그거... 봤어요?"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는 지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저... 그니까... 솔직히 약을 안 먹었을 때가 더 행복해요."


지우가 이불을 손으로 조금 집어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약을 먹으면 기분이 안 좋아요. 그리고 뭔가 기운도 없고요.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태엽인형 같았어요. 제가 태엽인형이 된 것 같았다고요. 그게 뭔지 아시겠어요? 선생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은 엄마가 준 약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서 잃어버렸어요. 실수였어요. 일부러 그런 게 절대 아니고요."


갑자기 지우 표정이 밝아지더니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 거예요. 내게 용기를 주던 소리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행복했어요. 약을 안 먹었더니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약을 안 먹었던 거구나."


"네..."


"그 아저씨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그게...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오픈 채팅방에서요."


"그게 어떤 방인데?"


"저처럼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방이에요."


"방 이름이 예쁘네."


"그 오빠가... 아니... 그 아저씨가 만들었대요."


"그래? 그 아저씨는 왜 그 방을 만들었는지 혹시 알고 있어?"


"우리들이 천사래요."


"천사?"


"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자기들 삶이 더 값지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거래요. 나쁜 생각을 하다가도 우리를 보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가치는 더 아지는 거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또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음... 다른 친구들이 힘들었던 이야기도 하고... 아저씨가 열심히 치료받고 즐겁게 생활하면 병은 금방 나을 거라고 했어요. 중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거라고 했어요. 힘들면 쉬어도 되고 못해도 된다고요. 그 말이 가장 좋았어요."


"좋은 말이네."


"선생님, 조건이 제아무리 척박해도 얼마든지 딛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대요.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야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말 누가 했는지 아세요?"


"글쎄, 누가 한 말이지?"


"닉 부이치치요."


"닉 부이치치?"


"네.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대요. 3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의 엄청난 사랑과 지원을 받아서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에요. 전 다행히 팔과 다리가 있잖아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서 친구들한테 괴물이라고 놀림도 안 받고 닉 부이치치에 비하면 전 정말 운이 좋은 거죠."


지우의 말을 들으면 그 아저씨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진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에게 중학생이라고 속이고 만난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지고 지우는 조잘조잘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점점 말이 없어졌다. 지우의 잠자는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리기 시작했다. 돌아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편안히 잠을 청하기엔 내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잠을 뒤척이는 바람에 늦잠을 잤나 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이 온통 방안을 휘저어 놓았다. 그 바람에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마셨다. 집 안은 너무도 고요했다. 나 말고 또 한 사람의 인기척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우를 불러 보았다. 화장실을 가보고 작은 방도 가봤지만 지우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급하게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디를 걸까. 간밤에 그 아저씨 얘기를 많이 하다가 잔 게 마음에 걸렸다. 설마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건 아닐까. 지우 어머니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아이가 없어졌으니 지우 어머니한테 연락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전화를 하려다가 지우가 말한 채팅방 이름이 생각이 났다.


'천사들의 합창'


그래, 분명히 그랬다. 난 얼른 채팅방 검색창에 '천사들의 합창'이라고 썼다. 다행히 비슷한 방을 한 개 발견하고 들어갔다. 비밀번호가 없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굴까. 여기에 지우가 있을까? 이제 막 들어왔는데도 그곳에 사람들은 활발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꼬미초코양'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전에 지우가 키웠던 판다 마우스 이름이 꼬미와 초코였다. 그래서 '꼬미초코양'이 지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꼬미초코양: 냠냠! 저 지금 식사 중.

밍밍이: 뭐 먹어?

꼬미초코양: 우리 지금 피자랑 파스타^^

밍밍이: 왕왕!!! 누구랑?

꼬미초코양: 쿄쿄쿄.. 비밀.ㅎ

허그: 요기요!

밍밍이: 앜!!! 대장님? 이거 반칙이다요.

허그: 아핳ㅎㅎㅎㅎ 밍밍이는 다음에.

밍밍이: 아잉. 진짜. 시로요! 어디? 어딘데?

허그: 여기 우리가 지난주 일요일에 먹었던 곳.

밍밍이: 토리요 서울?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최근에 생긴 음식점이고 꽤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꼬미초코양이 지우가 확실하다고 느꼈다. 고민할 틈도 없이 택시를 타고 토리요 식당을 향해 달렸다. 식당 앞에서 택시가 멈췄다.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흥분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떨리는 손으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풍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 벽엔 벽난로가 있고 빈티지 가구들로 가득했다. 가구며 테이블이 온통 체리색이다. 붉은 기운 가득한 식당 안의 분위기는 고급스러우면서도 기품이 느껴졌다. 맛있게 피자를 먹는 지우가 보였다. 그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점점 그들에게 다가가는 나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지우를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전에 얼른 구해야 한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싶었다. 검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린이를 꾀어낸 저 남자를 기필코 내가 잡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며 그 남자 앞에 멈춰 섰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난 그만 주저 않고 말았다.


"오...빠...?"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빠다! 분명히 가람이 오빠가 맞다. 지금 내 앞에 그러니까,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분명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다. 깊은 눈매, 갸름한 얼굴, 오뚝한 코... 어느 곳 하나 오빠와 다른 곳이 없었다. 전부 모든 것이 오빠였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의자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면서도 내 시선은 그 남자, 아니 오빠에게 향해있었다.


"오빠! 가람이 오빠, 맞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오빠를 불렀다.


"괜찮으세요? 전 가람이 아니고 홍준호라고 합니다."


남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죽은 오빠가 살아서 눈앞에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알 나이지만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어서 오빠가 나를 보러 온 건 아닐까 하는 헛돤 희망이 있었나 보다. 그는 오빠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네.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하고 많이 닮으셔서 착각을 했어요."


"괜찮습니다. 갑자기 주저앉으셔서 놀랐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잡아드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요. 안 다치셨죠?"


"네... 괜찮아요..."


"선생님,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저 어떻게 찾으셨어요?"


옆에서 호들갑스럽게 묻는 지우에게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우, 왜 선생님한테 말 안 하고 여기 있는 거니? 얼마나 놀랐는데.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네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거야!"


놀라고 서운한 마음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지우를 다그쳤다. 놀란 듯 지우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해요. 선생님. 잘못했어요."


라고 말했다. 난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어른이 왜 어린아이를 자꾸 만나는 건가요? 경찰관이 다시는 아이를 만나지 말라고 했다는데요. 이게 무슨 짓이죠?"


"그게... 뭔가 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오해요?"


"네. 지금은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일단 식사를 하지 않으셨으면 식사부터 좀 하시죠."


남자는 태연하게 내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다.


"도대체 아픈 아이를 자꾸만 만나려는 저의가 뭔가요?"


"저의요? 그런 거 없어요. 아픈 아이요? 누가요? 지우요?"


"네. 왜 자꾸 지우를."


남자는 들고 있던 포크를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았다.


"지우요? 아프다고요?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지우가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참 좋은 분이라고요."


남자는 물티슈를 꺼내 손을 한 번 닦더니 물 한 잔을 마셨다.


"어쩌면 선생님이야말로 아픈 건지도 모르겠군요!"


"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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