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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by 꽃님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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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처럼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엄마는 눈을 감고 자는 듯하다가 다시 눈을 떠 TV를 봤다. 기운이 없어 그런가 싶어서 얼른 흰 죽을 끓였다. 흰 죽에 야채도 썰어 넣고 소고기도 다져서 넣을까 생각했지만 이틀을 굶은 엄마가 행여 탈이 날까 봐 욕심을 버리고 그냥 흰 죽을 끓이기로 했다. 죽을 끓이는 동안 엄마는 잠깐 내쪽을 쳐다보기도 하고 다시 TV를 보다가 눈을 감기도 했다. 나는 죽을 끓여 그 위에 깨소금을 살짝 뿌리고 간장에 참기름을 살짝 넣어 작은 종지에 담아서 엄마한테로 가져갔다. 거실 탁자에 쟁반을 놓으며 엄마를 깨웠다.


"엄마, 일어나 봐. 죽 먹자."


엄마는 눈을 떠 나와 죽을 번갈아 쳐다보다 가느다란 팔로 소파를 힘겹게 밀어내며 일어나 앉았다.


"엄마, 뜨거우니까 천천히 후후 불어가면서 드셔. 알았지?"


내가 거실 탁자를 엄마 앞에 가까이 밀자 엄마는 허리를 숙여 숟가락을 잡고 죽을 뜨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없어서인지 그대로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그제야 난 엄마가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 걸 눈치챘다. 숟가락을 잡고 죽을 떠서 엄마 입에 갖다 대니 엄마가 죽을 한입 드셨다. 집에 오면 식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엄마는 내가 떠주는 대로 죽을 열심히 드셨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초점 없는 눈으로 TV만 쳐다보던 엄마가 내가 옆에 가서 소파 아래쪽에 앉았을 때 내 어깨를 손으로 살살 쓸어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 나 때문이야. 다... 내... 잘못이야..."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네 아빠도. 너도. 다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내가... 내가... 죄인이야."


"왜 엄마가 죄인이야? 엄마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자꾸만 그런 소릴 해."


"미안해, 미안하다..."


"엄마, 이제 그만해. 누구 잘못도 아냐."


"그때 내가 널 좀 더 봐줬다면... 널 좀 더 편하게 해 줬다면... 내 욕심이었어. 모든 게 널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과거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날 엄마가 했던 일들을 모두 부정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후회하고 있다. 울고 있지만  말라버린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 이렇게 잘 드실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넣어서 더 맛있게 끓일걸. 내일은 삼계죽을 끓일게. 엄마 빨리 기력 회복해서 같이 여행 가자."


엄마는 말없이 옅은 미소를  잠깐 보였다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엄마와 함께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엄마는 바다가 가장 좋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단둘이 오붓하게 여행을 가리라 다짐하며 잠든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다.



"싫어! 안 가! 집에 갈 거야!"


"얘가 왜 이래! 얼른 이거 안 놔?"


"싫어! 안 들어갈 거야! 집에 갈 거야!"


어린 내가 화장실 문을 잡고 버티고 있다. 엄마는 내 손을 화장실 문에서 떼어내려 힘을 쓰고 있다. 엄마가 계속해서 버티고 있는 내 허리를 잡아  끌어당겨 나는 화장실 문을 놓고 말았다. 엄마는 복도로 날 끌고 나와서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하기 싫다고 안 하면 어떡해? 다른 애들은 다 들어가서 잘만 하는데! 왜 너만 안 들어가겠다는 거야!"


화가 나 소리치는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난 그저 훌쩍훌쩍 울 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내 양손을 꽉 잡고 내 자세를 똑바로 세우고 나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그만 울고 얼른 들어가서 수업해! 다시 또 이렇게 엄마 말 안 들으면 그땐 네가 좋아하는 레고도 못하고 책도 못 읽게 할 거야! 알았어? 대답해!"


작은 아이 앞에 엄마는 거대한 거인이었다. 사나운 맹수 같았다. 난 그저 그 두려움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몸을 떨며 지금 참아내지 못하면 내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반항을 포기했다.


"꺽... 꺽... 네..."


울음을 어렵게 참느라 딸꾹질이 나왔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손을 잡고 복도를 지나 영재교육원 문을 열고 창문도 없는 두 평 남짓 교실로 날 밀어 넣었다.


네모난 상자 안에 나는 갇혔다. 작은 방만한 상자 안엔 출입문이 없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고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은 온통 회색빛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벽에서 회색 괴물들이 벽을 뚫고 내게 달려들 것 같아 무섭다. 벽들이 점점 좁혀와 내 몸을 누를 것 같아 숨이 안 쉬어진다. 어디선가 무서운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점점 크게 들려 양손으로 귀를 막고 급기야 바닥에 쭈그려 앉아 비명을 질렀다.


"새롬아! 새롬아!"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한쪽 벽에 누군가 그리기라도 하듯이 문이 그려졌고 문이 열리더니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손을 와락 잡았다.


"엄마?"


엄마였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날 포근히 안아주었다.


"새롬아, 많이 무서웠지?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손을 잡고 빛이 보이는 곳으로 엄마와 함께 걸어 나갔다.


"삐삐삐-삐-삐이 "

시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꿈을 꿨다. 상자 안에 갇힌 어린 날 구해준 엄마를 생각했다. 안락한 안식처 같은 곳. 소중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고 언제든 찾아가서 안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엄마인 것이다. 꿈속의 엄마가 그러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였다. 아침을 일찍 드시는 엄마가 이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생각에 얼른 일어나 주방으로 나가 삼계죽 재료를 준비하고 닭을 삼기 위해 인덕션 위에 물을 담은 냄비를 올려놨다. 그러곤 엄마가 잠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살폈다.


"엄마, 미안. 많이 시장하시지? 나 혼자 살아서 알람을 8시로 해놓은 걸 깜빡했지 뭐야? 엄마 많이 배고팠겠다."


누워있는 엄마 옆에 다가가 앉으려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엄마 얼굴을 비췄다.


"어머, 엄마 눈 부셨겠네..."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닫으려는 순간 조용히 눈을 감은 엄마가  보였다.


"엄마... 엄마?... 엄..."


엄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바다보다 더 깊고 우주보다 더 깊은 영원의 나라로 나만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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