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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by 꽃님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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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거실 한쪽 작은 협탁 옆에 놓인 낡은 가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에서 챙겨온 엄마 가방이었다. 가방 지퍼를 열고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에 장미 문양이 수 놓인 초록색 니트와 부츠컷 스타일의 검정 바지가 나왔다. 그리고 낡은 반지갑.

엄마 생일 선물로 사드린 옷이었다.

엄마 옷을 사드리기 위해 유명브랜드 매장에 들렀다. 나와 매장 직원이 엄마에게 어울릴만한 옷들을 찾고 있었다. 엄마가 입기 편한 옷을 골라 입어보라고 한 것들을 엄마는 모두 싫다고 거절했다. 그러다 엄마가 입어보겠다고 골라온 옷을 보고 나와 직원은 순간 당황하여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가 고른 니트는 몸에 딱 붙는 옷이었고 날씬하고 젊은 여성에게 어울리는 옷이었다. 바지는 나팔바지 모양이었고 게다가 발목이 보이는 부츠컷이었다. 직원이 극구 만류하며


"어머니, 이건 어머니께서 입으시기엔 많이 불편해요. 젊은 스타일이라..."


라고 말했다. 나도 옆에서 직원 편을 들며


"그래, 엄마. 이 바진 고무줄도 없고 불편할 거야. 니트는 너무 딱 붙어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버럭 화를 냈다.


"난 이런 스타일이 좋아! 늙으면 이런 것도 못 입는 거니?"


직원과 난 놀라 어찌해야 할지 몰 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눈치 빠른 직원이


"그렇죠. 어머니, 말씀이 백 번 천 번 맞아요. 호호호. 아유, 우리 어머니 무척 세련되셨다."


하며 얼른 엄마 사이즈의 옷을 찾아왔다. 엄마는 옷을 입고 나와 거울을 보며 밝게 웃었다.


초록색 니트 위로 회한의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처럼 좋아하며 밝은 미소를 띠었던 엄마 얼굴이 떠올라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일어나서 엄마의 초록색 니트와 바지를 입었다. 예전에 엄마가 입었을 땐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튀어나오고 몸에 딱 붙는 니트는 옆구리 쪽 살이 볼록 나왔었는데 내가 입어보니 내 옷인양 잘 맞았다. 작은 방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엄마가 이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왜 웃었는지 알게 되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정말이지 예뻐 보였다.  엄마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 속 엄마를 보며 반가움에, 그리움에 눈물을 쏟는다.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우였다. 슬프고 낮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지우야, 왜? 무슨 일 있니?"


평소와 다르게 힘 없이 날 부르는 지우가 신경이 쓰였다.


"선생님... 아무래도 전... 가망이 없나 봐요. 죄송해요."


갑자스런 말에 당황한 난


"그게 무슨 말이야? 뭐가 가망이 없다는 건데?"


하고 되물었다.


"전... 좋아지지 않을 거 같아요. 다시 공부도 잘할 수 없고요..."


"왜 그렇게 생각해. 시간이 흐르고 다 같이 노력하면 분명히 좋아질 거야."


"선생님... 행복하고 싶었어요..."


"지우야, 앞으로 행복해질 거야. 걱정하지 마."


"어떡해요... 전...... 자신이... 없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선생님..."


"지우야! 왜 그래? 그런 소리 하지 마. 어디야? 지우야! 선생님이 갈게!"


전화기를 귀에 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초인적인 힘이 생긴 걸까? 어느새 지우네 집 안으로 들어와 있다. 지우를 부르며 미친 듯이 이방 저 방을 찾아다니다 거실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 지우가  매달려 있었다. 힘겹게 두 손으로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슬픈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 난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난간에서 풀려나가는 지우의 손을 붙잡았다. 한 손은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한 손은 지우의 팔을 붙잡았다.


"지우야! 절대로 널...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있는 힘을 다해 지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간을 붙잡고 있는 손의 힘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나도 지우도 둘 다 아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다시 한번 지우를 끌어올리기 위해 힘을 써 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새롬 씨! 손 놓으세요!"


누군가 힘없이 풀어지는 내 팔을 붙잡았다. 그 남자, 지우와 함께 있었던 그 남자, 엄마와 이별하고 돌아온 날  집 앞에서 조용히 날 안아주었던 그 남자다!


"당신이....... 왜... 여기에......"


"새롬 씨! 그 손...... 지우... 손... 놓으세요! 제발 내 손을 잡아요."


"안 돼요! 그러면 지우는 죽어요! 절대 못 놔요! 지우... 꼭... 구할 거예요."


"새롬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요! 지우 손 놓으세요. 그래야, 지우도 살고 새롬 씨도 살아요!"


"싫어요! 우리 지우... 구해줘요! 제발요! 부탁할게요."


"새롬아! 새롬아! 제발! 지우 없어! 지우 없다고! 아래를 봐! 보라고! 똑바로 보라고! 지우 없어! 없다고! 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내 손 잡아줘..."


그 남자가 나를 보며 절규하고 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그 벌건 눈동자 가득 호수처럼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 이름을 처절하게 외치며 힘겹게 날 붙들고 있었다.

아래를 보았다.

아래로 축 처져있는 내 팔 끝에 지우는 없었다.

지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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