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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지다

by 꽃님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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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팔을 머리에 대고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내 눈밑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봇물처럼 흐르는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나와 같은 자세로 누워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와 마주한 난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울고 있다. 그런 날 인자한 미소로 보고 있던 엄마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내 한쪽 볼을 어루만진다. 나는 설움이 복받쳐 결국 두 팔을 모으고 엎드려 소리내며 울음을 쏟아냈다. 내 앞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순식간에 덮쳐버린 상실감에 울음이 터져 버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엄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지 마... 내 새끼... 내 강아지..."


라고 말하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러졌다.

슬픔이 날 집어삼켰다. 절망이 내 뼛속 깊숙이 파고들어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난 항상 엄마를 기다렸다. 날 안아주길, '괜찮아'라고 말해주길, 날 바라봐 주길...

기다리면 언젠가는 엄마가 꼭 안아줄 거라고, '괜찮아'라고 말해줄 거라고, 인자한 미소로 날 바라볼 거라고... 그래서 난 계속 기다렸다. 내게 관심도 사랑도 주지 않았던 엄마를 이제는 원망할 시간도 기회도 모두 사라졌다. 날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언젠가는 날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엄마도 변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 기다리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유골함을 안고 화장터를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길 양옆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마지막 꽃잎들이 봄바람에 춤을 추듯 날리고 있다.

따사한 봄볕이 눈부시게 빛나고 이를 시기하듯 매콤한 바람이 한 번씩 세차게 지나간다. 눈앞에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슬프고 비통한 날치고는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날 가시다니... 봄나들이 한번 못 갔는데.'


엄마와 봄날에 꽃구경 한번 못 갔다. 가야지, 가야지 하며 미루다 끝내  가지 못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엄마와 이별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라는 사람은 죽지도 않고 영원히 내 곁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날 수 있었다.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무형의 존재가 돼버리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엄마 이름은 춘식이다. 나는 엄마 이름이 꼭 남자 이름 같다고 놀렸었다. 딸만 다섯인 집안에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를 보고 외증조할머니가 제발 아들 좀 낳으라고 엄마 이름을 춘식이라고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증조할머니는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다음 해 정말 금쪽같은 아들이 태어났다. 남동생 덕에 엄마는 외증조할머니한테 다섯 딸 중에서 가장  예쁨 받으면서 컸다. 엄마는 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녔다. 다섯 딸 중 유일하게 대학교까지 간 것이다. 대학 동아리에서 아빠를 만났고 키가 훤칠하게 잘 생긴 외모에 반해 결혼을 했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깊었다.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자식이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식에게 무척 엄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계획적이고 꼼꼼한 성격 탓에 자식의 공부 시간 관리까지 해가며 매일같이 바쁜 일정을 보냈던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꽃피는 봄에 태어나 봄꽃이 지는  돌아가셨다.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로 맞이했던 봄이 그리움과 기다림이 교차되는 비애의 봄이 되었다.

버스에 올랐다. 앞쪽 좌석에 앉으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얼마 전 지우와 함께 있었던 그 남자다. 남자는 혼자서 맨 뒷좌석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다. 신경이 쓰였지만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이곳에 왜 왔냐고 물어볼 힘도 여유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나도 그 남자처럼 창밖만 쳐다보았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따사한 햇살에 몸이 노곤해진다. 피곤이 몰려와 스르륵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버스는 같이 온 일행을 모두 태우고 나서야 적막한 도로를 향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무도 타지 않은 유령버스 같았다. 버스가 집 앞에 도착하고  손님들은 저마다 내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단  한 사람만 남아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었다. 그 남자다. 그는 천천히 목발을 짚으며 내게 다가왔다. 목석처럼 서 있는 내게 다가와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좀 안아 드려도 될까요?"


그는 한 팔로 날 가만히 안았다. 쌀쌀한 바람 탓에 몸이 떨렸다. 그의 가슴에 안기고 그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때 어디선가 은은한 비누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가 전하는  무언의 위로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우린 말없이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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