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을 머리에 대고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내 눈밑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봇물처럼 흐르는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나와 같은 자세로 누워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와 마주한 난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울고 있다. 그런 날 인자한 미소로 보고 있던 엄마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내 한쪽 볼을 어루만진다. 나는 설움이 복받쳐 결국 두 팔을 모으고 엎드려 소리내며 울음을 쏟아냈다. 내 앞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순식간에 덮쳐버린 상실감에 울음이 터져 버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엄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지 마... 내 새끼... 내 강아지..."
라고 말하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러졌다.
슬픔이 날 집어삼켰다. 절망이 내 뼛속 깊숙이 파고들어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난 항상 엄마를 기다렸다. 날 안아주길, '괜찮아'라고 말해주길, 날 바라봐 주길...
기다리면 언젠가는 엄마가 꼭 안아줄 거라고, '괜찮아'라고 말해줄 거라고, 인자한 미소로 날 바라볼 거라고... 그래서 난 계속 기다렸다. 내게 관심도 사랑도 주지 않았던 엄마를 이제는 원망할 시간도 기회도 모두 사라졌다. 날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언젠가는 날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엄마도 변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 기다리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유골함을 안고 화장터를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길 양옆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마지막 꽃잎들이 봄바람에 춤을 추듯 날리고 있다.
따사한 봄볕이 눈부시게 빛나고 이를 시기하듯 매콤한 바람이 한 번씩 세차게 지나간다. 눈앞에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슬프고 비통한 날치고는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날 가시다니... 봄나들이 한번 못 갔는데.'
엄마와 봄날에 꽃구경 한번 못 갔다. 가야지, 가야지 하며 미루다 끝내 가지 못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엄마와 이별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라는 사람은 죽지도 않고 영원히 내 곁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날 수 있었다.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무형의 존재가 돼버리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엄마 이름은 춘식이다. 나는 엄마 이름이 꼭 남자 이름 같다고 놀렸었다. 딸만 다섯인 집안에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를 보고 외증조할머니가 제발 아들 좀 낳으라고 엄마 이름을 춘식이라고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증조할머니는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다음 해 정말 금쪽같은 아들이 태어났다. 남동생 덕에 엄마는 외증조할머니한테 다섯 딸 중에서 가장 예쁨 받으면서 컸다. 엄마는 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녔다. 다섯 딸 중 유일하게 대학교까지 간 것이다. 대학 동아리에서 아빠를 만났고 키가 훤칠하게 잘 생긴 외모에 반해 결혼을 했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깊었다.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자식이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식에게 무척 엄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계획적이고 꼼꼼한 성격 탓에 자식의 공부 시간 관리까지 해가며 매일같이 바쁜 일정을 보냈던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꽃피는 봄에 태어나 봄꽃이 지는 날 돌아가셨다.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로 맞이했던 봄이 그리움과 기다림이 교차되는 비애의 봄이 되었다.
버스에 올랐다. 앞쪽 좌석에 앉으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얼마 전 지우와 함께 있었던 그 남자다. 남자는 혼자서 맨 뒷좌석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다. 신경이 쓰였지만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이곳에 왜 왔냐고 물어볼 힘도 여유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나도 그 남자처럼 창밖만 쳐다보았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따사한 햇살에 몸이 노곤해진다. 피곤이 몰려와 스르륵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버스는 같이 온 일행을 모두 태우고 나서야 적막한 도로를 향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무도 타지 않은 유령버스 같았다. 버스가 집 앞에 도착하고 손님들은 저마다 내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단 한 사람만 남아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었다. 그 남자다. 그는 천천히 목발을 짚으며 내게 다가왔다. 목석처럼 서 있는 내게 다가와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좀 안아 드려도 될까요?"
그는 한 팔로 날 가만히 안았다. 쌀쌀한 바람 탓에 몸이 떨렸다. 그의 가슴에 안기고 그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때 어디선가 은은한 비누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가 전하는 무언의 위로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우린 말없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