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Aug 27. 2021

도시락 경력직







아침에 일어나 남편 점심 도시락을 싼다. 최근 남편 회사가 오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율적으로 점심밥을  먹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팀원들과 도시락을 단체로 구입해서 먹을지 아니면 각자 도시락을 싸올지 고민하는 와중에 남편은 도시락을 싸가는 걸로 정했다.


남편은 밑반찬을 해놓으면 아침에 직접 싸가겠다고 했지만 내 성격상 그걸 가만히 보기가 어렵다. (이미 열심히 만든 내 작품(요리)을 막무가내로 도시락통에 넣어가는 걸 내 마음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저번 주 이틀 동안 도시락을 싸 보고 느낀 좋은 점은 밑반찬을 만들어놓으니 그날 저녁에 힘들게 요리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도시락에 넣었던 밑반찬을 재탕으로 저녁을 먹는다.


남편과 친한 동료는 아직 부인이랑 도시락에 대한 얘기를 끝내지 못했다고 이번 주 월요일은 라면 사 먹자고 카톡이 왔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웨이 내 남편은 나는 도시락 싸간다 카톡을 틱! 하고 보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면 남편이 참 독특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쨌든 회사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은 우리 남편 말고는 없는  같다.  도시락 싸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나는 흔쾌히 싸주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도시락 경력직이었다.











도시락 경력직




내가 도시락 경험이  되는 사람이란  까먹고 있었다. 3 미술학원 입시특강 시절엔 점심은 도시락을 먹었다. 여럿이 모여서 도시락을 함께 까먹었는데 그때 느낀  같은 반찬인데도 향이  각각이고 맛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반찬 종류가 달라도 같은 사람이 만든  음식에 향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거다. 음식에 특유의 군내가 나는 집도 있었는데 젓갈을 쓰지 않는 반찬인데도   반찬에서는  똑같은 군내가 동일하게 났다.



요리 경력이 많은 엄마들의 도시락 사이에서 내가 싸간 도시락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친구들은 개의치 않고 내가 만든 반찬이 맛있다며 함께 반찬을 먹어주기도 했다. 참 고마웠다.


여러 가정의 음식을 먹어보며 내 입에 맛있는 반찬은 머릿속으로 기억을 해두고 직접 집에서 만들어봤다.


소금 설탕 간장 마늘 된장 고추장 기본양념을 섞어가며 만들다 보면 비슷한 맛이 되는데 한번 만들어 본 음식은 그다음부터 레시피를 굳이 보지 않아도 입맛으로 기억해서 만들 수 있었다.















김치볶음밥





재수 시절 수시로 대학교에 합격하고 평촌 롯데백화점 매대에서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했다. 10 50분쯤 출근해서 저녁 8시쯤 퇴근을 했고 점심은 사내식당에서 식권을 구매해서 먹어야 했다.


근데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고 점심을 쫄쫄 굶을 수도 없으니 도시락을 싸가기로 결정했다. 메뉴는 선택사항이 없이 김치볶음밥으로 정해졌다. 쌀과 김치는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셔서 그 두 가지는 집에 있는 유일한 재료였다.  


첫 아르바이트 월급이 나오기까지 김치볶음밥을 물릴 정도로 먹었다. 도시락 싸가는 것도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사내 식당에서 남들이 쳐다볼까 봐 구석으로 들어가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찌질함의 바이브 아닌가 싶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뭘 먹는지 아무도 관심 없다.


그 한 달 동안 김치볶음밥을 마스터했다. 어느 날은 김치 국물 양을 많이 넣어서 국물 진한 맛의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간장을 넣어서 삼삼하게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근데 이렇게 저렇게 먹어도 맛있지가 않았다. 그저   나는 김치볶음밥으로 느껴져서 서글프기만 했다.










도시락 경력직은 만들어놓은 밑반찬을 도시락 통에 착착 이쁘게 담아낸다. 밥은 자기  미리 해둔다. 미니 돈가스나 찌개는 도시락을 싸기  끓여내거나 튀겨서 담아내면 된다. 내가 먹으려고 싸던 도시락보다 누군가를 먹이려고 싸는 도시락이  즐겁다.




이젠   나던 도시락이 아니라 달달한 도시락으로 변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여초 집단에서 지내 온 나만의 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