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손톱 물어뜯는 일이 거의 없지만 뭔가 깊게 고민에 빠질 때나 공부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스물스물 손이 입으로 향해 움직인다. 옆에서 보던 다원이가 “엄마 손톱 물어뜯지 마!” 하고 나를 혼낸다. 녀석 기특하다.
손톱 물어뜯는 행동은 애정결핍이나 정서적 불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데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생긴 조급함이 입에 손을 가까이하며 정서적 불안감을 낮추려고 한다. 또 아동 발달 수업에 들었던 이야기는 구강기에 빨기 욕구가 충분히 충족이 되지 않으면 다른 발달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구강기에 고착되는 모습이 나타난단다. 그래서 구강기 자극을 통해서 불안감을 낮추려고 할 수도 있다고, 어렸을 때 엄마 젖을 못 먹고 분유를 먹어서 그런가? 진짜 고리타분한 생각을 할 뻔했다.
내 남편은, 1살 넘어서까지 어머님 모유를 먹고 자랐는데도 입술 만지는 버릇이 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할꺼여.
나는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을 때 하루 종일 쌓였던 피곤과 불안감이 씻기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차리고 식구들과 맛있게 먹는다. 왜 내가 가족과 집 밥해 먹는 걸 좋아할까? 어찌 보면 집착에 가까울 수 있는 나의 집밥 사랑은 손톱 뜯기와 아주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서 오는 불안감을 낮추기 위한 구강 자극인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으로 욕구를 채우니 더 좋을 수밖에!
우울할 때, 슬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정성껏 밥을 차려서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방법이었고 세상을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 장례식장에서도 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육개장도 맛있었고 편육도 참 맛있었는데 어린 나는 “엄마가 죽었는데 밥맛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남들이 보면 욕하려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다.
근데 그 까짓 게 뭐가 중요하겠어,
나를 위해서라면 잘 먹으면 그만인 거다.
최근 블로그 이웃, 거북이 달려님이 포스팅하신 센과 치히로 영화를 읽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하쿠가 치히로에게 주먹밥을 건네는 장면. 나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매번 볼 때마다 내가 치히로가 된 듯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 이웃님 글에 달린 나의 댓글.
치히로가 주먹밥을 먹으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어른이 된 후에 보아도 함께 눈물이 흘렀어요. 아마. 어린 저의 마음이 거기서 녹아내린 것 같아요. 하쿠가 만든 작은 주먹밥. 위로 사랑!
어린 나의 모습이 치히로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내가 음식을 먹으며 울음을 참아냈던 시간들 - 영화 속 치히로가 울음을 터트리자 나도 함께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치히로는 주먹밥 먹는 걸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에 나아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니까.
하쿠가 마법으로 만든 주먹밥은 용기를 준다. 나에게도 음식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정성을 다해 요리를 만들며 마법을 부린다. “혜리는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힘을 내자.” 그렇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면 그 다음날 힘차게 나아갈 힘이 생겼다.
그래서 난 지금도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만든다.
내 주변에 누군가, 삶이 너무 힘들어 지쳤다면 기꺼이 음식을 만들어 내어주고 싶다.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힘을 내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