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Jan 05. 2022

재활용 유리병으로 헤이즐넛 커피를 먹다.






제로 웨이스트는 나랑 거리가 멀다.





우선 제로 웨이스트 하려면 당장 미술학원 일부터 그만둬야 할 듯, 아이들을 가르치며 버리는 종이, 재료, 휴지. 놀랄 정도로 양이 많다. (심지어 물도 많이 쓴다)

​​


흰색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틀린 부분은 지우개로 지우며 수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지우개 질로 지워지지 않는 연필 흠집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손의 힘 조절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연필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그린다던지 아니면 힘을 주지 않은 것처럼 희끗한 연필선으로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지우개로 지워도 흠집이 남는 아이들은 전자에 해당한다.



힘을 꽉꽉 줘서 그리는 아이들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경우가 많고 조금이라도 선이 틀어지면 지우개로 지운다. 힘이 들어간 스케치 선은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회색빛으로 자국이 남는다. (그런 아이들에겐 완벽하게 그리는 게 꼭 잘 그린 그림은 아니라는 걸 매번 설명해준다. 심리적인 압박이 있거나 타고난 기질이 기준치가 높기 때문에 몸과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거다. 나 또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에 아이들의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


아이들에게 흰 종이를 무한대로 바꿔주지 않는다. 한 명당 한 장의 종이를 주고 앞뒤로 딱 2번의 기회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


여러 번 종이를 바꿔주면 바꿔주는 대로 그림이 잘 그려질까? 또 그렇지도 않다. 기회가 2번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하게 잘 그려야 한다. 인생도 똑같은 것 같다.

​​


내 인생의 스케치는 틀리더라도 지우지 않고 나름대로 멋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둔다. 결국에는 모든 실수가 모여서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겠지. 알록달록 멋진 무지개 작품. 난 그런 게 좋다.





재활용 분리 수거함에 들어가려던 유리병.

하나는 샐러드 소스병, 하나는 올리브 담긴 통이었다. 모양이 꽤 예쁘다고 생각해서 유리병에 붙여진 종이를 깔끔하게 떼어내고 재활용했다.



 벗겨지지 않는 종이스티커는 2시간 정도 물에 불리면 금세 벗겨진다. 호로록 금세 벗겨지니  이렇게 희열이 느껴지지. 변태인가.





남편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다.


하나는 목이  유리병. 하나는 둔탁하지만 귀여운 유리병. 커피를 타서 남편에게 하나 고르라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당신이 먼저 골라!” 하더라. 사실 어떤 걸 골라도 상관이 없어서 남편에게 한번 더 먼저 고르라고 권유했다.


​​


그러니 텐텐씨는

​​


“나는 사실, 당신이 뭘 고를지 알고 있어.”


​​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또 탐정놀이를 시작한다.


진짜 별거 아닌 거에 엉덩이 탐정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본다. (엄마들만 알겠지만 엉덩이 탐정이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면서 탐정 시작할 때 표정 있음. 그거랑 매우 흡사함)


​​​



“당신! 이 목이 긴 걸로 먹고 싶었지?”


​​​


땡이야! 땡! 허당 탐정은 자기가 좋아하는걸 모두가 좋아할 거라고 착각을 잘하는 편이다. 목이 긴 유리병은 예쁘지만 불편해 보여서 고르질 않았다.

​​


우리는 취향이 이리 다르니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과 나. 인생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흘러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