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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30km 구간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요즘에 목디스크가 와서 하늘을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목이 편하게 젖혀지지 않으니 말이다. 매일 볼 수 있었는데 하늘 한 번 잘 올려다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2년 전에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오십견이 와서 정형외과 및 통증의학과에 근육이완 고급 주사와 도수 치료에 수백만 원을 쓰고 한쪽 어깨가 나아졌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반대편에 똑같은 증상이 찾아왔다. 잠을 잘 때 옆으로 자는데 너무 아파서 잠이 깨면서 이 통증이 시작되었다가 잠이 깨면 통증으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곤 했다. 당시 병원치료로 다시 중간에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또 반대편 어깨가 아프다니 너무 좌절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치료를 다시 반복하며 수백만 원을 쓸지 아니면 조금 적은 돈이나 비슷한 금액으로 더 나은 솔루션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필라테스를 하게 되었다. 동생이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두통이 사라졌다길래 나를 늘 따라다니던 편두통도 완화시킨다면 일석 이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필라테스를 하면서 어깨가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12월에 너무 바빴다. 정신없이 살았다. 필라테스는 못 갔고 원장님께 부탁해서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다시 급속도로 뻣뻣해지고 근육은 뭉치기 시작했나 보다. 지난주부터 뒷목이 뻣뻣해서 하늘을 볼 수도 없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필라테스 선생님과 꾸준히 운동을 해 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약해지는 게 사람이다. 사실 목디스크 외에도 몸의 여기저기 염증이 생겨서 항생제를 털어 넣고 물을 목으로 천천히 넘기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돈다. 요즘 눈물이 핑 도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무실에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나올 때, 사무실에서 컴컴한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 괜스레 눈물이 또로록 흐른다.

왜 울지? 왜 눈물이 나지? 이 감정의 정체는 뭐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들이 된 것처럼 나의 감정을 가만히 살펴본다. 며칠을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기가 찬다 기가 차…

아파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다. 아프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줄이거나 내려놓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해서 속상한 거다… ‘너란 인간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나에게 묻는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억울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하기로 작정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 필요하다면 남들과 경쟁하고 실력을 키워서 나의 능력을 입증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토끼가 아닌 거북이가 되기로 맘을 정한 날부터 하루에 한두 시간씩 일을 더 하거나 주말에 가끔 일을 하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다.


나는 ‘탁월함’이라는 말이 너무 짜릿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직까지 탁월함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무슨 일을 하던 나의 목표가 ‘탁월함’이라면 나는 더 나를 다그치며 때로는 격려할 동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정한 나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거북이의 노력에 대해서 억울할 필요가 없다.

나는 책 읽기도 좋아한다. 모든 가족이 잠자리에 든 후 자정을 넘기고 거실에 혼자 앉아 세상 고요함과 간간이 들려오는 가족들의 잠자는 소리(코를 골거나 잠꼬대와 이를 부딪히는 소리마저)를 벗 삼는 그 시간이 좋다. 책의 구절이 내 마음에 들어와 말을 거는 것도 좋다. 최근엔 글쓰기를 더했는데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오밤중 아니면 새벽이다. 나는 또 그렇게 한정된 시간에 또 시간을 만들어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냥 좋아서 하는 마음도 있지만 일찍 찾아올지 모를 퇴직을 대비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직장생활 아닌 두 번째 다른 직업을 가져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열심히 더 열심히 살자고 나를 채찍질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도 적지 않은 품이 들어간다.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이가 중학교 때부터 학원 대신 자기주도학습을 하느라 아이의 공부 진도 관리며 모르는 것을 같이 공부해야 했다. 얼마 전부터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학 때 예습 공부를 하고 있어 고등 수학을 같이 공부하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내 새끼 과외 선생까지 하고 있었으니 몸이 축날 법도 하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조금씩 한 템포를 줄여 아예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 내가 왜 벌써 마흔 후반이 되었지? 사십 대에 벌써 오십견에 목디스크라니… 나는 아직 더 배우고 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더 성장하고 싶은데 말이야..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병원에 가서 근육을 풀어주는 주사를 여러 대 맞고 도수 치료를 갔는데 젊은 치료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 반만 들으시고 제가 알려드리는 운동 꾸준히 하시면 많이 나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신다. 오늘 처음 본 선생님의 한 마디에 왜 이렇게 위로가 될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약국에 가니 젊고 앳된 약사 선생님이 차분하지만 분주하게 손길을 움직이신다. 처방전을 놓고 잠시 기다렸다가 약을 받으면서 그 짧은 새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 저는 고혈압 약도 먹고 다른 염증약도 먹는데 같이 먹어도 되나요? 이 약에는 항생제가 있나요” 약사 선생님께서 ”항생제 없어요. 환자분 나이 보니까 같이 먹어도 돼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약사 선생님의 말이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떠냐? 도수 치료사 선생님의 말이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냥 누군가의 위로이며 격려인 것을.

뒷목에 주사를 맞으면 약간 어지럽다. 그래서 주차장에 앉아 잠깐 머리를 뒤로 젖히고선 시야가 맑아지고 정신이 또렷해기를 잠시 기다렸다. 시동을 걸자 히터와 시트가 가열되며 조금씩 몸에 온기를 전해 주고 그 사이 핸드폰과 자동차의 애플 카플레이는 자동으로 연결이 되어 평소 듣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냥 늘 듣던 음악인데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2번 내림 마장조의 선율이 내 마음을 만진다. 음악 덕분일까?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운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 거의 집에 왔을 때 동네 투썸 앞에 차를 세운다. 핸드폰을 열어 카카오톡 선물함의 스트로베리 초콜릿 케이크 쿠폰을 들고 들어가 직원에게 케이크를 주문한다. 아까 음악 듣다가 조금 울어서 내 눈이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 직원이 내 얼굴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지만 패딩에 달린 털모자를 뒤집어썼으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오늘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어디 내 건강뿐이랴….

결혼을 하고 나면 이렇게나 많은 인간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이리도 많은지 미처 몰랐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 그것도 미처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기쁘고 의미 있다고 나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기에 때로는 슈퍼맘이라는 말도 썩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직장인 이런 모든 일들을 감당하느라 지쳐 있었나 보다. 집이 정리되지 않아도 내 탓, 아이들이 공부가 소홀해도 내 탓, 아이들이 아파도 내 탓을 하며 잠은 죽어서나 실컷 자자고 채찍질하며 살았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일벌레로 사는 것이 의미 있다 생각했는데 내 몸은 내게 다른 신호를 주었다. ‘조금 속도 줄여도 괜찮아. 조금 못해도 괜찮다. 아이들이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아. 이렇게 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잖아. 너를 사랑하고 다독여줘’ 이렇게 계속 말을 걸어온다.

내 안의 내 말을 들어야겠다. 나는 직장에서 사람들의 말을, 외부 파트너들의 말을, 우리 시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주어서 잘 지내오고 있는데 이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와 화목하게 지내보려고 한다.

사실 여행을 하고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어 액셀레이터를 깊이 밟고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조바심을 내도 신호등과 방지턱을 맞닥뜨리게 되고 교통 정체나 예기치 못한 도로 위 교통사고 등 상황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가는 내내 마음이 조급하고 음악을 틀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 그럴 때가 있다. 반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는 여행은 같은 운전대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 하늘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새로 생긴 빵집이며 거리의 변화도 보이고, 외곽으로 가면 나무와 들판, 그림 같은 집들을 눈에 담으며 ‘우와 경치 좀 봐’ 하고 감탄을 연발하기도 한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사실은 인생은 여행이지… 각자 서로 다른 각 사람의 여행이지. 그러니 마음을 고르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간다고 해도 억울할 것이 없어. 목적지가 아닌 이 과정과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릴 준비가 되었다면 조금 속도를 줄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오히려 이 모든 경험과 과정은 나와 다른 여행에서 그러나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누군가의 마음을 깊이 공감해 주고 꼭 필요한 따뜻한 한 마디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나를 성장시켜 줄 테니 말이야.

시간을 허투루 쓰면 죄책감이 들었던 나는 이제 안녕이다.

주말에 늦잠 자고 딸아이와 침대에 뒹굴 뒹굴 누워 “우리 딸 이번 주에 무슨 일 있었어?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없어?” 이런 시시하지만 정작 나눠보지 못하고 지난 대화를 할 테다. 하루쯤 평일에 휴가를 내고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을 넷플릭스로 정주행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여유롭게 읽을 테다.

이제 야근을 줄이고 오늘의 일도 내일로 미루고 내 성에 안 차는 조금 부족한 보고서도 보완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일을 더 맡기고 좀 더 기다려줄 거다. 그래서 보고서가 기한 내에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나의 보스에게 지혜롭게 우리 팀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거다. 직원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 “저 먼저 들어갈게요” 하면서 총총 여유롭게 주차장으로 가서 아직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 회사를 유유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할 테다.

아이에게는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을 허용하고, 나에게는 빈둥거리는 시간을 더욱 갖도록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잠자리에도 일정하게 들 수 있도록 연습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이번에는 나에게 맞는 속도로, 그러나 여전히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열정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볼 테다.

지나고 보니 “적당히 좀 해… ” “병나겠다” “엄마 좀 쉬어” 그런 말을 친정 엄마도, 남편도, 심지어 초등학생 딸도 했었다. 귓구멍이 막혀 잘 듣지 않았던 그 고마운 말, 가족의 말을 이제 좀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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