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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창한오후 Oct 29. 2018

여덟 번째 풀코스 완주

2018년 춘천마라톤.



새벽 아침 분주히 움직이는데

밤새 게임하던 중3 아들이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합니다. 

자기 좋아하는 게 게임이라면 맘껏 해봐라~!!

애빈 내 좋아하는 달리러 춘천 간다. 

아놔 쎔쎔인가!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있다면 몸이 가는 대로 가자 정도? 


춘천에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신발 젖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서 9시 20분경 출발~!!

생각해보니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살짝 시큰했지만.. 이내 경험으로 봤을 때 

달리며 풀어질 겁니다. 


몸은 잘 나갑니다. 




달리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인데요. 

되도록 생각 없이 달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멀리 나타나는 첫 번째 만난 터널.. 

지난 두 번 대회에서는 다들 지르는 함성만 듣고 말았습니다.  

뭐가 누르는듯한 기분였어요. 

그래도 두 번째 터널에서야 시원하게 소리쳤는데요. 

오늘은 공격적으로다 

터널 입구부터 와~~~ 하는 함성을 질렀더니 

막힌 속이 뚫리듯 개운합디다. ㅎ


2016년 이 코스에서 개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4시간 5분. 


준비가 약했던 오늘. 걷지만 않아도 충분한 성과라 생각하면서도

목표 기록 420은 410으로 달리며 계획 수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쯤 걷게 될지 알 수 없었는데도 말이죠.  





비뿌리다 살짝 해가 뜨니 더워졌지만. 

곧 계속 옅게 비가 내려옵니다. 


이미 신발은 젖었고

타이즈... 음... 더 편할 줄 알고 속옷 없이 입은 타이즈는 사타구니가 쓸려옵니다. 

결국 손에 낀 장갑을 벗어 패드 삼아 밀어 넣으니 조금 편해지는데요. 

쓸리는 아픔은 계속 달려가야 할 남은 거리만큼 늘어날 겁니다. 




주변에 대화 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묵묵한 발자국 소리들로 가득 찬 주로는 

적막함 입니다. 

어쩌면 같은 공기를 함께 마시고 살아가는 인생길 같습니다. 

앞서서 편하게 달려가는듯한 여성주자도, 

묵직한 덩치 아저씨를 지나칠 때도,

이 분들과 또 어디서 만난 들 알아보지 못할 인연이지만

강한 동질감을 느끼며 숨소리로 서로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듯합니다. 


아차! 

아무 생각 없이 달린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피어나는 생각의 향연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어요. 

다만, 가민 시계를 되도록 적게 보며 내 남은 거리를 잊고자 했습니다. 


25킬로 지점에서는 '이 상태로 30킬로까지는 그냥 갈듯한데?' 

30을 만났을 땐 '35까지만 가볼까!' 하는 자기 최면으로 몸을 움직이는데요.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몸을 이끌어가는 것도 맞겠으나

일단 체력이 준비돼야 그 동기부여가 되는 걸 배웁니다.   


젖은 주로에서 바라보는 호수 건너 산. 

느린 구름이 단풍산을 타고 힘겹게 오르는 모습에 

잠시 힘듬을 잊고 감탄이 소리로 나옵니다. 


"아! 내 나라 너무 아름답다"


내 나라.. 내 나라.. 우리 아이들 나라.. 우리나라~!


이 풍경을 눈 사진기로 찍었습니다. 

아주 강렬한 인화지로 기억 저편에 저장을 누릅니다. 


비가 오는데 비 오는 걸 느끼지 못한지가 언젠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리며 그토록 젖기 싫어했던 신발은 이제

풍덩풍덩 고인물을 밟아 나갑니다. 


젖은 스펀지 두 개를 잡아 양쪽 허벅지와 무릎을 식혀주면 

또 어디선가 믿을 수 없는 힘이 생성됩니다. 


이제 5킬로 남았습니다. 

우리 자봉단 소온님이 든 접시 위 방울토마토를 집고 싶었으나 놓치고 지나칩니다. 

꼭 집고 싶었던 아쉬움에도 내 기록만 생각하면서.. 

섭포를 바라보고 달려 나갑니다. 


곧 자카리아 형님이 달려와 함께 달리며 

"소온이가 이걸 먹고 싶어 한 거 같다고.."

시큼한 비타민? 한알 까주십니다. 

그걸 입에 넣는데 왜 그리 상콤하던지.... 

맛도 맛이고, 

힘들 때 챙겨주심은 감동이 배가 되었어요.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이산가족이라도 찾듯 있었고, 

골인지점은 눈에 보였지만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거워진 발걸음... 


GPS 시계는 이미 네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순간 다리는

잠시 멈춤. 

그 사이 많은 선수들이 저를 지나처 갑니다.

그들은 모두 환희에 젖은 표정입니다. 

멈춰서 바라본 골문 안쪽은 다른 세상입니다. 


곧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이제 다른 차원 세상에서 제가 살아온 인생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 춘천에서 새로운 신기록을 얻었습니다. 

  - 2016년 4시간 5분

  - 2017년 4시간 55분


오늘 4시간 00분 31초. 


만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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