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운동할걸..
아버지 손을 잡고 간 약국에서
"콜록콜록, 해바라기가 그려진 약으로 주세요"
유년시절 흑백 테레비 광고, 어린이 감기는 해바라기를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 생애 첫 운동회날 한 조가 여섯 명인 달리기 출발지점
어린이 영양제 광고에서 모자를 거꾸로 쓰고서 달려 1등 하던 어린이 모델을 생각했다.
백군 모자 창을 뒤로 돌려쓰고 딱총 소리에 맞춰 달렸다.
결과는 꼴등.. 그것도 5등에도 차이가 크다.
'그때 내가 왜 모자를 그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은 꽤 긴 시간 창피했었어..
지금도 기억나서 이 글을 쓸 정도라니.. 흠.
그 흔한 태권도도 다니지 못했는데.. 살면서 기억나게 운동해본 적 없다.
최초는 스물여섯 살 1년간 다녔던 직장으로 거기는
하루에 약 20회 이상 암실에 들어가야 했다.
공업용 대형 필름을 인화기에 넣으면 다 투입될 때까지의 빛 차단해야 돼서 문을 열지 못한다.
그냥 몇 달간은 빨간 불빛만 있는 컴컴한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는데..
이 무의미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어.
사람이라는 존재는 남는 시간 유희를 본능적으로 찾는 게 아닐까 싶다는 건 지금 생각이고,
그때 팔 굽혀 펴기를 했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지.
한번 들어갈 때 열개부터 시작했을까? 점점 탄력이 붙어가며
가슴과 팔 근육이 후들거려 승용차 핸들을 돌리지 못하던 날이 3개월 지나니까 동료들이 알아본다.
"오오! 가슴에 골이 뚜렷하네요?" 서부터
"저도 암실 가면 푸시업이나 해야겠어요" 등등
이것도 매일 한 개라도 더 하려는. 어제와 경쟁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하루에 50개씩 10여 회에 총 5~600개 정도를 하게 되는데
요령이 점차 늘어 플라스틱 의자 놓고 발을 올리고 하고,
책을 놓고 가슴을 깊게 내려서 가동 범위를 최대 끌어올리기도 했다.
몸은 다 연결된건지 하지도 않은 복근이 단단해진다.
그냥 재밌더라고. 생전 못 느끼던 기분이었어.
하지만 퇴사 후 운동은 아주 쉽게 잊혀갔지.
세월이 빨라 12년이 지나가며
"옛날에 내가 푸시업 좀 했었지.. 그땐 참 젊었을 때였어"라는
추억으로 간직(?)하며 기억에만 남아 있었다.
항상 자신감 있는 것처럼 살았지만 실상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었던 거 같고.
할머니 젖처럼 가슴은 늘어져서 출렁되고,
알통은 아무리 힘을 줘봐도 옆으로만 나오고, 배는 불록,
엉덩이는 펑펑해지다 못해 살들이 터져버렸고,
계단이 무섭고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로만 다니고..
입는 바지들도 통 넓은 양복바지.. 아저씨들이 입는 스타일이 전부다.
슬림핏의 날씬한 옷들은 애들이 입는 거라 여겼던 거야.
주변에 운동하는 지인은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다 그렇다고 여기며 살았지.
흠흠...
39에 정말 우연히 이끌어준 동네 형의 권유로 게으른 헬스를 하게 됐다.
이제는 거기에 마라톤질(?)까지 라니... 달리기는 한번도 잘 한적 없던 난데
이렇게 맨날 뛸 줄 상상해본 적 없고.
요즘 엉덩이가 단단한 게 느껴진다. 무리해서 말하면 엉덩이가 허리에 올라탈라고 해.
몸도 가벼워졌는데 어릴 때 입던 28 사이즈 바지가 맞더구먼..
이제는 젊은 패션에 주저하는 친구에게 잔소리.
"야 옷에 나이가 어딨냐? 니 생각이 나이를 먹은게지.. 쯔쯧 배 좀 빼게 운동도 좀 하고..."
미움받을 소리를 한다는 걸 안다.
운동에 취미 붙이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하루에 20분만 걷기"를 해라는
나보고 "매일 20분만 어학공부를 해라"하고 똑같은 말이다
뭐든 재미가 붙고 나면 쉬운데.. 거기까지 가는 게 어려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