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고구려 역사 지키기 마라톤 대회
네 번째 풀코스.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준비한 채 일찍 잠들었다.
최근 몸무게는 3kg 늘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진 못한다.
도착한 잠실 주경기장 동호회 부스에는 이미 운영진들이 테이블과 난로를 준비해 놓았는데 그 안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처음 나온 새 회원들로 북적거린다.
기온은 쌀쌀하지만 미세먼지가 적어서 달리기에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다 같이 준비운동을 한 뒤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 출발 시간에 맞춰 파이팅을 외치며 흩어졌다.
지난주 달렸던 뚝섬 21.1km 하프와 비교하기 힘든 곱절 긴 달림을 즐거이 시작한다.
몸이 가벼워 사뿐사뿐 착지하며 나간다.
옆에 다가온 동생 모로가 빠르다며 3시간 40분 속도란다
이대로 끝까지 갈 수는 없다.
빨라지는 몸을 억눌렀지만 몸이 나가는 걸 막지 못해 5분 20초/km 보다 더 느리게 하기 힘들다.
한강변 멀리 펼쳐진 대교들이 멀리까지 보인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 속에 달릴 수 있는 것. 그것은 축복이다.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반대로 추워진다.
6km 지점. 손에 땀이 나길래 장갑을 버렸는다.
1차 반환점을 돌아서니 센 역풍이다. 다시 손이 시리다.
소매를 끌어당겨 움켜쥐고 '이거 오늘 만만치 않겠는걸?'
맑은 콧물은 끝없이 만들어진다.
한쪽 코를 막고 풀은 뒤 깨끗하게 소매로 닦았다.
문득 유년시절 코를 많이 닦고 닦아 반질반질 굳었던 소매가 생각났다.
칠 팔세 때던가? 하루 종일 밖에 놀다 들어왔더니 아버지는 그 팔을 붙잡고 한참 웃으셨지.. ㅎ
뭐라 하셨는지 기억 안 난다. 그 모든 게 다 귀여우셨던 걸 거라는 건 내가 아기를 키워보니 알겠더라고..
멀리 다시 만난 주경기장에서 우회전, 과천 방면으로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하프와 32km 반환점을 지나야 하는데 레이스가 안될 거 같으면 풀코스 반환점 전에 돌아갈까 망설여진다.
하지만 풀코스 나간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할 때마다 경이롭게 보던 그 눈빛들 생각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겠더군
결국 풀코스 반환점에 오고야 말았다. '여기서 골인까지 걷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까?'
난 많이 지쳐 있었다.
30km 지점에서 끈 풀린 연처럼 잠시 걸었는데... 아아 그 허망함 이라니..
달리면 다시 달려는 진다.
뒤에서 쫒아오는 러너 발소리에 밀리듯 달리고, 앞에 지쳐 늘어지는 러너 앞지르기로 달렸다.
그래도 점점 걷는 횟수가 많아진다.
2.5km마다 물과 나눠주는 바나나, 초코파이.. 추워서 딱딱한데도 입에서 녹는다.ㅎ
밥은 아침 7시 먹었고 지금은 1시. 더구나 3시간을 달렸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35km를 지나며 7km만 더 가면 막걸리 마실 생각에 조금은 힘이 난다.
1km 단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40이라는 숫자는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안 보일 것만 같던 스타디움이 멀리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더와서 손에 잡힐 듯 보인 이곳에서 만난 40km 표지판.
바로 옆이 주경기장인데 아직 2km 남았다는 거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강 쪽으로 돌아서 올림픽대로 밑 땅굴을 지나 경기장 내로 들어서는데 뒷사람이 소리친다
"어어 눈이 온다"
늦게 들어오는 나를 기다려 주고 사진까지 찍어준 고레형께 감사를.
그렇게 그렇게 골인...
다리가 굳은 게 사진으로도 보인다.
네 번째 풀코스 메달을 걸고.. 스스로에게 칭찬~!!
단골 식당 뒤풀이 장소 소공동 뚝배기집 [삼성동 본점]
그렇게 원하던 막걸리를 글라스 가득 담아 원샷~..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캬! 으아 맛있다~"
이 집 주인아줌마 지나가며 나와 눈이 마주치는데
웃겼는지 싱글 웃고 가신다.
성질이 아주 까칠한 매력이 있는 분인데..
그런 분의 미소는 오늘 너 참 잘했다는 마침표 같았다.
기록은 4시간 12분... 지난가을 춘천마라톤 기록에 비해 7분 늦었는데...
다음 달 동아 마라톤에서 설욕해야겠쓰~
GPS 시계에 남은 1km 구간별 달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