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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01. 2018

덕후의 힘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다

책덕, 은혜갚을 일을 만들다

'은혜갚은'이 아니라 '은혜갚을'

내가 처음 텀블벅을 알게 된 것은 2011년이었다. 막 시작했던 사이트에는 아직 많은 프로젝트가 올라와 있진 않아서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프로젝트가 끝도 없이 펼쳐지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미란다의 책을 만나기도 전이라 직접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 생각보다는 십시일반의 정신(?)과 기술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플랫폼에 돈을 쓰는 일에 흠뻑 빠져 있었다. 내가 보탠 돈으로 이런 저런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주기적으로 뭐 더 새로운 프로젝트가 없나 텀블벅을 기웃대는 것이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2014년까지 후원했던 프로젝트들. 2018년 현재까지는 43개의 프로젝트에 후원을 했다.


내가 텀블벅에서 가장 처음 밀어줬던 프로젝트는 '복태와 한군의 은혜갚을 결혼식'이다. 인디음악가였던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였다. 나이 차이와 종교 때문에 집안의 반대를 받던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다. 누군가는 결혼식은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굴하지 않고 예술가답게 길을 찾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없다 말하는 부모, 모아둔 돈이 없는 복태와 한군. 그들에게는 묘안이 필요했다. 허나 궁상맞아지고 싶지는 않았다. 이 과정 역시 창조적이고 재기발랄한 작업이 되기를 바랐다.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도움 받기. 더불어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축하 받기.
티끌 모아 태산, 백지장도 맞들면 나아지는 결혼식.
품앗이처럼 혹은 계처럼 사람들은 결혼식을 후원해주고, 우리들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은혜를 갚는 것.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그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을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축복 속에서 성사시키는 것. 결혼식을 위해 하던 작업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 역시 창조적인 작업으로 만드는 것.

무엇보다 갑작스레 닥친 삶의 변화를 예술가답게 헤쳐나가겠다는 말이 와닿았다. 리워드로 두 사람의 음악이 담긴 CD도 받고 공연 영상도 찾아보며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중에는 우연히 <인간극장>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와 함께 결혼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되돌아보니 이 프로젝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정성을 다해 리워드를 준비하고 모든 과정을 즐기는 것. 그래서 <미란다처럼>을 준비하면서 텀블벅에 올려봐야 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고 알리는 그 과정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저런 두려움도 있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프로젝트에 선뜻 돈을 내며 응원을 해줄까? 


떨리는 마음으로 첫 프로젝트를 생성했다.



채워넣을 것이 참 많았다. 메인 이미지와 제목은 어떻게 할지, 스토리텔링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여기 저기 물어보고 이미지도 여러 번 바꿔가면서 프로젝트를 조금씩 채워갔다. 아직 표지가 나오기 전이라 원서 표지의 미란다 사진을 이용해 메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https://www.tumblbug.com/isitjustme


이때는 텀블벅이 동영상을 만들어 메인에 넣는 것을 권장하던 때라(뭔가 동영상 넣은 프로젝트가 많았던 기억...) 없는 살림(?)으로 동영상을 만들어봤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수제 동영상


드라마 장면이 나오는 모니터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은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자막은 어떻게 붙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RoadMovies라는 앱을 사용해 단순하게 편집한 허접하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수제 동영상이었다. 


어찌어찌 얼추 구색을 갖춘 후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심장이 두근두근한 와중에 친구들에게 수줍게 프로젝트 소식을 알렸다. 사실 나는 그동안 해준 것도 없는 변변치 않은 친구였는데도 선뜻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하나, 둘 후원자 목록에 뜨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고마움이 마음속에 넘쳐 흘렀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의 후원이 끝나고 나니 후원금에 변화가 없었다. 이러다가 친구들만 귀찮게 하고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사실 팔로워가 많은 창작자가 아니라면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려만 놓는 것으로는 성공확률이 희박하다. 게다가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낀 사람이 있다고 해도 결제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장벽이 있다. 


과연 내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진정 있을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까? 실패할까? 후원하려면 가입해야 하네? 결제하려면 카드 정보도 넣어야 하네. 얼마를 투자할까? 오늘 할까? 내일 할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내일 해도 되겠다....


이런 경우도 많아서 후원이 필요한 사람이 100명이라면 100명한테만 알리는 게 아니라 그보다 몇 배, 몇 십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프로젝트 소식이 노출되어야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비용이 들어가는 광고를 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진심을 담아서 글을 쓰는 것뿐이다.


웹에 나를 드러내는 일

내가 인터넷과 웹을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라도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보장된 익멱성 속에서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떤 경제적 환경에 처해있든 상관없이 웹에서는 누구나 하나의 ip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현실에서 하고 있는 일을 알리려고 하니 달콤한 익명성 뒤에 숨어서는 내 목소리가 진정성을 갖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거의 내가 알게 모르게 흩뿌렸던 나의 조각들이 웹의 거미줄 어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것을 생각하면 등줄기에 땀이 흘렀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나를 잘 드러낼 수 있을지' 연구하는 쪽이 더 현명할 것 같았다. 


미란다에 관심이 있을 만한 커뮤니티를 찾아서 며칠 동안 '눈팅'을 하며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익혔다. 글은 최대한 스팸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유저들의 활동에 해가 되지 않게 재밌게 쓰기로 했다. 커뮤니티마다 성격에 맞춰 새롭게 글을 쓰곤 했는데 그 링크들을 모아 블로그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알리고 난 후부터 후원자 목록에 점점 모르는 이름들이 등장했다.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내 프로젝트에 후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텀블벅 진행 당시에 그렸던 낙서


가끔씩 블로그 방명록이나 쪽지로 응원의 메시지가 오면 뛸 듯이 기뻤다. 열심히 글에 담았던 나의 진심이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응원을 받다니, 이런 멋진 기적이 있나!

지금도 조용한 방에서 혼자 뭘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생각한 것처럼 디자인이 잘 나오지 않을 때, 계획했던 것보다 진행이 더디게 될 때마다 방명록에 남아있는 응원의 글을 읽으며 다시 이어갈 힘이 내곤 한다. 


차곡차곡 쌓인 후원자들의 이름을 책 뒤에 실었다. 길고 재밌는 별명을 적어준 후원자도 있어서 이 작업도 재밌었다. 모두 84명의 후원자.


참고 : 텀블벅 진행 당시 아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서 부끄러웠는데 나중에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지인과 텀블벅 후원자의 비율은 약 40 대 60 정도입니다'라는 텀블벅측의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살짝 내려두었다. (참고 : 크라우드 펀딩 워크샵 현장 스케치)


은혜를 갚자, 내 방식대로

출판을 준비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인터넷에 자신의 실수담과 경험을 올려준 사람들 덕분에 나도 시행착오를 줄여가며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에는 출판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터라 나의 기록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과정을 열심히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올린 정보가 내게 도움이 되었듯이 내 기록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러는 사이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나의 첫 프로젝트는 아슬아슬하게 100%를 넘어 109%를 달성했다. 막판에 아이디를 새로 파서 100%를 만들까 했는데, 다행히 그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까스로 프로젝트가 성공했으니 정성스럽게 리워드를 만들어 보낼 일만 남았다. 책은 거의 다 완성이 되었는데 '추천사'를 고민 중이었다. 사실 띠지나 뒤표지에 넣는 추천사는 홍보의 목적이 커서 유명인사의 글을 넣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내가 넣고 싶은 추천사는 따로 있었다. 바로 미란다 덕후들이었다.


인터넷에 '영드 미란다'로 검색을 하면 미란다짤과 함께 얼마나 미란다가 웃기고 재밌는지 써놓은 포스트가 상당히 많았다. 그런 분들의 추천사를 책에 넣고 싶었다. 덕후 냄새 가득하도록. 그래서 포스트가 올라온 블로그마다 쪽지를 보내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추천사를 부탁했고 답변을 보내준 몇몇 분의 추천사를 책 앞에 실을 수 있었다. 



텀블벅을 시도하면서 기대했던 것 한 가지가 바로 굿즈 만들기였다. 덕후라면 또 자기 손으로 굿즈 한 번 만들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는가.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굿즈는 바로 머그컵과 마라카스였다. 머그컵은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도톰한 '궁둥이 머그'에 재밌는 문구를 넣기로 했다. 이 머그컵은 반응이 꽤 좋았다. 도톰해서 커피가 잘 안 식는다는 엄마의 피드백도 있었고, 밑바닥의 'I JUDT DON'T CARE!'라는 문구는 설거지해서 뒤집어 놓을 때마다 보여서 좋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참고 : 포장과 배송 때문에 머그컵은 리워드로 강추하지는 않는다.)



대망의 마라카스는 영드 <미란다>에서 미란다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다. 그냥 흔들기만 하면 되니까 아주 쉬우면서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TMI : 미란다는 나중에 이 마라카스를 가지고 <마라카택>이라는 다이어트 비디오를 내기도 했다.) 마라카스를 대량으로 사는 건 처음이라 낙원상가를 찾았다.



세상에 흔들어 소리내는 악기가 그렇게 많을 줄이야... 빨간색 나무 마라카스가 마음에 들어서 10개 정도가 있냐고 물었다. 악기가게 사장님은 마라카스를 10개 넘게 사는 내가 무슨 음악 교사라도 되는지 묻기도 했다. 


이렇게 마라카스 쇼핑까지 마치자 텀블벅의 마지막 관문, 포장 헬게이트가 열렸다. 80여 개의 리워드를 분류하고 주소를 적고 포장재를 사서 포장한 다음, 택배로 보내야 했다. 요즘에는 이런 개인 택배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포장, 배송을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많이 생겼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가 전에 다니던 출판사에서 택배 계약을 해서 매일 택배 기사님이 들리던 기억이 났다. 사장님에게 연락해 출판사 사무실에서 택배 포장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옛 동료들이었다. 다들 부탁도 안 했는데 책이 쌓여있는 회의실로 들어오더니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 일꾼'이라는 명칭을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방식대로 하고 싶어서 독립을 했다. 그것은 어쩌면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변화를 원했던 선택이 아니었을까? 출판을 하는 과정은 히키코모리 같던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동안은 그냥 혼자 일하고 싶다고만 생각했지만 되돌아 보니, 나는 세상과 이런 식으로 연결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식'의 방식에는 '독립 일꾼'보다는 '자유 일꾼'이 어울렸다. 


자유롭게 함께 할 사람과 경험을 선택하며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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