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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15. 2018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날

꼬리를 길게 여러 개 늘어뜨리자, 긴 꼬리 대작전

아침에 눈을 떴는데 스마트폰이 잠잠하다. 책 주문이 있었다면 푸시 알람이 떠있을 터인데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어제도 주문이 하나도 없었는데 오늘도 없다니! 물론 며칠 전에 알라딘에서 20부를 미리 가져가긴 했지만 며칠씩이나 추가 주문이 없다니... (차라리 매일 조금씩 나가는 게 기분이 더 좋은... 조삼모사스러운 장사꾼의 심정.)


'뭔가 오류가 있는 건 아니겠지?'


서점 사이트가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엎드려서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켠다. 


알라딘 주문 관리 시스템


교보 주문 관리 시스템


 이런... 사이트는 잘만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알릴 수 있을까?

물론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부터 많이 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013년 당시 <미란다>를 아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고 <미란다>를 봤다고 해서 책을 산다는 보장도 없었다. 홍보비도 따로 준비하지 않은 채 시작했으니까 책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서 천천히 책을 알려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책이 나온 후부터 <미란다>의 인지도가 아주 조금씩 올라갔다.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스파이>가 개봉하기도 했고 네이버나 왓차플레이 등에서 <미란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이 안 나가는 날이 하루, 이틀 되더라도 '그래, 원래 안 팔릴 줄 알았으니까.'라고 쿨한 척했지만 책이 안 팔리는 날이 연속될 수록 불안하고 초조해서 뭐라도 해야 할까 전전긍긍했다. 


책을 알리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텀블벅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서 <미란다>를 알 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펀딩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미란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받아 넣기도 했다. 영국문화원 블로그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블로그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했던 이벤트들


리워드와 이벤트 선물로 준비했던 마라카스와 머그컵들


책덕 기준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영국문화원 이벤트. 감동해서 모든 댓글을 캡쳐해놓았다.



잡지 같은 매체에 책을 광고하려면 광고비를 내야 했다. 많고 많은 미디어 매체에 일일이 신간 소식을 알릴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있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타겟팅이 맞지 않는 매체까지 포함해 신간 소식을 알려봐야 효과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대신 글을 기고 받는 <빅이슈>에 <미란다처럼>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기고했다. 그리고 작은 출판사에 무료로 광고를 내주는 월간 <책>에서 좋은 기회를 주어서 귀엽게 디자인된 <미란다처럼> 지면 광고 한 페이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연히 '덕후'를 주제로 기획 중이던 이노션의 사보 <Life is Orange>에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빅이슈>,  월간 <책>, <Life is Orange>에 실린 <미란다처럼>


레트로풍(?)으로 만들어본 맛보기용 전자책 표지


서점 이벤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 모인 곳은 역시 서점이라 대부분의 큰 출판사는 서점에서 광고를 한다. 온라인 서점은 역시 메인 화면에 노출될 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 효과가 있는데, 노출되는 영역과 크기에 따라 백만원에서 3백만원에 달한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게 가보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공간마다 책이 펼쳐져 있는 매대나 이벤트 포스터가 붙어있곤 하다. 대부분 출판사에서 광고비를 적게는 백만원에서 5백만원까지 주고 사는 광고 매대다. (광고를 직접 해본적이 아니어서 정확한 금액은 아니다. '일주일에 수백만원… 온라인서점도 책광고 도배' '대형서점 비싼 광고매대에 중소출판사 한숨'  기사를 참조하였다.)


책 정가에서 30%에서 40%를 가져가는 서점의 역할은 책을 독자에게 잘 보이도록 큐레이션하고 판매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책을 선별하고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메인 화면과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는 서점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대부분 출판사에서 광고비를 받고 노출시켜주는 책들로 가득하다. (이 부분에서 서점이 자신의 권한을 포기한 것이라 생각한 나는 뚝심있게 자기 철학과 취향을 반영한 작은 서점들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메인에 소개된 배너들의 대부분에 아주 작게 'AD' 광고 표시가 붙어있다
'신간 소개' 코너에도 광고 표시가 붙어있다
'화제의 책'도 역시 광고 표시가 붙어있다


작은 출판사들은 대부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서점 광고를 하기가 힘들다. 서점 한 군데에서만 해서는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여러 서점 광고에 오프라인 광고까지 겸하면 광고비가 몇 천만원이 되는데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광화문점만 하는 게 아니라 강남, 영등포, 부산 등 각 지점까지 고려하면 광고비가 어마어마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감당할 수 있는 출판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알리기 위해 300만원짜리 광고를 한다고 해도 광고비를 충당할 만큼 책을 팔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서점에 15,000원짜리 책을 정가의 65%에 공급한다고 치면 한 권이 팔렸을 때 서점에서 9,750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럼 300만원짜리 광고를 내고 본전을 치려면 책이 300부는 팔려야 할 텐데 더 적게 팔리는 경우에는 책도 안 팔리고 광고비만 나간 셈이 된다. 


<미란다처럼>의 경우에는 무작위 광고를 해봤자 효과가 없을 게 뻔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광고를 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비슷한 분야의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타겟 메일링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서점에 문의해보니 한 번 보내는 데 백만원 이상이라는 답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연히 하지 않았다.)



왜 교보와 알라딘에서만 팔아요?


책을 유통할 수 있는 곳이 많을수록 책이 많이 팔릴 테니, 최대한 많은 거래처를 만드는 게 좋겠지만 나는 교보문고와 알라딘 하고만 거래를 했다. 가끔씩 출판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서점도 책이 많이 나가는데 왜 거래를 안 해요? 한 군데라도 더 유통시켜야지."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처음에 한 대형서점과 유통 계약을 맺으려고 메일을 보냈는데 일방적으로 60%라는 공급률을 통보 받았다. (공급률이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출판사에서 서점에 책을 공급하고 받을 수 있는 정가 대비 비율을 말한다. 정가가 10,000원인 책을 60%에 공급하면 서점에서 4,000원을 갖고 출판사에 6,000원을 준다는 뜻이다.)


'갑과 을'은 서류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해서 갑과 을이 되는 건 아니다. 규모가 크든 적든 동등하게 협상하고자 하는 상대로서 서로를 대한다면 작다고 해도 갑질을 당한다는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안타깝게도 출판을 하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꽤 있었다. 상대방에게 공급률 조정의 의지는 없었다. 나는 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나만 그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나중에 중년 남성인 1인출판사 사장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점 미팅을 마치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고 해서 묘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물론 서점 담당자가 다 그렇지는 않다. 기업의 운영 방향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미팅을 하는 직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쏟아지는 책들을 살펴보는 서점 MD들의 업무량이 매우 과중하다는 것은 꽤 유명한 사실이다. 분명 그들도 퇴근하면 생기 넘치고 따뜻한 사람일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저 서로를 함께 출판 시장을 키워가는 동료가 아니라 착취하는 것처럼 만드는 악랄한 구조가 싫을 뿐이다.


쌓이고 쌓여 굳어진 불공정한 관례를 답습하지 않겠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느껴지는 거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직접 책을 만드는 이유는 '내 방식대로' 책을 만들고 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드는 것만큼이나 '파는 방식'도 내게는 중요했다. 겨우 책 한 권 낸 출판사가 버둥거려봤자겠지만 계속 이 관행을 따른다면 악랄한 구조는 바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큰 기업의 구조 속에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 하라는 대로 따랐겠지만 구멍가게여도 사장은 나였고 모든 것이 나의 결정이니까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이렇게 책이 한 권밖에 안 나가는 날에는 다른 데랑도 거래를 틀 걸 그랬나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사연 많은 구겨진 서류봉투. 의지가 꺾일 때 꺼내보기 위해 보관 중이다.


책덕은 다른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매상과도 거래를 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온라인 서점과 달리 오프라인 서점은 '위탁 거래'라서 책이 서점에 진열된 후 팔려야만 출판사에서는 책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진열 문제로 팔리지 않은 책이 다시 반품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한다. 이 '반품'이라는 게 책이 상한 채로 들어오기도 하고 회계상 처리하기도 귀찮은 부분이라서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아무리 책이 1종밖에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잡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귀찮은 일은 최대한 줄이고 그 시간에 롱테일 판매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한국말로 '긴 꼬리', 롱테일 법칙은 몇 년 전에 한 번 휩쓸고 지나간 개념이라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적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는 상품을 합친 매출이 잘 팔리는 소수의 상위 상품의 매출보다 컸다'는 아마존의 사례가 아마 가장 유명할 것 같다.


제 아무리 꼬리 하나가 길어봤자 커다란 대가리... (흠흠!) 머리에 비해 많은 매출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독점적인 유통 플랫폼과 미디어가 팔리는 물건만 더욱 많이 팔리도록 노출시키는 요즘에야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큰 몸을 먹여 살리려면 큰 머리가 필요하지만 작은 몸에는 큰 머리보다는 긴 꼬리가 훨씬 달고 다니기 좋지 않을까? 균형을 잃을 일도 없고 그냥 질질 끌고 댕기면 되니까! 


꼬리를 길게~ 늘어뜨려 주세요. 아니면 뚱뚱하게 살이라도 찌우든지.


사실 처음에는 <미란다처럼>을 낸 후에는 출판을 계속할 것인지 정하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내는 것이 목표였기에 여러 가지 일을 했고 그것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것이 연결되어 새로운 출판사의 편집일을 맡기도 했고 특강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자책을 만든 과정을 적은 것이 계기가 되어 몇 번 강의를 하고 <시작은 전자책>이라는 전자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워낙 잡스러운 인간이라 그런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용하는 일이 재미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일도 즐거웠다. 이런 식으로 긴꼬리를 아홉 개 정도 달면 생존 확률이 꽤 높아지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멀티플레이를 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만


매일 매일 조금씩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벌여야지. 책덕의 책을 신간일 때만 잠깐 반짝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잃는 책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책이자 콘텐츠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것이 매일매일 나답게 사는 방식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책덕의 가치에 기꺼이 돈과 애정을 투자해줄 독자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으로- 책덕의 긴 꼬리 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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