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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22. 2018

책이 '보이는' 곳을 찾아서

그리고 그 뒤에 살짝 머리 아픈 숫자 이야기

지난 화에서도 말했듯이 출판사에서 돈을 받고 온라인 서점 메인에 노출해주거나 오프라인 서점 매대를 내어주는 대형 서점 시스템에서는 독자들이 다양한 책을 접할 기회가 매우 적다. 간단한 산수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 달에 쏟아지는 신간은 4천 여 종인데, 대형 서점 네 군데의 한정된 메인 화면과 매대는 딱 봐도 노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반짝반짝 새 책이지만 대형서점에서는 얼굴을 보이지 못하고 바로 서가에 꽂혀버린 <미란다처럼>


물론 다른 콘텐츠도 대형 플랫폼의 독점체계나 순위 시스템 때문에 마찬가지인 상황이긴 하다. 다만 책의 경우 영화나 음악처럼 서점을 벗어난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 일상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서 대중들이 정보를 접할 경로가 많지 않다는 점이 더해져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책이 '보이는' 곳이 더 적게 느껴진다.


<미란다처럼>을 출간한 2015년 여름, 사람들의 일상 속에 책을 '보여주는' 작은 책방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명무실로 어그로만 끌고 별 효과가 없어보였던 도서정가제가 아주 약간의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인지, 아니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나 디지털 노마드의 트렌드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참 반가운 현상이었다.


눈 여겨 보던 서점 몇 군데에 메일로 입점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어 보냈다. <미란다처럼>에 대한 소개도 하고 책 이미지도 함께 보냈다. 대전의 도어북스, 염리동의 일단멈춤, 포항의 달팽이책방, 대구의 슬기로운낙타, 금호동의 프루스트의서재, 전주 에이커북스, 제주 소심한책방... 책방 한켠에 <미란다처럼>에 자리를 내어준 책방이 하나씩 늘어갔다. 


책을 택배로 보내고 마는 것보다는 직접 배달을 가는 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배달지는 바로 대전이었다. 마침 텀블벅을 통해 <미란다처럼>을 밀어준 후원자분들이 대전에 있다고 해서 식사 약속도 잡았다. (텀블벅 리워드 중에 북토크 리워드가 있었는데 마침 대전에 계신 후원자분이라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은 것.)


대전으로 기차 타고 책 배달~


대전 역에서 지금까지도 SNS 등에서 응원을 해주시는 표앤 님을 만나 또 다른 텀블벅 후원자인 김고명 번역가와 함께 식사도 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표앤 님께서 대전을 구경시켜주셔서 함께 산책을 했는데, 특히 이때 갔던 대전아트시네마 영화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언젠가 영화 보러 가고 싶은 영화관 1순위가 되었다.


검은 고양이가 주인인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전아트시네마 영화관


도어북스 건너편 길에서 사진 먼저 찰칵!


그리고 책덕의 첫 책방 거래처인 도어북스에 도착. 건너편에서 품에 안고 간 책과 함께 인증샷 하나 남겨주고 책방에 들어섰더니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책방지기님. 대전에서 지역과 연계된 디자인 작업도 활발히 하는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책방의 느낌이 굉장히 단정하면서도 매력있었다. 


사각형의 안쪽 공간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도어북스
멋진 책들 사이에 한 자리 차지한 미란다처럼의 모습을 살포시 찍어왔다


책방 몇 군데에 입점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책방에서 선뜻 현금을 주고 사기에 <미란다처럼>이 비싸게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소규모 서점들을 살란다는 취지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지만 사실상 10% 할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 서점뿐이다. 왜냐하면 출판사에서 서점으로 책을 유통시킬 때 대형 온라인서점과 작은 책방에 넘길 때의 '공급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가가 만원인 책을 온라인 서점에는 60%의 공급률에 주고 지역 서점에는 70%의 공급률에 준다고 할 수 있다. 만원짜리 책이 팔렸을 때 온라인 서점 대 출판사의 수익은 4천원:6천원이지만 오프라인 서점 대 출판사의 수익은 3천원:7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책방에서 만원짜리 책을 한 권 팔면 남는 게 3천원인데, 거기에서 10% 할인까지 하면 도저히 책방을 운영할 수 있는 수익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곳이 많을 것이다. (할인을 한다고 해서 오프라인 특성상 그만큼 많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할인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듯하다. 대신 요즘에는 카페처럼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는 책방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요즘에는 온라인 서점에서 기발한 굿즈를 많이 만들어서 '굿즈 사면 책이 따라오는 듯한' 모양새로 이벤트를 많이 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도서정가제로 인해 할인으로 판매 유도를 못하다 보니 등장한 마케팅이기도 한데, 책을 소비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책 구매가 온라인 서점에만 쏠리는 부분이 좀 아쉽다.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온라인 서점에서 사게 되고... 


그러니 오프라인에서 책을 샀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책방에서만!' 미란다처럼 에코백!


가벼운 에코백. 뒷면에는 영드 <미란다>에 나오는 유행어인 "Such Fun!(아이고, 재밌어!)"을 넣었다.


가방을 만들고 보니 그냥 책방에 보내면 책방지기가 따로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책과 함께 포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책을 사면 에코백을 준다는 메시지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다이소에 가서 비닐 포장재와 판넬을 샀다.


책방에서만 에코백을 드립니다!


포항 달팽이 책방에 진열된 모습


속초 동아서점에서 책을 받고 예쁘게 찍어 보내주신 사진


<미란다처럼>이 입점하게 된 책방들이 점점 늘어가서 2017년 2월에는 이렇게 미란다처럼 입점 책방 전국 지도(?)를 만들었다.



그동안 직접 가서 찍었던 <미란다처럼> 입점 서점들 (다 다른 곳이랍니다)



책방에 입고 문의를 하면 거절 당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다. 당연히 한정된 공간, 특히 대부분은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데 자신이 직접 팔아야 할 책들을 큐레이션해야 하니까 책방을 어떤 책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은 책방지기의 일이고 권한이니까. 다만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을 때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특히 꽤 호감가던 책방일 경우에는 괜히 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어쨌든 책을 짊어지고 출동하는 일 자체가 내게는 여행이고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슬기로운낙타-달팽이 책방 1박 2일 여행은 돌아와서 글로 쓰니 3편이나 되었을 정도로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책방에 다녀온 경험을 브런치에도 올렸는데 쓸 때는 좀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때의 나를 궁디팡팡 해주고 싶을 정도로 뿌듯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임시저장만 해놓고 올리지 못한 책방도 있는 게 좀 아쉽다.)



포항은 책방이다

나무 숲과 아파트 숲 사이, 반반한 책방

신선하고 낡은 매력, 프루스트의 서재

대학로에 핀 노란 책방, 데이지북

무한한 명랑 에너지, 책방 슬기로운 낙타

30년 된 서점의 새로운 탄생, 대륙서점

종합서점, 일상을 이어주는 책의 네트워크 - 동아서점

분당에도 드디어, 좋은날의 책방


책방에 가면 무엇보다 어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공간을 꾸려가는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사회라는 몸 속에서 내가 만든 책으로 하나의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번역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책을 만들 때가 아니라 책방에서 책이 어떤 사람들의 손에 의해 어떤 사람들에게 팔리는지 확인할 때가 진짜 '출판'이라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책은 다른 사람의 손을 만나야 비로소 '출판'되는 것이다.


작은 책방과 거래를 시작할 때 '공급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작은 책방의 위탁 공급률은 암묵적으로 70%로 고정되어 있어서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지만 작은 책방을 다니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책방 입장에서 책을 거래할 때도 불합리한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2015년도에는 아직 작은 책방이 많이 생기기 전이라 도매상에서 매출이 적은 책방과는 거래를 잘 하지 않으려 했고 직거래를 꺼리는 출판사들도 많은 상황이었다. 물론 70%라는 공급률도 협상의 결과라기보다는 그냥 편의에 맞춰진 공급률이었을 것이다. 대형서점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60%라는 공급률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출판의 전통적인 유통 특성(위탁 판매, 어음 결제)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반품도 적고 현금 결제를 바로바로 해주는 온라인 서점의 불합리한 공급률을 받아들이고 책을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마 시장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서점이 한창 생기던 시절 무료배송 정책으로 서로 경쟁을 한 것도 구조를 악화시켰다고 본다. 분명 배송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발생하는데 진공 상태로 사라진 듯한 배송 비용은 출판사가 부담하는 공급률 속으로 숨어들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배송도 무료로 해주고 책값도 싼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즘에야 동네 서점들이 조금씩 독특한 개성과 지역과의 연계성을 띠며 생겨나고 있지만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기 전 동네 서점은 참고서 위주의 문구점이 대부분이었으니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산다는 건 전혀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도 했다.


출판에 관여한 모든 당사자가 지금의 시장상황을 만들어낸 것 같다. (정부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출판 시장 규모가 점점 쪼그라드는 마당이라, 도서관이 기본적인 수요를 창출해줘야 소규모 출판사나 수요가 한정된 책을 펴내는 이들이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도서관을 짓는 게 단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관련 정부기관의 대응 속도도 느리디 느린 마당이고, 동네마다 서점들이 존재해야 책 문화도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으니, 지역 서점들이 문화의 연계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출판의 관계자들이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출판 분야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규모와 판매력에 따라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당연히 출판사, 유통사, 독자 어중 어느 한 입장이 항상 갑인 상황은 아니다. 출판사에도 임프린트를 주렁주렁 거느린 대형 출판사부터 1인 출판사까지 다양한 층위가 있고, 유통사에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대형서점부터 지방 소도시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소규모 서점까지 다양하다. 독자도 구매력이 큰 소비자부터 그냥 한 달 용돈을 아껴 책 한 권을 사는 학생까지 다양할 것이다. 


대형 서점 또는 회원이 많은 온라인 서점은 공급률을 거의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있다. 물론 분야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협상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첫 거래를 할 때 제시하는 사례들을 들어보면 공급률을 통보식으로 전달한다. 대형 출판사라면 책의 종수도 많고 매출액도 클 테니 서점과 공급률을 협상할 여지가 있겠지만 소규모 출판사일 경우에는 여의치 않을 것이다.

 

반대로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만원짜리 책을 출판사에서 6천원을 주고 가져온다면 작은 서점이나 지방 서점은 도매상이나 직거래로 7000원을 지급하고 책을 공급받는다. 출판사든 서점이든 규모가 적으면 불리한 조건에서 거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많이 팔 수 있는' 규모 있는 서점과 출판사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의지에 따라 공급률이라는 숫자가 정해지고 그것을 따라야 책을 팔고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청개구리,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자유 일꾼 아닌가. 


나는 작은 책방보다 대형 서점에 유리한 그 숫자를 뒤집고 싶었다. 책방에 입고 문의 메일을 보낼 때 공급률을 협상할 수 있다고 적고 70%가 아니라 위탁 65% / 현매 60%의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겨우' 책 1종에 겨우 5%였고 책방에서 계산하기에도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거래 당사자 간에 '협상의 여지'가 있는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한 달에 한, 두 권 팔리는 책의 공급률을 5%로 낮춘다고 서점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진 않겠지만 그냥 혼자만이라도 그 관행을 뒤집고 싶었다. 


어느 날, 우연히 속초에 갔다가 지역서점이었던 동아서점이 장소를 옮겼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약도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기도 했는데 돌아와서 꼭 그 서점에 <미란다처럼>을 입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생긴 책방이 아닌 오래된 지역서점과는 처음 시도하는 직거래였다.

 


책덕에서 동아서점에 보낸 메일 :


안녕하세요!

저는 1인 출판사인 책덕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희라고 합니다.

4월에 첫 책, <미란다처럼 : 눈치 보지 말고 말달리기>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요.

도매상 거래가 부담스러워서 인터넷 서점과 작은 책방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는데,

혹시 동아서점에 1권이라도 입점할 수 있을지 궁금하여 문의 드립니다.


위탁 판매는 65%, 매절은 65%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참고)

그리고 오프라인 책방에서는 정가 판매이기 때문에 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직접 제작한 에코백을 같이 드리고 있습니다. (참고)

동아서점에서도 요청하시면 에코백을 책 수량에 맞춰 같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덧

일부러 동아서점에 문의드리는 이유는 콕 찝어서 동아서점에 책을 진열하고 싶어서입니다.

올해 초에 속초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요.

저는 여행을 가면 꼭 그 동네 서점을 구경하는 습관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옮기시기 전 매장만 보고 왔습니다. (일행이 있어서 옮기신 서점에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이에요.

근데 이 안내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음에 꼭 와야지- 하고 결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을 만들고 다시 찾아봤는데 서점 모습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동아서점에서 책덕에 보낸 답장 :

김민희 님, 안녕하세요?

저는 속초 동아서점에서 일반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건이라고 합니다.

먼저,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예전 서점에 붙여놓은 약도 사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ㅎ) 

책덕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우선 5권을 매절하고 싶습니다. (매절 65%, 위탁판매 65%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오타지요? 매절 60%인가요?)

에코백도 함께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의하셔야(?) 할 건, 생각해 봤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저희는 책덕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연락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굼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바보 같이 오타를 넣어서 보냈는데도 친절한 답장이 메일함에 날아왔다. 이 메일을 읽고, 특히 응원한다는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두근두근 날아갈 것 같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사실 서점에서는 자잘한 작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면 품은 많이 드는 반면 매출은 크지 않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많이 만들어내는 출판사나 도매상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동아서점은 '겨우' 책 한 권 낸 책덕의 책을 위탁이 아니라 먼저 현금을 주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매절로 주문을 했다. 안 팔리면 반품할 수 없어서 그대로 재고가 되는데 판매할 수 있다는 책방지기의 판단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5권 모두 팔리고 후에 추가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속초 동아서점의 이야기 『당신에게 말을 건다』


동아서점도 팔리는 책만 파는 기존의 서점 운영 방식이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출판물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 고군분투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동아서점에 방문했을 때 독립출판물만을 따로 진열한 커다란 매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서점의 이야기가 담긴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읽어보면 독립출판물을 서점에 진열하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2016년 방문했을 때 보았던 동아서점의 독립출판물 매대


규모가 작은 서점과 출판사가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유통 구조가 건강한 걸까. 생존이나 공존보다는 편의에 맞춰 짜여져 있는 숫자와 구조에 대해 오늘도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결국 규모의 문제로 귀결되는 상황이 답답하지만, 그리고 꼴랑 책 2종뿐인 작은 출판사가 고민하기에 너무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작으니까 더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동아서점을 비롯한 작은 책방들과 접촉하면서 책으로 연결된 세계 안에서 한 주체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고 자신만의 일과 삶을 꾸리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정말 큰 위안이 된다.


출판 시장을 멀리 봤을 때 지역 서점이 망하고 소규모 출판사가 망하면 대형 서점이나 대형 출판사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독점 체제가 아니라 서로 상생하며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책을 안 읽는 독자, 할인 경쟁을 부추긴 서점, 싸구려 책만 만드는 출판사만 탓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각자의 정의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세운 나의 정의는 내가 속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불평등한 시소를 조금이라도 수평에 가까워지도록 균형을 맞추는 쪽에 앉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고민하는 것은 나의 '일'이자 '삶'이기도 하다. 책을 만들어 파는 이 구조를 외면하고 출판이라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수평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수평 상태는 대한민국 곳곳에 개성 있는 서점들이 있고 출간되는 책의 종류도 형태도 다양해서 TV 프로그램과 연예인 가십을 즐기는 사람만큼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사람도 지금보다 딱 4배 정도 많은 세상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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