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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29. 2018

마을 시장에서 책 팔기

길에서 책을 파는 방법


책을 만들어 서점에 보내고 나니 심심했던 것인지 나는 또 이런 것을 만들었다. (대체 과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인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뽑기' 해보고 싶지 않나요?


요약하자면 출판사에서 직접 책 팔러 나가서 좌판 깔고 눌러앉아 있겠다는 허술한 기획인데, 사람이 안 와도 퍼포먼스처럼 해봐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뽑기' 같은 것도 마련해볼까 했는데 결국 실현해보진 못했다(흑). 어릴 때 봤던 커다란 물고기 엿 뽑기 같은 거 해보고 싶었는데! (책을 팔고 싶은 건지 퍼포먼스를 하고 싶은 건지...)


독립문 공원의 '북파크'라기엔 좀 초라한 북카트


어쨌든 기획을 하긴 했으나 하루 방문자가 200명 남짓인 내 블로그에만 올려놨으니 누가 부를 리가 있나. 어릴 때 자주 놀러 갔던 독립문 공원에 이동식 도서관 카트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나도 근처에서 돗자리라도 깔고 앉아 있어 볼까 하다가 근처 동네인 연남동(서울 마포구)에서 마을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을시장 이름은 '따뜻한 남쪽마을'이었다. 


어릴 때 구경 가던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늘어놓고 시크하게 앉아있던 창작자들이 생각났다. 오, 나도 그렇게 해볼 기회가 온 건가? 판매자로 등록을 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장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딸랑 <미란다처럼> 하나만 가지고 나가기도 좀 그래서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필름 사진엽서를 주섬주섬 포장하기 시작했다. 가격표도 하나, 하나 적어서 붙이고 푯말도 만들어서 붙여서 어떻게 배치할지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가장 가슴 졸이며 신경 쓰는 것은 바로 날씨다. 마을시장이 열리는 당일에는 비가 올락 말락 아리까리한 날씨였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준비한 짐을 바리바리 싸서 연남동으로 출동했다. 아이스박스와 상자를 이어 붙여서 만든 테이블을 들고 배정된 자리에 좌판을 벌였다.


박스를 이어붙여 만든 좌판의 모습


옆자리에는 아이들용 액세서리를 팔았는데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꽤 있었다. 가족 단위로 많이 방문하는 마을시장이라 그런지 먹거리나 아이들 용품이 인기가 많았다. 역시나 내 부스에는 파리만... 


그래도 뭐 "난 놀러 나왔으니까 괜찮아!"라고 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조금 있으니 이제는 해가 반짝 비추기 시작했다. 어우, 뜨거워.


갑자기 쏟아진 비에 젖은 좌판


마을시장 모습을 사진으로 스케치하는 스태프분이 다가왔다. 심심한데 잘됐다 싶어서 말을 걸었는데 으아니, 운명의 데스티니! 미란다 덕후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교보문고 가서 책도 샀어요."


이 분이 바로 '어떻게 알고 샀는지 알 수 없다는 교보문고에서 책 산 독자'였구나~ (왜냐하면 대형서점에서 <미란다처럼>이 평대에 깔려 있는 곳은 없으므로 미리 알고 가서 찾지 않는 한 사기 힘드니까.) 너무 반가워서 마음속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미란다 너무 좋아한다며 책 번역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바람에 정말 가슴이 찡(x1000000)-했다.


제멋대로 벌인 일인데도 응원하러 놀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서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다. 매일 만나 시시콜콜 잡담을 나누지 못하더라도, 마치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가 마주쳤던 느낌 좋은 사람처럼 어딘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잘 살아남아야지 하는 용기를 얻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리할 쯤에는 미란다를 좋아한다며 에코백을 사간 두 분도 있었다. 그렇다. 미란다 덕후가 아니면 에코백에 새겨진 문구를 반가워할 리가 없다.


미란다 덕후라면 알아보는 'Such Fun!'


이렇게 써치 펀(Such Fun)한 마을시장을 마무리하고 판매한 금액의 10%를 봉투에 담아 마을시장 사무국에 제출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긴 했지만 몸을 써서 일했다는 생각이 뿌듯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 <미란다처럼>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1cm 정도 커진 기분이었다.


그후 슬기로운 낙타와 책덕의 콜라보로 함께 소소시장에 나가기도 했다. (5부 완판!)



서점에서 책덕 좌판을 


요즘엔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무언가를 팔려고 하면 판매할 통로가 뻔하다. 오픈마켓, 인터넷 쇼핑몰, 대형마트, 대형서점,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영화, 음악)... 뭐를 팔든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유통사에 의존하게 되고 유통사는 막강한 노출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 


보통 책을 유통할 때는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도서인터파크 등의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의 대형서점, 그리고 전국 각지의 서점과 연결되어 있는 도매상과 계약을 한다. 마케팅은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 위주로 이루어진다. 요즘에는 역시 인터넷에서의 바이럴 마케팅도 중요한지라 네이버 포스트라든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광고,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크리에이터 협찬 광고도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파는 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꺼이 돈을 지불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마케팅에서는 타깃팅이라고 하지.) 마을시장에서 책을 팔고 보니 남들이 원래 팔던 방식, 원래 하던 영업 말고 다른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다른 방식, 다른 방법으로, 나니까 할 수 있는 것들... 책 한 권 팔라고 별짓을 다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별짓 하려고 시작한 거니까, 뭐.


역시 책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란다처럼>이 있는 서점에 책덕 좌판을 소개하고 불러주시면 어디라도 뛰어가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무작위 광고로 서로를 괴롭히지 맙시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있을 독자를 찾아서 책덕이 서점으로 갑니당!


<미란다처럼>으로 이벤트를 할 수 있다면. 제가 하루 서점에 좌판을 깔고 다른 책을 사러 온 독자더라도 소통하고 재밌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방에 있는 서점이라면 더 좋지요. 책 팔러 간다는 핑계로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차비만이라도 벌 수 있다면 정말 보람 있을 듯)

할인이 아니라 가치를 얹어주는 도서 판매 방식을 꿈꾸며 이것저것 시도해볼랍니다. 같이 재밌는 하루를 보내주실 서점, 북카페, 카페 등 주인장분이 있다면 초대해주세요. ^ ^ 조그마한 테이블 하나만 마련해주시면 책덕 좌판을 벌여볼까 합니다. (공간이 협소하다면 낚시의자라도 하나 구비해해서 가야지요.)


제가 대략적으로 생각한 진행사항은 아래와 같아요.

- (서점일 경우) 책 판매 금액의 40%를 서점에 지급. (책 공급률로 치면 60%지요.)

- (카페일 경우) 테이블 사용료를 내고 책덕 좌판을 벌인다.

- 소비자 여러분에게는 현금영수증 발행 가능! 앱도 받아놨답니다. 후후!


혹은... 공간이 너무 심심하여 호객용 인간이 하나 필요한 경우에도 불러주세요.

저는 뭐... 책이 안 팔리면 혼자 놀러 온 척하면 되니까요. 하하하...


이 허술한 기획에 호응해준 책방들이 있어서 즐겁게 책덕 좌판을 벌였다. 대부분 북토크를 합친 형식으로 '1인 출판 이야기'를 나누거나 '미란다 상영회' '과일 친구들 만들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지역 곳곳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지역마다 만남의 색도 달라서 <미란다처럼>이 더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문화적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더 보람도 느껴졌던 것 같다. 


포항 달팽이 책방에서 했던 '미란다 상영회'와 '과일 친구들 만들기'


포항 달팽이 책방에서는 <달팽이 트리뷴>이라는 책방 신문이 발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함께 과일 친구들을 만들었던 터미네이터 님이 남겨준 <미란다처럼>의 두 줄 리뷰가 실려있는데, 책방에 갔던 기억과 함께 고이 보관해 놓고 있다. (TMI : 터미네이터 님이 만든 과일 친구는 당근이다.)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달팽이 트리뷴>에 실린 터미네이터 님의 글.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갇혀있던 <미란다처럼>에 콧바람을 쐬게 할 수 있는 '책덕 좌판'은 혼자 생각해본 것이라 처음에는 어설퍼 보였지만 초대해준 책방을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내가 만든 책은 안 팔리는 책이 아닐까'하고 의기소침하던 차에 벌였던 책덕 좌판. 신기하게도 그곳에 독자가 있었다. 직접 몸으로 느꼈던 경험이 내 안에 자리 잡았기에 오늘도 열심히 책을 만든다. 


책덕의 놀음에 같이 동참해준 책방지기 그리고 독자분들 정말 고마워요.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연재하는 일이 쉽지 않네요. 정신 차려보면 토요일이라 부랴부랴 마감 시간 전까지 모니터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어느새 9화까지 오게 되었는데, 펑크 없이 연재한 것이 스스로 대견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달아준 응원의 덧글 덕분에 게으름을 이기고 쓸 수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 댓글을 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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