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리 Dec 02. 2015

무한한 명랑 에너지, 책방 슬기로운 낙타

책덕, 책방에 가다

망해도 즐거운 덕후 출판이라니, 말도 안 돼!


그래, 맞다. 망하고서 즐거울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망한다'의 기준을 '돈을 많이 벌었는지 아닌지'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얻은 것들이 참 많다. 무엇보다도 출판을 하지 않았다면 접하지 못했을 사람들과의 만남과 경험이겠지. 올해 <미란다처럼>을 만들면서 얻은 귀한 인연 중의 하나를 꼽아 보라면 지민이를 빼놓을 수가 없다. (대구의 책방 슬기로운 낙타의 주인이자 브런치에 방낙타 여행기를 연재 중인 그 사람이다.)


아무리 타고난 집순이에 혼자놀기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상상만 하던 쓰잘데기 없는 짓을 같이 할 사람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조금 실없고 어설퍼 보여도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은데 누가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 아이는 대구에 있었고 나는 서울에 있었다. 그 아이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일하다가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왔고 대구에 서점을 차리겠다고 당구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계약했다. 나는 쓰잘데기 없는 잡스러운 공부를 하고 프로그래밍 책을 만들다가 번역을 하고 책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몇 십년의 시간을 보내온 두 사람의 세계가 접선한 곳은 바로 이곳 '브런치'였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주가 도와준' 것일지도 모른다. (만나야 한다!) 


#첫 만남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에서 하는 소소예술시장에 구경을 가자는 지민이의 제안을 덥썩 물었다. 비가 오는 토요일 오전 광화문역에서 만난 지민이는 마치 고향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냥... 그냥... 편했다. 우리는 떡국을 먹고 같이 소소시장을 구경하며 영업(책방 슬기로운 낙타 명함 돌리며 입점 제안)을 하고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나이를 먹어서 만나는 인연들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왠지 이 친구와는 또 만나게 될 것이라 예감했다.


#두 번째 만남

포항에 있는 달팽이 책방에 놀러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우리는 드디어 날을 잡았다. (사실은 내가 포항에 갈 겸 대구에 가겠다고 했더니 지민이가 그럼 나도 포항 가겠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드디어 지민이의 공간, 슬기로운 낙타에 놀러가는 날이 되었다.


서점을 2층에 내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슬기로운 낙타는 2층에 있다. 광활한 당구장을 책방으로 바꾸고 간판을 달았다. 조용하다 못해 황량한 골목 사이에 낙타가 짠- 하고 나타났다.



2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묘한 매력이 가득한 슬기로운 낙타가 나타난다. 아직 공식 오픈 전이라 꽉 차 있진 않았지만 당구장과 책방의 매력이 뒤섞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책방이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 후문에 독립출판물을 가득 채운 책방을 내다니... 나도 참 못말리게 멋대로 사는데 너도 참...!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농담 삼으며 웃곤  한다. 

 

지민이가 내주었던 미지근한 화이브미니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슬기로운 낙타는 당구장으로 쓰던 공간이다. (책방 계약 이야기는 지민이의 글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내가 가본 독립출판 서점 중에 가장 '광활'하다. (크기 만큼은 오바 많이 보태서 교보문고급.) 사진에서 느껴지듯이 다른 어느 서점에서도 접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나는 슬기로운 낙타가 트렌드를 한껏 흡수하거나 '세련세련미'를 뿜뿜 내뿜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고대로 간직한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지민이 동생 방낙타와 내 친구 로모 함께 기념촬영


내가 갔던 때는 여름이었던 터라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 여름날에는 에어컨이 잠깐 고장이 나서 훈훈(!)했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책방 온도는 어떨지 조금 걱정이다. 


우리는 조촐하게 당구장 주변에 모여 앉아 1인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내로 나가서 맛있는 물회를 먹었다. (아, 침 나오네.) 지민이와 명람함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만나고 훈훈한 마음으로 지민이네 집으로 가서 잠을 잤다. 


우리가 두 번째 만나는 날이었고 그 진한 만남은 아직 이틀이 남아있었다.


# 아직 두 번째 만남

뜨끈뜨끈한 대구의 밤을 함께 견뎌낸 우리는 포항까지 로드트립에 나섰다. 장롱면허 10년차인 나는 앞좌석에 실려서 가고 지민이가 운전대를 잡았다. 빨간 자동차, 뜨거운 날씨, 가을방학 1집... 포항가기 좋은 날이었다.


우리가 타고온 빨간 자동차, 달팽이책방의 빨간 자전거...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무려 3화에 걸쳐서 쓴 포항은 책방이다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포항에서 우리는 내내 함께 했으니까. 아참, 달팽이책방에서 점심 먹고 모임 하고 저녁 먹고 희곡을 읽고 술자리까지 한 우리는 미리 숙소를 못잡은 탓에 찜질방까지 갔는데 거기서도 쫒겨나서 결국 차에서 눈을 붙였다. 더워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모기에 시달리다가 새벽에 눈을 뜬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달려 대구에 도착했고 도착하자 마자 쓰러져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사람들이 "두 분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 친한가봐요~"라고 할 때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난 거예요~!"라고 답하면서 나 또한 속으로 '한 번 본 사람과 이틀 밤을 자고 여행하다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민이 어머님이 "너도 얘랑 비슷한 과구나~"라고 했을 때 '아, 그래서 그런가'라며 수긍하긴 했지만.


길고 긴 두 번째 만남이었다.



# 세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으로부터 한 달 뒤, 글이 안 써져서(글은 무슨 사진 보니 딴짓하고 있었구만...) 멍 때리고 있는 와중에 지민이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서울역이라고. 그렇게 해서 약 30분 뒤 카페에 마주 앉은 우리는 앞으로 어떤 호작질(사전에는 '손장난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지만 추측컨데 경북 지방 사투리로 '딴짓' '쓰잘데기 없지만 재밌는 짓'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을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대구에 있던 사람과 서울에 있던 사람의 만남 치고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세 번째 만남이었다. 


반반북스에서

# 네 번째 만남

노원에 있는 반반북스에 <미란다처럼>을 입고한 뒤 지민이에게 알려줬더니 당장 가보겠다며 바로 다음 주에 서울로 날라왔다. 조금 늦은 시간에 간 탓에 반반북스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했지만 재밌고 어두운(?) 이야기를 반반북스 책방지기님과 함께 나누고 왔다. 



지난 번에 호작질을 궁리하면서 신청했던 소소시장이 우리의 다섯 번째 만남이 될 터였다.














# 다섯 번째 만남

가장 최근에 만났던 기억이다. <책덕x슬기로운 낙타>로 함께 신청했던 소소예술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 아니고 아주 맑은 가을날이었다. 예전에 혼자 나갔던 연남동 마을시장과 비교해 보니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항상 책, 책방과 함께 했던 우리 둘. 오늘도 지민이는 다음 달 월세를 생각하고 나는 다음 달 창고비를 생각한다. 서로 잘 알지 못하지만, 한편으로 서로를 잘 아는 우리는 내년에도 새로운 호작질을 궁리하지 않을까 싶다.



책방에서 산 책

안녕하세요. 모로코에서 온 방낙타입니다.


서로 만나기 전에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던 지민이의 첫 책이다. 방낙타의 시점에서 모로코 여행을 서술한 책인데 귀엽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고 지민이스럽다. 스티커를 넉넉히도 챙겨 주어서 아끼지 않고 여기저기 붙였다. 얼마 전에는 두 번째 책이 나와서 예약해 놓았는데 표지가 내 마음에 쏙 든다. (어쩌라고?)

 

사진 출처 : http://cosmicfield.net/


제목은 듣고보니 치앙마耳, '듣다'라는 동사와 한자로 '귀 이'자를 집어넣은 센스. 듣는다는 컨셉에 맞게 안에 QR 코드를 찍으면 지민이가 채집해온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나의 호작질 프렌드로서 손색 없는 센스쟁이다.


지민이를 떠올리면 항상 '명랑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 안에 물론 다양한 감정이 들끓고 있겠지만 지민이의 표현 방식은 항상 명랑하다. 슬기로운 낙타만 봐도 알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지민이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슬기로운 낙타

블로그 http://cosmicfield.net/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angcamel

매거진의 이전글 교보찡의 문자는 항상 반갑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