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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Sep 29. 2018

그러니까, 중쇄를 찍자!

멋대로 벌인 일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 <중쇄를 찍자>는 출판사 만화잡지 편집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편집자들이 다양한 유형의 작가들을 관리하고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를 책(단행본)으로 만들고 팔기까지 고구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어쩐지 마음 깊숙한 곳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듯하다. 주인공인 유도선수 출신 신입 편집자 쿠로사와 코코로의 열혈 에너지에 전염되는 느낌이다.


일드 <중쇄를 찍자> 포스터


원작인 만화를 먼저 봤지만 드라마는 역시 생생한 매력이 살아있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편집자 생활을 한 경험 때문인지 더욱 공감을 하면서 보았는데, 주변에 편집자가 뭐 하는 직업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재밌게 봤다고 하니 출판의 세계를 흥미롭게 잘 풀어낸 작품인 듯하다. 


만화 <중쇄를 찍자>


주간 바이브스 편집부에는 각양각색 다양한 편집자가 있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빠쁘게 일을 하지만 그 편집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박수를 치는 순간이 가끔 있다. 바로 초판을 냈던 책이 다 팔리고 중쇄가 결정된 순간이다.  

<중쇄를 찍자> 만화의 한 장면


그리고 이런 대사도 나온다.


책을 만드는 이상 중쇄가 목표야.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미란다처럼>을 만들 때는 '중쇄'는 정말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웃기게도 처음 만든 책에 1쇄 인쇄 날짜를 적어 붙혀 놓은 건 뭐람?) 어쨌든 처음 제작한 1,500부가 다 팔리면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측은 비관적으로, 준비는 철저히


워낙 비관적인 성격 탓에 뭘 해도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시작을 하곤 한다. 책을 만들던 당시에 저자 '미란다 하트'의 국내 인지도는 그야 말로 한 줌. 지금처럼 네이버나 왓챠플레이에서 영드 <미란다>를 서비스하기도 전이었고,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스파이>가 개봉하기도 전이었다. 


아무래도 책을 그냥 출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힐 것 같아서 눈여겨 보던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해보기로 했다. 한 줌이라도 덕후들을 모으고 모아서 책을 만들어야 그나마 이 책에 대한 수요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텀블벅에서 프로젝트 하는 창작자들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첫 번째 텀블벅 프로젝트


첫 프로젝트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머지 리워드로 머그컵도 만들고 마라카스 악기도 준비하고 정말 열심열심이었다. 프로젝트를 올려놓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텀블벅 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늘은 몇 명이나 후원했나 살펴보기도 하고 미란다를 알 만한 커뮤니티에 가서 소심하게 홍보글을 올리기도 했다. (눈팅족에게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게시글 쓰기...)


프로젝트 후원자를 위해 준비했던 리워드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판을 하는 게 될지도 몰라 더 열정적으로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에 책을 계약한 날로부터 5년이 흘렀고, 재계약을 할 시점이 왔다. 그리고 창고에는 1,500부였던 <미란다처럼>이 100부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미란다처럼>은 날개 돋힌 듯 팔리지 않았다. 한 권도 안 팔리는 날이 아마 팔리는 날보다 더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큰 서점보다 작은 책방에서 더 반갑게 구매해주는 독자들도 있었고 책을 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는 독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지만 꾸준히 <미란다처럼>을 찾는 독자들이 아직 있었다. 


만들기는 내 마음대로 만들었지만 중쇄를 찍는 건 역시 독자의 몫인 것 같다. 책의 생명력이란 참 아리송하다. 만든다고 해서 다 팔리는 것도 아니고 안 만든다고 해서 찾는 독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생애 처음으로 '중쇄'를 찍게 되었다. 이번에는 텀블벅 후원자들만을 위한 북커버를 하나 더 만들었다. 책 위에 씌울 수 있는 심플한 북커버와 책갈피.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고마운 분들에게 보내드리고 싶다. <미란다처럼>의 초판도, 중쇄도 모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첫 프로젝트 때 그렸던 낙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넷 웹페이지 하나만 보고 내 돈을 투자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크라우드 펀딩을 할 때마다 항상 어깨가 무겁다. 


리워드로 준비한 북커버와 책갈피


중쇄 프로젝트라서 시작하기 전에 과연 후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며칠 안 되어 목표금액 100만원을 달성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직 <미란다처럼>의 생명력은 살아있구나.


멋대로 벌인 일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중쇄를 찍어야 한다.



텀블벅에서 '중쇄를 찍자' 기획전에 참여중입니다. 10월 20일까지이니 아직 <미란다처럼>을 소장하지 못하셨다면 이번 기회에 하나 들여보세요. (보온 기능은 없지만 읽으면서 이번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지도...?)


https://www.tumblbug.com/miranda2



* <중쇄를 찍자>의 원작 제목은 <중판출래>이다. 책의 초판을 다 팔고 나서 추가로 인쇄하는 것을 '중판' 혹은 '중쇄'라 하고 중판에 들어가는 행위를 '중판출래'라 한다. '중판출래'는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업계용어다. 한국에서는 재쇄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최근에는 '중쇄'라는 용어도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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