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태야. 이 쪽으로와! 눈을 밟으며 걸어야 덜 미끄러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오르막길을 만나게 되었다. 사뿐사뿐 걷기 시작했는데 꽤나 미끄러웠다. 누군가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올랐다. 순간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올랐던 동네 언덕길이 생각났다.
그 옛날 군산고등학교 정문과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 정문을 잇는 언덕길이었다. 언덕길 정상에는 새날상회가 있었고 나는 그 집 단골이었다. 그 집에서 쫀드기를 많이 사 먹었다. 거무스레한 꿀이 들어있던 쫀드기를 아껴먹다가 옆구리가 터지면 꿀이 삐질삐질 새는 바람에 혓바닥이 급작스레 달콤함을 맛보곤 했다. 가끔 쫀드기를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우리는 한 겨울에 새날상회 앞에서 출발해 군고 정문까지 썰매와 스키를 탔고 내려갔다. 대나무를 산에서 잘라와 칼과 망치를 이용해 길게 반으로 쪼갰다. 우리는 아궁이에 둘로 쪼갠 대나무의 한쪽 끝을 넣고 꺼내기를 반복하며 구부렸다. 그다음에 대나무 마디를 칼로 다듬어 매끈하게 만들었다. 손재주가 없는 어린아이들은 동네형들이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코를 훌쩍거리곤 했다. 형이 없는 아이는 친구 형의 말을 잘 들어야 다음 순번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썰매를 타고 대나무 스키를 타며 겨울을 났다.
그러던 어느 겨울. 미끄러운 빙판과 만나는 썰매 다리에 굵은 철사를 매달고 나타난 형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그 형을 헐크라 불렀다. 본인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헐크형하고 부르면 뱃속 아래에서부터 가래가 끓는 소리를 목구멍으로 올려 킹콩 소리를 내곤 했다. 시커먼 얼굴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무서운 쉰 목소리를 내니 우리 눈에는 영락없는 헐크였다. 나도 몇 번 따라 했었는데 목감기에 걸린 것 마냥 목이 아팠다. 그렇게 무서웠던 헐크형이 굵은 철사를 썰매 다리에 부착해, 다리를 땅에 구르지 않은 채 썰매를 타고 가장 멀리 내려가는 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헐크형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았던 것 같다. 어느 날 헐크형은 대나무 스키가 아니라 PVC 파이프를 실톱으로 갈라 만든 스키를 가져왔다. 말이 스키지 당시 우리가 신는 신발보다 조금 더 긴 길이의 스키다. 이 스키는 성능이 너무 훌륭해서 대나무를 가뿐히 이겼다. 이것 역시 헐크형 작품이었다.
동네 꼬마들이 하루종일 만들어놓은 빙판 경기장은 나와 친구들 얼굴이 비치도록 반질반질했다. 그렇게 놀다 보면 바짓가랑이 끝은 늘 꽁꽁 얼어있었다. 우리는 해가 달에게 자릴 양보하기 전에 집으로 흩어지곤 했다. 겨울이라 낮이 짧은 탓도 있지만 집집마다 엄마들이 밥 먹으라 목청을 높였기에 우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우린 다음날 다시 경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는데 누군가 연탄재를 깨부수어 언덕에 흩뿌리는 테러를 자행해, 빙판이 사라지는 날이 있곤 했다. 우린 울상이 되어 헐크형의 지시로 눈을 뭉쳐와 연탄재 위에 뿌린 후, 발로 눈을 자근자근 다지곤 했다. 그렇게 어른과 아이들의 싸움이 겨울마다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언덕길의 정체성이었다. 미끄럽게 만들어진 언덕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였고 부모들에게는 삶의 현장으로 출발하고 돌아오는 고단함의 시작과 끝에 있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신났고 부모들은 미끄러워 쩔쩔매던 길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나는 엄마와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엄마는 자전거를 끌고 나는 그 옆을 걸었다. 언덕을 덮은 빙판길이기에 엄마에게 솔찬히 미안했다. 나는 말없이 머리를 수그리고 걸었다. 엄마는 나에게, 선태야. 이 쪽으로와! 눈을 밟으며 걸어야 덜 미끄러워,라고 말했다.
눈이 솔찬히 내린 오늘, 자전거에서 내려 회사 앞 오르막 눈길을 오르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나는 눈을 밟으며 걷는다.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고인다. 사랑하는 엄마가 그리운 아침입니다. 그나저나 헐크형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