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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일요일, 아내와의 하루

셔틀콕, 염색, 그리고 막걸리

by 김선태 Mar 17. 2025

  햇볕을 구름이 가린 꾸물꾸물한 날이다. 대전 한밭수목원에 펼쳐진 잔디 위에서 이름 모를 젊은 신랑은 비눗방울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다. 알록달록한 방울을 쫓아 이리쿵저리쿵 뛰어다니는 아이와 연신 이 모습을 사진 찍는 젊은 엄마. 그 옆에서 아내와 오랜만에 셔틀콕을 주고받는다. 바람은 없고 해질녘이라 덥지도 눈이 부시지도 않은 참 좋은 날에 아내랑 오랜만에 배드민턴 운동을 한다. 이상한 것은 바람도 없는데, 힘이 모자란 듯이 나에게 오다 마는 셔틀콕. 아내가 친 공이 날아오다가 툭툭 떨어진다. 힘 있게 공을 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나는 아내에게, 여보! 평소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힘껏 때려봐,라고 했다. 아내가 씩 웃으며 힘차게, 김 선 태, 하고 외치며 셔츠 콕을 때린다.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우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미리 사놓은 염색약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태어나 처음 해본 염색. 염색 결과를 관찰하는 아내. 두피도 염색되는 모양이다. 아내는 나의 정수리, 머리 빠진 부분이 커버된다며 만족해한다. 염색이 잘 되었다 기분 좋은 아내는 돼지고기 간 거 오천 원 값을 사 오란다. 아내의 명을 이행하는 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물론 나의 단호한 의지도 담아, (불쌍한 목소리로) 여보! 막걸리도 사 온다, 했다. 아내는 잠시 주춤하더니 한 병만 사 오란다. 비 오는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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