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 염색, 그리고 막걸리
햇볕을 구름이 가린 꾸물꾸물한 날이다. 대전 한밭수목원에 펼쳐진 잔디 위에서 이름 모를 젊은 신랑은 비눗방울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다. 알록달록한 방울을 쫓아 이리쿵저리쿵 뛰어다니는 아이와 연신 이 모습을 사진 찍는 젊은 엄마. 그 옆에서 아내와 오랜만에 셔틀콕을 주고받는다. 바람은 없고 해질녘이라 덥지도 눈이 부시지도 않은 참 좋은 날에 아내랑 오랜만에 배드민턴 운동을 한다. 이상한 것은 바람도 없는데, 힘이 모자란 듯이 나에게 오다 마는 셔틀콕. 아내가 친 공이 날아오다가 툭툭 떨어진다. 힘 있게 공을 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나는 아내에게, 여보! 평소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힘껏 때려봐,라고 했다. 아내가 씩 웃으며 힘차게, 김 선 태, 하고 외치며 셔츠 콕을 때린다.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우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미리 사놓은 염색약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태어나 처음 해본 염색. 염색 결과를 관찰하는 아내. 두피도 염색되는 모양이다. 아내는 나의 정수리, 머리 빠진 부분이 커버된다며 만족해한다. 염색이 잘 되었다 기분 좋은 아내는 돼지고기 간 거 오천 원 값을 사 오란다. 아내의 명을 이행하는 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물론 나의 단호한 의지도 담아, (불쌍한 목소리로) 여보! 막걸리도 사 온다, 했다. 아내는 잠시 주춤하더니 한 병만 사 오란다. 비 오는 일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