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하다 보니 의사선생들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간장게장 백반 전문점인데 나오는 반찬은 한정식집 저리 가라다. 3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의 숨소리가 가쁘다.
"아줌마, 여기 맥주컵 모자라요. 아줌마, 죄송한데 잡채 좀 더 주실 수 있어요? 너무 죄송해서 자꾸 갖다 달라하기가 미안하네요."
음식점은 가정집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듯했다. 종업원들이 그 많은 반찬을 가파른 계단을 지나 3층으로 나르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의 숨소리가 유독 귀에 거슬렸다. 사장님이었다. 음식을 나르던 사장님 아줌마가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인 땡교수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머, 교수님. 저 아시겠어요?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땡교수는 동공을 확대하면서 아줌마 인사를 반갑게 받았다.
"아! 네! 알죠. 여기 사장님이셨어요? 몸은 어때요?"
"어휴! 죽다 살어났어요. 이제 살것어요."
우리는 방안에 울려 퍼지는 땡교수와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격하게 동감했다. "오! 땡교수! 명의야. 명의!" 어깨가 으쓱해진 땡교수가 자신감 꽉 찬 목소리로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약은 다 드셨어요?"
"어휴! 안 먹었어요. 그대로 있어요. 한번 먹었는데 어지러워서 장사를 못해요. 어휴! 죽다 살아났어요."
갑자기 여기저기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훈훈했던 방안 공기가 급랭 되더니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옆자리 의사선생이 깨진 틈을 메꾸려 맨트를 보탰다. "한 번 드셨어요? 명의네. 명의. 한번 드시고 나으신 거예요. 땡교수 약이 약이 쫌 세지. 쎄." 땡 교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내 약이 쫌 세지!" 그렇게 억지성 훈훈한 마무리가 무탈하게 진행되는가 싶었다. 갑지가 아줌마가 허리를 펴시더니 길게 맨트를 시작했다. "어휴~ 죽다 살어났어요. 교수님 얼굴 보기가 왜 그렇게 어려워요. 우리 신랑이 병가 내고 교수님 뵈려고 왔었잖아요. 근데 교수님이 안 와! 병실에 안 오셔! 다른 환자들 의사들은 다들 오셨다 가시는데 우리 땡교수님만 안 와!" 한쪽 구석에 있던 땡교수 동료가 아줌마를 달래듯 말했다.
"우리 땡교수가 너무 유명해서 바빠요. 미리 전화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어휴! 그건 아니다 싶었죠. 환자가 어떻게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요. 아무튼 교수님 얼굴 뵙기가 너무너무 힘들더라고요. 하루가 가도 안 오시고 이틀이 돼도 안 오셔! 삼일째도 안 와!. 그래서 우리 신랑이 쫓아갔잖아요. 따질라고."
어느새, 방안 토크에서 땡교수만 제외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만나셨어요?"
"아니요. 그냥 왔어요. 어휴~ 죽다 살아났어요."
방안 공기는 아줌마가 입을 여실 때마다 급랭 되고 있었다. 의사선생들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였다. 갑가지 아줌마가 땡교수 옆으로 가시더니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으로 깻잎장아찌 한 잎을 땡교수 밥 위에 '척~'하니 올리셨다. 우리는 숨죽이고 땡교수의 낯빛을 살폈다. 땡교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듯했으나 낯빛은 장아찌 국물 마냥 어두컴컴했다. 아줌마는 깻잎장아찌로 덮은 숟가락을 땡교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종결 맨트를 날렸다.
"이거 정성껏 만든 장아찌예요. 몸에 좋아요. 드세요. 근데 선생님들이 왜 그런데요. 그냥 사실대로 말한 건데.......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 허지 마세요. 자, 어서 드세요."
식사를 마친 후 의사선생들과 헤어졌다. 아마도 자리를 옮긴 자리에서도 주인공은 땡교수임에 틀림없다. 좌우당간에 오늘 하루는 땡교수에게 솔찬히 어려운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신이 아닌 이상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다. 앞으로 식당에 갈 땐 사장님이 아는 분인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