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by 김선태

어제 형님들과 소주를 한잔 했다. 주옥같은 형님 말씀들을 폰에 옮겨 적었다. 아침에 눈을 뜬 선태. 휴대폰 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좌로 한번, 우로 한번 갸우뚱 거린다. 갑자기 미간이 좁혀지는 선태. 메모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누구의 맨트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젯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좁혀진 미간에 골이 깊이 페이다. 마침내 생각나는 한 장면. 오동통한 형님이 말씀하신다.


"고향에 계신 엄마랑 통화를 했어. '엄마~ 에어컨 틀었어?'라고 물으면 엄마는 항상...'응~ 시원해~ 에어컨 안 틀어도 시원해.' 하신다니깐"


앞자리에 앉은 선태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군산에 계신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노상 펼쳐지는 풍경이라 백퍼 동감했다. 그리고는 이야기의 주제가 엄마의 삶으로 이어졌다. 취기가 오른 오동통한 형님이 또 말씀하신다.


"우리 엄마 집 비밀번호는 아버지 생일이야. 왜 그런 줄 알아?"

"글쎄요. 외우기 쉬우니까?"

"아니... 아버지 제사를 기억해야 하니까!"

"......."


선배의 마지막 맨트는 선태에게 무한 명상의 시간을 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잊어야 하는 게 많다. 아픔은 잊어야 행복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시려 애쓰시는 형님의 어머님처럼.


그나저나 나는 외우기 쉬운 날에 소풍을 마쳤으면 한다. 그래야 아내도 덜 힘들 테니깐. 천사(1004) 10월 04일이 딱인 듯싶다. 외우기도 싶거니와 의미도 빵빵한 그런 비밀번호다. 어떤가? 11월 11일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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