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by 김선태

자네들, 내가 한 학기동안 가르친게 이건가!


1990년 기말고사. 골반탈골로 교양영어 수업을 제대로 수강 못한 친구가 시험장에 나타났다. "선태야, 나 시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나는 긴 고민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총학생회 선거운동 중에 다친 친구였기에 더욱 측은했다. "알았어." 나는 친구 녀석이 앉은자리, 그 줄 맨 끝에 앉았다. 교수님은 학생수대로 문제지를 나눠주셨다. 나는 호기롭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강의실 공기를 갈랐다. "교수님, 답지 한 장이 부족합니다." 교수님은 아무 의심 없이 한 장을 채워주셨다. 선태는 차근차근 부정행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글씨체로 답안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자신 없는 문제는 서로 틀린 답을 적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치밀하게 준비했다. 모든 게 준비된 선태가 고개 들어 친구를 찾았다. 헐. 친구가 없다. 나는 답안지를 내는 과정에서 교수님 몰래 친구에게 답안지를 전달할 작정이었다. 모든 게 예상과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거의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가 답안지를 빼앗듯 넘겨받으며, "내가 내줄게."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친구들 답안지와 내가 은밀하게 작성한 답안지를 섞었다. 교탁 옆에 서 계신 교수님께 답안지를 전달하고 돌아섰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자리에 돌아가 가방을 들고 뒷문을 여는 순간까지 순풍이었다. 그때였다.


"김선태 학생~, 자네가 김춘자 학생 답안지 냈나?"

"아....... 아니요."

"그런데 왜 여기에 김춘자 학생 답안지가 있지?"

"아....... 네....... 아까 다리가 아프다며 저에게 대신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수님은 계속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짧은 정적이 날카롭게 흘렀다. 드디어 교수님께서 두텁고 무거운 저음으로 말씀하셨다. "김춘자 학생은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나갔네. 자네 춘자 학생하고 내방으로 오게!" 울상이 되어버린 나는 종종 걸어, 인문대 1호관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 춘자가 있었다. 나와 춘자는 교수님 방으로 갔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공기가 우리 둘을 묶어두고 있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간 방에 교수님이 서 계셨다.


나는 교수님을 존경하던 터였다. 교양영어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입술 주변에 하얀 침이 고이도록 열강 하시던 멋진 교수님이셨다. 나는 너무도 죄송해서 할 말을 잃었다. 교수님께서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자세로 우리에게 걸어오시며 말씀하셨고 우리는 짧게 대답하고 나왔다.


"자네들, 내가 한 학기 동안 가르친 게 이건가? 돌아들 가게. 자네들은 30점씩이야."

"네~ 죄송합니다."


춘자와 나는 영어과목에 F학점을 받았다. 춘자는 휴학을 했고 나는 다음 해에 1학년 후배들과 함께 수업을 다시 들었다. 재수강했다는 이야기다.




자네가 플랑카드 김선태인가?


1991년 2학기. 후배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만들어준 플랑카드가 인문대 녹두광장에 걸렸다. 생일 날짜를 적지 않고 생일주간이라 적은 탓에 일주일 동안 축하를 받았다. 물론 잔디밭에서 막걸리 파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선태에게는 더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살랑거리는 플랑카드 옆을 빠르게 달렸다. 여느 때처럼 수업에 지각하는 찰나였다. 숨 가쁘게 계단을 올랐다. 학번이 제일 빨라, 출석부 맨 앞에 이름이 있는 이유였다. 나는 1년 전 잘못된 행동으로 F학점을 받고 후배들의 영어수업을 재수강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앞문으로는 교수님, 뒷문으로는 내가 동시입장이다.


"김 선 태"

"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시던 교수님이 선태를 바라보며 묻는다.


"자네가 플랑카드 김선태인가?"

"네."

"그래? 자네는 왜 이 수업을 재수강받지?"

"그게... 말씀드리기가..."

"그래? 그럼 수업 끝나고 내 방으로 오게"

"네."


긴 두 시간 강의가 끝난 후, 나는 교수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서 여차여차 자초지종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쭉 들은 교수님이 말문을 여셨고 나는 90도로 꾸뻑 인사를 했다.


"그래? 그럼 다음 시간부터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네. 다만 중간고사하고 기말고사는 보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연구실을 나온 나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폴짝폴짝 뛰던 가슴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교수님,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28년이 흘렀다. 1990년부터 시작된 30점 교수님과의 인연이 돌아 돌아 다시 시작되었다. 모교가 직장이 되었다. 2018년 2학기. 모교에서 첫 학기, 첫 주 수업이 끝난 그제 수요일 저녁. 나는 동료 교수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은퇴하신 교수님 한 분도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도착한 음식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는 동료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왜 안 들어가세요? 또 누가 오시나요?"

"한 분이 더 오세요. 은퇴하신 영문과 교수님."


교수님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어둑 컴컴한 곳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한 분이 걸어오고 계셨다. '헐. 저분은!' 바로 그분이다. 30점 교수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 말씀하셨던 그 교수님. 묘한 기분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내 맘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밤이었다. 그렇게 불콰하게 취해가던 중에 나는 교수님께 소주잔을 올리며 정중히 물었다.


"교수님,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영문과 교수님은 적지 않게 당황하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교수님 기억을 돕기 위해서,


"기억나세요? 30점."

"그래,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고. 자네, 내 덕분에 교수된 걸세. 축하하네."


30점 교수님은 나에게 넉넉한 웃음을 건네며 기꺼이 내 술잔을 받으셨다. 기분 좋게 받으셨고 격하게 나를 안아주셨다. 그렇게도 묘한 밤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긴 밤을 추억과 함께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머리가 띵 하다.


긴 글로 그때의 잘못을 고해성사한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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