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현재 나의 최애 작가를 뽑으라 하면 주저 않고 밀란 쿤데라라고 말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중 처음 읽었던 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읽고 난 직후는 이렇다 할 감동 없이 그냥 책 한 권을 완독 했다는 뿌듯함만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책 내용이 계속 생각나면서 또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그 책을 세 번인가 네 번을 읽게 되었다. 이후 난 밀란 쿤데라의 팬이 되어 농담과 불멸까지 읽었다. 이번 글은 불멸을 읽고 난 후의 글이다.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고등학교 시절 새로 온 지구과학 선생님 중에 친동생에게 신기가 있어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아시는 분이 계셨는데 이야기를 정말 기깔나게 잘하셨다. 다음 수업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는 그런 선생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내용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흡입력 있고 계속 읽힌다는 말이다.
남자 작가이지만 자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을 너무 잘 묘사해 놓았다. 예를 들면 언니 아녜스의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솔을 던져 숲이 되고 빗을 던져 뾰족한 바위 언덕이 되고 리본을 던져 넓은 강이 되는 식의 묘사이다.
374p
“동생은 귀의 생김새만큼이나 우연히 아녜스(언니)의 삶에 주어졌다. 아녜스는 귀의 생김새를 선택하지 않은 만큼이나 동생을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일생 동안 이 우연의 난센스를 끌고 다녀야 한다.
……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그녀에게 체스 두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체스의 수 가운데 그녀를 매혹한 것은 바로 전문가들이 캐슬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 말을 동시에 이동하는 것으로, 탑처럼 생긴 말인 룩을 킹 자리에 놓고, 킹을 건너편 룩 자리로 넘어가게 하는 수다. 이 수가 그녀는 매우 재미있었다. 적이 안간힘을 다해 킹을 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킹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사를 해 버리는 것이다. 살면서 아녜스는 언제나 그런 수를 꿈꾸었으며, 피로가 심해짐에 따라 그 꿈도 점점 더 커져 갔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지침이나 우울한 감정을 체스의 수에 비유하기도 하고 책에서 주장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주장의 근거가 되는 내용을 읽으면 납득이 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다. 흉하게 생긴 조각품이 있는데 그 조각품에 만약 영혼을 불어넣으면 그 조각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395p) “부끄러움은 우리가 범하는 실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우리 선택과는 무관하게 현재의 우리가 되어 있다는 데서 느끼는 모욕과, 그 모욕이 곳곳에 노출되는 데 대한 견딜 수 없는 느낌에 바탕을 둔다. … 잘생긴 사람에게는 우연의 유희가 모두 적당하게 들어가 있어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자아가 아니다.” 그 말 뜻은 노출이 많이 된다는 뜻이고 따라서 흉한 조각과 같이 그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런 식이다. ‘노출’이라는 개념 하나로 흉한 조각과 잘생긴 사람을 연관 짓는 과정을 통해 잘 생긴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인데 밀란 쿤데라가 써놓은 글을 읽으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불멸에서는 등장인물과 동시에 작가 본인이 소설에 등장한다는 점 또한 매우 신박한 설정이었다. 그로써 작가의 이야기가 더 실제처럼 느껴질 수 있었고 마치 어린아이 일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제일 앞부분의 내용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까먹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책의 앞부분과 제일 마지막 부분이 똑같은 장면에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제일 앞장으로 돌아가 시작 부분을 훑어보면서 ‘맞아 이랬었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게 되었다.
사실 밀란 쿤데라의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멸을 읽기 전에 읽었던 농담이 워낙 나와 맞지 않았던 탓일까 또다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집어 들기가 망설여졌다. ‘만약 재미가 없어 완독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탓일까 내가 더 늙은 탓일까 불멸을 읽을 땐 재미있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았다. 가끔은 영혼 없이 눈이 글만 따라가며 읽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내용에 집중해 읽을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밀란 쿤데라가 글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