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와라. 늦게 와라
문제집을 시켰다. 아직 도착은 하지 않았다. 분철 신청해서 더 오래 걸리는 듯하다. 도착해서 얼른 풀어야겠다는 생각반, 어려운 문제에 막힐 미래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 반이다. 그래서 얼른 도착했으면 싶다가도 늦게 도착하길 바란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 전 주문한 미야베 미유키의 영혼 통행증을 읽었다. 낯선 일본 이름의 폭주에 내 머리가 아득해질 때쯤 어느새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영혼 통행증은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책의 마지막 장인데 솔직히 난 2부에 있는 <한결같은 마음>이 더 재밌었다. 미야베 미유키를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에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팬들은 이름을 줄여 미미 여사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엽다. 미미 여사.
시킨 문제지가 도착할 때까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학입시 때도 안 써본 자기소개서를 처음 써보기도 하였다. 여기저기 복붙 할 수 있는 마스터 자소서 하나를 써놓으라고 많이 말하던데, 자소서마다 문항이 다르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요? 싶기도 하다. 자소서를 쓰다 허리, 날갯죽지, 머리가 아파 잠깐 쉬려고 누울 때에는 어김없이 미미 여사의 책을 읽었다. 음. 처음엔 좀 지루했는데 뒤로 갈수록 재밌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미미 여사의 다른 책들도 구경해본다. 제법 끌리는 책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하나씩 내 책장에 추가하고 싶다.
자소서를 계속 쓰다 보면 이 내용을 여기 썼던가 다른 자소서에 썼던가, 헷갈리는 때가 온다. 그래도 계속 쓰다 보면 글자가 눈앞에 여기저기 떠다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힌트를 좀 얻으려 합격 자소서를 보다 보면 처음엔 아! 싶다가도 계속 보면 그게 그거 같아 보인다.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초보라 아는 만큼 보이는 거겠지 싶다. 여하튼 자소서는 어렵다. 글자 수에 맞추려면 내용을 줄여야 하는데 내용을 줄이면 말이 앞 뒤가 안 맞는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모니터를 몇 시간째 보고 있는 내 눈은 그만 좀 보라고 하는데 난 이걸 다 써야만 한다. 조금만 누웠다가 다시 써보자 해서 등을 뉘인 채 미미 여사의 이야기로 나를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