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영화도 올드보이, 장화홍련, 내부자들, 오펀 천사의 비밀처럼 다크 한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장화홍련은 무섭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난 이 영화 보면서 코 풀며 울기까지 했다. 이런 맥락에서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은 내 눈길을 사로잡아 바로 집으로 데려 올 이유가 충분하였다. 어떤 고통을 말하는 걸까. 폭력? 정신? 학대? 난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수전 손택이 말하는 여기서의 폭력이란 ‘전쟁에 관한 폭력’이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은 언론매체나 사진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매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접하게 되는 타인의 고통은 그저 구경이나 방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고통을 이미지나 매체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서사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이 수전 손택이 내가 생각했던 ‘고통’의 공감에 다가가는 점과의 차이점이다.
<완벽한 아이>가 글로써 나에게 괴로움을 줬다면 <타인의 고통>은 사진으로서 나에게 괴로움을 줬다. 영화에 나오는 자극적인 장면은 실제가 아니지만 여기 실린 사진은 모두 그것이 연출이든 진짜이든 실제 사진이다. 뒤로 갈수록 나의 비위를 테스트하듯 점점 강도가 세졌고 사진을 가려버리기 위해 얼른 종이를 넘겨야 했다. 특히 뒤쪽에 실린 중국에서의 처형 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비위가 강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읽고 보아도 좋다.
이 책을 읽을 때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가 생각 났다. 아마 전쟁에 관한 고통에 관해 쓴 글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사마에게>는 전쟁과 상관없는 어린아이들이 응급실로 피를 흘리며 의식 없이 안겨 들어오고 갓난아기는 전쟁의 폭탄 소리가 익숙해져 폭탄 소리에 울지도 않고 초롱초롱한 눈을 비춘다. 책으로만 읽는 전쟁의 고통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사마에게>를 보는 것도 좋은 연결고리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의 사진만큼 잔인한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전 손택이 설명하는 서사에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째는 수전 손택이 설명하는 서사에 관한 사진이 모두 실려있지 않다는 점이다. A라는 제목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지만 정작 독자들은 그 A라는 사진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것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읽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시각적 자료에 대해 설명하는 동시에 시각적 자료의 부재는 것은 나로 하여금 불만과 답답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가독성이다. 수전 손택의 원 글 때문인지 번역 때문인지 매끄럽게 읽히지가 않았다. 한 번 펼친 책은 끝까지 읽어야 덮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찌저찌 본 글의 끝 부분까지는 읽었지만 맨 뒷부분의 부록에 실린 글은 눈과 머리가 버거워져 몇 장 남기지 않고 덮어버리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나의 고정관념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게 도와준 책이라 볼 수도 있다.
한 책에 빠지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줄줄이 읽는 게 나의 독서 방법 중 하나였는데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 덕분인지, 아니면 단지 수전 손택의 글 쓰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지만 수전 손택의 글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