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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영조와 사도세자

by DAWN




고등학교 때에도 한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20살이 넘고 취업준비로 인해 한국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정치가 나올 때부터인데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조선의 왕이라는 내용을 접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얼른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느긋하게 사도세자와 관련된 영화도 보고, 사도세자 이야기가 쓰인 책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책을 봤는데 책의 한 문장 문장마다 영화를 봤을 때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 이게 그 장면이구나 하는 부분이 생겨났다. <사도> 영화를 처음 3-4번째에 볼 때는 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나왔고 10번째 정도 됐을 때는 재미와 더불어 대사까지 외우게 될 정도로 나는 이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 씨가 후손을 위해 쓴 글인데 여기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그 내막과, 사도세자가 저지른 세세한 일, 가문들과의 정치적 갈등 등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영조의 옹주와 사도세자에 대한 차별은 책을 읽는 내내 사도세자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화롭거나 경사스러운 일에는 데려가지 않으시고, 사형 죄수를 심리하는 등의 흉한 일에만 사도 세자와 함께하시니 사도세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화병이 나 자신의 화를 주체할 수 없게 된 사도세자를 보면 영리한 아이를 미치광이로 변하게 만드는 방법은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으로서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존경받을 인물이었을진 몰라도 부모로서의 영조는 가혹하리만치 잔인해 보였다. 대리청정을 구실로 신하들 앞에서 창피 주기, 능행길에 비 오는 것도 아들 탓,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아들 탓, 술을 못 먹는 아들에게 금주령을 어기고 술내가 난다 꾸짖기 등등 사도세자의 억울함은 점점 쌓여 살인으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맑은 물에 빨간 물감을 떨어뜨리면 빨간 물이 되고 검은 물감을 떨어 뜨리면 검은 물이 되듯이 맑았던 아이의 본성이 탁해지게 된 것은 혼자만의 의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영조의 정신적 학대에 아무리(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는 일)를 하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사도세자가 궁궐 후원에 무덤을 파고 스스로 관속에 들어가 굿을 벌이는 일을 한건 어쩌면 살아보려는 발버둥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를 역사적, 정치적 시선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봤을 때 아들을 살인마와 미치광이로 키우는 것과 영리한 인재로 키우는 것은 모두 부모의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 영조는 부모로서 미숙했고 어리석었다. 사도세자가 왕을 죽이려 하는 역모죄가 아닌 집안의 가장을 죽이려 한 미치광이로 기록된 것은 나라의 종사를 보존하려는 영조의 결정과 그런 사도세자를 보내고도 자신의 아들이 후대의 왕이 되어야만 하는 혜경궁 홍 씨와 선희궁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보여준다. 책을 읽을 때에는 홍 씨의 입장과 사도세자의 입장에 몰입하여 읽었지만 읽고 나서는 사람대 사람, 부모와 자식, 권력과 정치의 시선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 고려, 조선, 개항기, 구한말, 일제, 광복, 현대에 오기까지 권력에 대한 욕심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때에도 역모를 꾸민 자들은 모두 숙청을 당하였고 현재에도 고위층의 위협이 되는 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자살’이라는 토픽으로 뉴스에 나온다. 현대에 와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자살’의 뜻이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뜻이었다면 현대에서는 ‘타살’이 될 수도 있다는 정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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