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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y 13. 2017

숨막히는 효율을 누리다

그리고 서서히 숨막히게 되다



이 보다 더 이상 효율적일 수 있을까?
내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스포츠 센터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과거에는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려면 적어도 큰 회사의 임원이 되어 회사로부터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받거나 어느 정도 부유층에 속해야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과거 회원권으로 누릴 수 있는 스포츠센터 시설 못지 않은 곳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하고 있다. 계약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월 3만원이 안되는 비용으로 한 달 내내 이용한다.

따져보면 하루 천 원으로 운동복에서부터 최첨단 운동시설 이용과 샤워에 간이사우나까지 하는 셈이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회원권을 끊어 놓고도 잘 이용하지않은 사람의 덕을 보는 면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정말 싼 비용에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치열한 경쟁의 결과요 끊임없는 효율을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착한 가격에 좋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가끔은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다니는 스포츠 센터는 서울시내 많은 체인점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 유사한 많은 다른 스포츠 센터는 생겼다가 사라지곤 한다. 한 마디로 효율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가끔 다니던 스포츠 센터가 망해버려 장기 계약에 따른 돈을 제대로 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효율 경쟁에서 실패한 스포츠센터는 성공한 체인점의 확산의 밑거름이 된다. 결국은 몇 개의 거대한 스포츠 센터의 체인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마치 동네 빵집이 거대한 재벌 체인제과점으로 바뀌었듯이...



이들 스포츠 센터 체인점이 운영되는 구조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치 정교한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빈틈이 없다. 고객의 심리를 철저히 분석해서 스포츠센터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만들어 두었다. 센터의 모든 공간과 시설 하나 하나가 100%를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당 타올 2장, 장기보관 신발 경고, 지난 사물함 경고, 자동출입문 시스템, 곳곳의 구호나 벽보 등 딱 필요한 만큼의 통제시스템을 갖추고 한 치의 고객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스포츠센터는 지금도 치열한 대중 스포츠센터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스포츠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준수한 외모와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있고 세련된 매너로 고객을 대한다. 모두들 스포츠 관련 학과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실습을 거치고 입사경쟁을 통해 투입된 직원일 것이지만 그들의 처우는 생각 만큼 높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냥 커다란 자본주의 시스템 속의 부품으로 보인다.


나는 효율을 생각할 때 마다 대리운전을 생각하게 된다.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만큼 효율화된 대리운전제도가 또 있을까 싶다. 효율화 되었다는 것은 받는 서비스에 비해 치루는 댓가가 낮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내가 대리로 근무하던 시절 우리 부장은 스텔라란 차량을 탔었다. 스텔라는 큰 차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기호에 맞게 배기량은 낮지만 덩치만 큰 차였는데 당시 차를 가진 직원도 많지 않았지만 부장급은 되어야 갖출 수 있는 승용차였다.


용산에서 회식을 하고 나면 당시 일산에 사는 부장은 대리운전을 이용했다. 25년 전 그 때 대리비가 6만원인가 7만원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훨씬 친절하고 신속한 대리기사 서비스를 받아도 3만원 정도면 된다. 물가로 보면 그때가 10배는 될테니 1/20로 가격이 내린(효율화?)된 셈이다. 지금은 1577이나 2580같은 익숙한 전화번호로 재편성된 대규모 업체에 소속된 대리기사는 큰 시스템 속에서 그 당시 보다 훨씬 못한 부품 만큼의 처우만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치열한 효율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대리운전 시장인 것 같다. 더 친절하고 더 신속하고 더 싼 가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다.


남는 자원의 공유라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각종 공유시스템에서도 같은 두려움이 존재한다.


다국적 기업인 차량공유시스템 우버나 숙박공유시스템 에어비앤비는 남는 자원을 활용한다는 좋은 생각으로 급속하게 파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우버나 에어비앤비라는 효율경쟁에서 이긴 사업자 만 남을 뿐 나머지는(효율경쟁에서 패배했거나 그 시스템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큰 회사에 소속되어 혜택을 제공받는 사이에 그들의 부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끝없이 나아가는 이런 효율을 나(우리)는 자연스럽게 누리고 살면서 그 효율이란 시스템 속으로 사람들은 부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효율화가 우리를 편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지만, 부메랑으로 우리는 그 효율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음을 아주 천천히 알게 된다. 내가 바로 그 희생물이 된 뒤에 말이다. 마차의 주인으로 살다가 잘나가는 자동차의 바퀴가 되는 꼴이다. 그 혜택을 누리는 동안 그 바퀴는 닳아 못쓰게 되고 다른 바퀴로 교체된다. 그것이 자본주의 효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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