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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Nov 22. 2016

자기 사람 만들기, 독일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저 사람은 자기 사람을 잘 만든다. 저 사람은 자기 사람을 잘 챙긴다."


 


이 말은 관점에 따라 좋은 쪽으로도 나쁜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조직에서 자기 사람을 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가는 것인데, 처해진 환경이나 입장에 따라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받아들인다.


 


그럼, 우리들의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공하고 있을까?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인에게 잘하거나 특정인에게 충성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조직이 안정되고 조직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런데,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조직 생활을 한 경험으로는, 다소 실력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잘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함으로써 확실하게 자기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조직에서는 서바이벌 하기 더 좋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군대생활을 기억해 보면, 모두에게 잘해 주는 고참은 그 당시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제대를 한 후에, 그랬던 고참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특별히 잘해준 고참이거나 오히려 힘들게 했던 고참을 더 기억하고 따르는 현상이 있는 것 같다.


 


기업조직에서 들을 수 있는 "저 사람은 너무 투명하고 확실해서 따르는 사람이 없어!" 라는말은 투명하고 확실한 사람이라서 조직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사람일텐데 그를 따르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것은, 조직에서 그런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확실하게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정치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철저하게 누가 누구 편인지 나눠져 있다. 양쪽에 모두 좋은 사람은 환영받기 힘들다. 그래서 정치현장에서는 이 사람에게도 잘하고 저 사람에게 잘하고 공평하게 잘해주는 사람이있다고 치면 그 사람은 그 정치조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어떤 쪽에도 자기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르게 얘기하면 자기 사람이 없다는뜻이다. 사람들은 공평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 만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잘될 것 같은 사람에게 죽도록 충성하여 매달리고(설사그 사람의 잘못된 점이 발견된다 손 치더라도), 그 매달렸던 줄이 썩은 줄이 아니기를 기도할 수 밖에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윗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줄에 매달린 사람이 다소 문제가 있거나 못하더라도끝까지 챙기고 신뢰하는 방법이 바로 그 조직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서로의 잘못이나 비밀을공유한 관계끼리는 더욱 결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잘못된 관행에 저항을 하려고 하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자신도 이미 그 속에 몸담게 되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되어 벗어나기가 불가능하게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웃지 못할 무조건적인 충성극이 종종 일어난다.


 


또,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은근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의리있다', '충직하다'라는 평가로 그들이 행했던 내용은 무시해 버리고 믿어준 사람에 대한 왜곡된 충성심 만으로만 좋은 평가를 해준다. 그러니 더욱 이런 자기 사람 만들기 행위가 고착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얘기는 후진국일수록 더 잘 먹히는 얘기가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선진국이라고 많이 다를것 같지도 않다. 선진국은 아무래도 사람보다 시스템이 더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라 후진국보다 나을지는모르지만 여전히 최종적인 결정은 사람이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무게가 나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더 호감이 가는 쪽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진국에서든 후진국에서든 어느정도는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사람을 챙기는 것을 비난하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기 사람 위주로만 임명함으로써 회전문 인사와 같은 부작용이 생기지 않으려면 그나마 다양한 사람과 광범위하게 관계를 맺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 그릇의 크기에 달렸다. 사람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애써도 손꼽을 만한 사람 만 신뢰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그릇이 크지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 또한 더 많은 사람을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람이 선진국의 시스템과 결합하게 되면 좀더 균형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인사가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세상살이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가깝고 친한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가고 좋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기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도 사람의 생존 본능에 따른 행위라 인정하더라도, 좀 더 생각의 폭이 넓고 소통이 활발해서 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관계를 맺는 분들을 지도자로 뽑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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