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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Apr 09. 2017

또, 목소리가 커졌다.

빈 깡통처럼...





관세청 주변에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났다.그 음식점은 전통이 있는 고급음식점이어서 테이블 간의 간격도 많이 떨어져 있고 테이블도 널찍하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이라 많은 다양한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이 열심히 얘기를 주고 받는 중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떨어진 건너편 테이블의 한 여자 분이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차, 또 내 목소리가 커졌나보다.'


나는 원래도 목소리가 작지 않은 편인데 나이가 들고 부터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잘 안들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내 귀가 잘 안들리니 상대가 잘 못듣나 해서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소음이 많은 곳에 가면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잘 안들려 되묻고는 한다. 어떤 때는 미안해서 분위기에 맞춰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 때도 있다. 알콜이라도 들어가면 그 현상은 더 심해진다.


청력이 떨어져 상대의 목소리가 안들리니 내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 외에도 나는 목소리가 커지는 문제가 더 있다. 내 주장이 잘 먹힐때도 목소리가 커지지만, 내 주장이 잘 안먹힌다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는 것을 느낀다. 이번 경우에는 전자에 해당된 것이었지만 후자처럼 내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때는 내 목소리의 크기만큼 나의 주장은 오히려 덜 받아졌다는 느낌을 대화 후에 갖게 된다.  사람을 설득하는 힘은 조용 조용히 말할 때 더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렇게 되곤 한다.


그렇게 나누는 대화가 신변 잡기에 대한 일상 대화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중요한 면담을 한다거나 상대와 어떤 거래나 협상을 하고 있는 중에 목소리가 커졌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이 패배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옛말에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속이 비어있음을 드러낸 셈이다.내면적인 성장없이 외형적인 껍데기로 살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나의 변명이라면, 어색한 분위기를 잘 못 참는 내 성격을 얘기할 수 있겠다. 여러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다가 끊기면 나는 무슨 이야기라도 해서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다보면 나의 온갖 신변잡기나 덜 익은 이야기를이 술술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떠들고 헤어지고 나면 후회감, 허탈감이 밀려든다. 그렇지만 이것은 확실히 변명이 맞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안들리고, 더 안보이게 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드는 만큼 말도 더 줄이라는 게 조물주의 이치 같은데... 귀와 눈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지만, 입은 개인의 의지와 개인의 의식성장과도 연관되어 있어 마음대로 안된다.그런데다 말이 헛나오기까지 하니 더 큰 일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나의 내면적인 성장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금세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외면적으로는 더 말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수시로 주위를 의식하면서 대화할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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