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가까운 벗이자 오빠였기도 했고 아이였기도 했으며
아무 조건 없이 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가장 내 편이었던, 내 분신 같던 사람아.
이건 내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거야.
지금 나의 마음은 무(無)에 가까워.
너에게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서운하지도,
미운 감정이 들지도 않는다.
물결 하나 치지 않는 강물과도 같은
그런 잔잔한 상태.
이 말인즉슨,
더 이상 너에게 감정 소모를
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너에게 내 마음을 전부 다 쏟아내
더 줄 마음이 없다는 뜻이겠지.
널 드디어 포기하고서 놓아줄 수 있다는 그런.
넌 나의 정신적 지주였어.
세상 어떤 두려운 것이 있더라도
네 곁에만 서면 난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
생각해보면 넌 나에게
그렇게나 든든한 사람이었는데,
난 너에게 한 번이나마
그런 존재일 수 있었나 싶다.
조금은 모자란 사람이라
그게 이제와 미안하네.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기 전,
나는 유독 너에게 화를 내고
미친 사람처럼 굴었지.
나는 죽을 것만 같이 힘든데
담담하게 장난식으로 되받아치는 너를 보면서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너무도 답답했고
내 이런 감정들이 너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
나는 수없이 좌절했지.
그도 그럴게 너는 달라질 거라는 말만 내뱉은 채로 전혀 무언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거든. 심지어 권태기 같다는,
너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내가 그렇게 소리 지를 때마다
나조차도 내가 괴물같이 느껴지더라.
사람이 도대체 누가 그렇게
극에 달하도록 화를 내고 감정 소모를 하고 싶겠어. 나도 예쁜 말들만 하고 싶었고
널 있는 힘껏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왜 그러냐는 너의 질타에
나는 혼자 울부짖을 수밖에.
나를 왜 이렇게 괴물로 만들었냐며
너를 탓할 수밖에.
이제와서 원망은 하지 않는다.
너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을 테고
나 역시도 내 마음을 몰라주며
전혀 달라지지 않는 네 모습에 많이 힘들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가장 싫어하던
네 그 장난식으로 상황을 넘기려는 행동이
너에겐 최선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런 것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난 대인배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어찌 됐건 우린 너무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주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기에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이겠지.
원망하지 않는다 해서
우리의 관계에 미련이 남았단 건아냐.
원망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모든 것을 놓겠다는 의미겠지.
아마 우리는 처음 그때,
세상 모든 반짝임을 담은 것처럼
투명한 눈빛으로 날 보던 너와,
그런 너로 인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된 듯
행복한 웃음을 짓던 나.
그리고 서로를 안던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을 거야. 아니 절대로.
이젠 확실히 마지막임을 난 직감 한다.
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한다.
차라리 너와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내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 조금은 나았을까.
너에겐 많이 상처될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과거든 후회하며 살지 말자던
내 신념을 깨부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 대답은 '그렇다.'
차라리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훨씬 나았을 거라고 확신해.
하지만 너를 만남으로써 조금은 성숙해졌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도 많이 남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너로 인해 이렇게까지 날 사랑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단 것도
처음 알았으니.
그래도 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널 절대 만나지 않았을 거야.
그만큼 지독하고 질긴 인연이었으니.
그러니 한 가지만 더 부탁할게.
제발 우리 평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잘 지내냐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는 등
그런 변명은 집어치우고
죽을 때까지 절대 서로의 앞에 나타나지 말자. 우리가 죽고 나서 이 다음 생을 살게 되어
같은 세상 아래 존재하게 된다고 해도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기로 하자.
나는 그래야만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아.
내 인생에서 너라는 사람을
완전히 지워내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