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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눈 Aug 04. 2021

인형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지는

이제야 어떠한 굴레 속에서 빠져나와
조금은 행복이라는 것을 향해

한 발짝이나마 다가설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전혀 바뀌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전의 상황보다 더 나를 잃어버린 느낌.

나라는 존재는 어디론가 흩어져버리고
오로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다.
나는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그 굴레를 벗어난 것인데

이러한 삶에 갇혀있다면

그곳을 벗어난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우울한 모습은 버려야 했다.

마치 강박증과도 같이

미친 듯이 밝은 척을 해야 했다.

다른 이들이 보는 내 모습은 그러한 것이니까. 누군가가 좋아하는 내 모습도 그러한 것이니까.


하지만 난 누군가에게

나를 좋아해 달라 말한 적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체로 살고 싶을 뿐인데

좋아한다는 명목 하에 나를 가두고

내 모습을 고치려 하고 잘못됐다 말한다.


좋아한다고? 도대체 무엇을?

나를 좋아하는 게 맞긴힌것인가.

그렇다면 왜 나를 고치려 하지?

부분적인 나의 모습만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본인의 입맛대로 고쳐

옆에 두고 싶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린 여자아이들이

갖고 놀던 인형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지.

옷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입혀주고

머리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묶고

팔다리 온 움직임을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아지가 된 것만 같다.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비위를 맞춰주고 재롱을 피워주며

즐겁게 만들어주고.


아니 기생인가. 아니 창녀인가.


아무리 숭고한 사랑일지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그저 추악한 범죄와 다를 바 없어.


이럴 거라면 사랑이란 이름 아래

누구도 날 가둬두지 마.

아무도 날 사랑하지 마.


난 자유롭고 싶다.

겨우 벗어난 굴레 속보다

더 지옥 같게 느껴지도록 만들지 마. 제발.



지친다.

나는 평생토록 이런 사랑만을 당할

그런 운명인가.

애초에 내 팔자가 이런 식으로 정해진 것인가.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만 싶게 만들어.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그것은 내 삶에서 죽음으로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면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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