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우리는 알고 있었다.
숱하게 뱉어왔던 이별이었지만
이번 이별만큼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내 '삶'이라는 장편 영화에서의
유일한 주인공일것만 같았던 네가,
이제는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내리지도 않은 채
크레딧에 남자주인공 역할로 새겨질 예정이었던
너의 이름조차도 지우려한다.
너라는 인물 하나가 사라지니
미래의 우리가 꺼내어 볼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찍어두었던 지난 씬(scene)들이,
서로 열심히 노력해 호흡을 맞춰왔던 우리의 사랑장면들이
허망하게도 한 순간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말 의미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두어
다시 이 멜로영화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그곳에서 너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기까지는
또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까.
그때까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나는
또 얼마나 너를 미워하고, 그리워하고를 반복하며
미쳐가야하는걸까.
얼마나 아파해야 너라는 사람의 얼굴을,
살에서 나던 그 체취를, 나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를,
나를 사랑하던 그 행동들을, 말투를 모두 잊을만큼
생각조차 나지 않을만큼 잘 살수 있는걸까.
엔딩을 내보고 싶었다.
먼 훗날 너와 함께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이 영화의 행복한 엔딩을.
결국 우리는 이 영화의 끝을 완결내지 못한채,
보지 못한채 서로의 갈림길을 걷는구나.
나를 쉽게 지워버린 너처럼
나 역시도 너를 그렇게 지워버린다면
서로에게 미련이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둘의 영화의 해피엔딩일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그런 엔딩을 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와야만 한다. 오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무너져내리고야 말것이니.
오늘도 너 아닌 답을 찾지 못해
이 새벽은 너무도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