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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눈 Dec 11. 2019

이별하던 날

비가 내리던 그 날

무수히 많은 비가 땅바닥을 타닥타닥, 두들기던 날이었다.
많기도 많았지만, 참 거세었다.

굵은 빗방울들이 인정사정없이 아무 기운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머리칼을, 몸뚱이를 때려버리는 정도이니.
그것에 그치지 않고 갑자기 번쩍거리는 하늘, 그녀는 자신이 번개에 맞아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잠시 걸음을 멈칫하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큰 소리의 천둥이 그녀의 귀를 놀라게 하였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탓에 심한 천둥이 칠 때면

꼭 누군가의 품에 파고들던 그녀는 오늘은 두렵다는 감정보단 조금은 쓸쓸하다는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서 차라리 지금은, 번개에 맞아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더 굵고 빠르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그녀는 잠시

역 안으로 몸을 피했다.
열차가 모두 종료되어 운행되지도 않는 역 안에는

많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중 온몸이 젖어버린 사람은 그녀 하나뿐인 듯했다. 그녀의 몸 위에 걸친 모든 것들과 얼굴 위에 칠해진 분칠이 빗물과 함께 쓸려 내려가 있었고 그것은 마치 홀딱 벌거벗겨진 알몸의 느낌이었다.

무언가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서둘러 역 안의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물에 젖어 갈래갈래 떡져있었고 짙은 눈 화장 역시도 여기저기 번져있었다.

어딘가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괜스레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청승 떨었네."

그녀는 눈가에 묻어있는 빗물을 손가락으로 쓸고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머리와, 얼굴을 정돈했다. 파운데이션 퍼프를 꺼내 들고 자신의 눈물을, 젖어버린 얼굴을 가렸고 립스틱이 모조리 지워져 하얗다 못해 새파래진 입술에 다시 무신경하게 색깔을 덧입혔다.


그럼에도 울음이 서려있는 얼굴인지라 무엇이 더 나아진 줄은 모르겠으나, 거울을 보고서 그녀는 아까보다는

자신의 슬픔이 얼굴에서 사라진 것 같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웃어 보인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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