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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눈 Aug 12. 2020

낙원 속에 잠드신 당신을 위한 글 2

당신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며

“유가족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뵙기 전,

내가 들은 말이다.


‘유가족’이란 말은 그저 드라마나

여러 상황극속에서만 듣던 소리였는데.

내가 들을 소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그런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난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나에게 남긴 메시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 담담한 한 마디에도

그토록 눈물을 흘리던 나였는데.


집에 가는 길 동안에도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아랑곳 않고 주저앉아 소리를 끅끅 삼켜내며 눈물만을 쏟아냈었다.


아마 내가 눈물을 참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서

엄마는 그렇게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에게 메시지로

할아버지의 비보를 알리셨나 보다.


나의 품 안에서 차마 눈물을 삼키지도 못했으면서.




장례식장 직원을 따라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갔다. 우리 가족들 모두가.

그저 평소처럼 할아버지께서 계시던

요양원을 방문하는 느낌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는.


모든 가족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우리는 영안실로 향했다.

발걸음은 커다란 바위를 매단 듯 무거운 채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드리라며

직원들이 우리를

할아버지께서 누워계신 곳으로 안내했다.

어른들께서 먼저 안으로 들어가시고,

나를 포함한 손주들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할아버지의 왼쪽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마지막 모습을 뵙게 되었다.


아니었다.

내가 알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어.

내가 기억하던 할아버지는

항상 웃으며 힘겨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고서

날 반기던 모습이었는데.


‘할아버지, 말씀 좀 해보세요.

항상 나한테 그랬잖아. 왔냐고.

웃으며 그랬잖아.’


할아버지는 그저 눈을 감고서

창백한 얼굴로 나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어

점점 무서운 기분까지 들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낯선 단어였다.

언젠가는 닥쳐올 것이지만

내게는 아직 해당되지 않는,

너무도 먼 개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내 앞에 보란 듯이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었고

그 멀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사실 언제든 내 삶에 불청객처럼

불쑥 침투할 수 있는 것임을

나에게 한층 가까이 보여주었다.


충격적이었다.

나를 보며 웃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침묵을 지키며

그저 가만히 숨죽이고서 누워계시는 그 모습이.


한 마디씩 남기라며 직원들이 말을 꺼냈다.

첫 번째로 할아버지께

말씀을 꺼내신 분은 할머니셨다.


“왜 이러고 있어. 이 사람아. 왜 이렇게 있냐고”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붙들고 울부짖으셨다.

그런 할머니를 진정시키려 작은 할머니께서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셨다.


할머니의 울부짖음은 모든 가족들에게 퍼져,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항상 생각했다.

삼촌들은 정말 무뚝뚝하다고.

평소 가족들에겐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친척들끼리 모였을 때의

그 모습들만 모아 두고 보자면

정말 무뚝뚝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난 그 날,

그런 삼촌들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았다.

삼촌들은 할아버지의 한쪽 손을 잡고서,

또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랑한다고. 아빠를 정말 사랑한다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지 않으셨다.

그 울음까지도 그대로 담고서

당신들의 사랑을 전했다.


그리도 어른스럽게 보이던 삼촌들이

그때만큼은 그저 소중한 아빠의 부재에

너무도 비통해하는

순수한 어린아이들로만 보일 뿐이었다.



엄마와 이모들은 말씀하셨다.

이제는 고생 덜고서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많이 사랑한다고.


하나같이 소리 없는 울음만을 터뜨릴 뿐이었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죽음을 처음 보는지라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시던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본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편안해 보이셨다.


아무 미련도 없이,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태초의 그 모습으로.



항상 아프시던 모습만 뵌 지라,

이제는 아프지 않으실 거라 생각하니

다행이라며 안심이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아 까맣게 보이던 그 얼굴이,

편안한 태초의 하이얀 그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만 같아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살아생전 웃음 한 번

드리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에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부디, 부디 편안해지셨기를. 사랑합니다.”

이번에도 눈물이 자꾸 내 말문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하지 못한 말들이 참 많았지만,

나의 마음만은

할아버지께 전해졌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그저, 아실 것만 같았다.

굳이 입 밖으로 다 꺼내지 않더라도.



모든 절차를 마치고,

할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신 뒤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보지 못한 파랗고 투명한 하늘이었다.

하이얀 뭉게구름들이 예쁘게 피어있었고,

그리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햇빛은

주변에 길게 뻗어있는 나무들을 비추어

나뭇잎들이 파랗다 못해 연두색으로 빛을 발했다.


나는 평생 그 날의 풍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도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던 그 날.

아마 그 아름다움은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걱정을 덜어주시려 선사하신 것이라, 그렇게 생각되었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원래부터

그 푸르름의 일부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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