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1. Prologue - 여행의 다짐

by Will

몇 년 전 부모님께서 은퇴를 하시며 정리한 돈을 우리 형제에게 나누어 주셨다. 서울 한복판에 건물을 사놓고 발생하는 임대료를 받으며 사는 건물주의 꿈을 이룰 만큼 큰돈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돈이었다. 부모님께서는 그 돈으로 아직 남아있는 대출의 일부라도 상환하여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하는데 보태라고 하셨지만, 그 당시엔 갑자기 생각지 못한 목돈에 어찌할 바를 몰랐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의 일종인데 함부로 써버린다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예금을 해 두었다. 결혼 후부터는 계속 대출과 한 식구가 된 것처럼 아주 친밀하게(?) 지내고 있지만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편은 아니라 이렇게 우선 예금을 해 두고 이 소중한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 금리가 급등했던 시기여서 기존에 받았던 대출 금리보다 예금 금리가 더 높았던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긴 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돈은 당분간 예금으로 유지하기로 했고 일부는 부모님과의 여행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하면 멀고 가보기 힘든 해외의 어느 나라 같은 곳으로 한 번쯤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은 비교적 가까운 일본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정정하셨어서 자유여행으로 부모님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었는데... 여행을 다짐한 당시에도 제법 연세도 많아지셨고 많이 기력이 약해지셨다고 느껴져서 가능하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부모님은 여행을 좋아하셨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주말이 되면 우리를 끌고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 돌아다녀 주셨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울릉도도 이미 15년 전에 다녀왔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의 기회는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맹장수술로 인해 취소되는 바람에 몇 년 후에나 다시 갈 수 있었고, 이후 함께 비행기를 탔던 여행은 일본 여행이 전부였다.


부모님과 여행을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 후, 정말 여행을 떠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직장 생활이 바쁘다는 나의 핑계와 더불어 때마침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때문에 해외여행은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계획조차 떠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거의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보복여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시 여행이 성행하게 된 시점이 되어 다시금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여행지 선정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가 항상 가보고 싶다던 터키, 아니 이제는 이름이 바뀐 나라 튀르키예. 계획 초기에는 올해 유난히 길다는 추석연휴를 활용하여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 수와 계획의 난이도는 비례하여 상승한다. 모든 가족을 여행에 참여시키려고 일정을 맞춰 보았지만 쉽지 않았고, 거기에 초등학생을 동반한 우리 가족은 빡빡하게 진행되는 패키지 투어의 일정을 아이가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동반되었다. 엄마에게 바쁘게 이동하여 터키 중서부를 일주하는 패키지여행이 아닌 여유 있게 한두 개의 도시만 둘러보는 자유여행을 권유하여 보았지만, ‘이왕 거기까지 갔는데 그건 너무 아깝지 않겠니…?’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 아이와 함께 힘든 패키지여행은 할 수 없다 VS 멀리 가는데 최대한 많이 돌아보자 ‘ 두 가지 의견사이에서 고민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애처롭게 생각한 아내가 결정을 위한 칼을 뽑아 들었다. 아내와 아이는 여행을 포기하고 부모님만 모시고 다녀오라는 결정이었다. 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을 아내가 먼저 제안해 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의 계획들은 모두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동행하려던 남동생은 휴가를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여행에서 빠지게 되었고, 결국 굳이 패키지여행이 비싼 추석 연휴에 출발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추석 이후에는 튀르키예의 날씨도 추워질 것 같기에 우리는 8월 말~9월 초를 거치는 일정으로 최종 결정을 하고 예약을 마쳤다.


이제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왜 부모님이 하루라도 젊으셨을 때 함께 여행을 가지 못했는지, 아니,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물론 학교에 다니느라, 친구들과 어울리던 시간이 그저 좋았어서, 정신없는 직장 생활을 이겨내느라, 연애에 열중하느라,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나의 가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했기에라는 무수한 이유들로 나의 입장을 변론해 보지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마음만 먹었다면 여태까지 몇 번의 여행을 위한 시간을 못 냈을까 싶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에 펑 터지며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부터 마음속 한쪽에 한켜한켜 쌓여가다가 이제는 그 두께가 제법 되어서 내 머리로 하여금 큰 고민 없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떠올리게 해 준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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