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3. 여행의 출발

by Will

드디어 여행 출발의 아침. 공항버스를 타러 집밖으로 나와서야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우산을 가져올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캐리어안에 넣어둔 작은 휴대용 양산 겸 우산이 떠오르며 우산을 하나 더 챙길 필요는 없겠다는 마음으로 그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은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십분 남짓한 시간 동안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졌고 정류장이 도착하고 나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흠뻑 젖지는 않은 채로 버스에 올랐고 공항 가는 와중에 옷은 다 말랐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내가 나름 고생하며 버스에 오르는 사이 부모님과 삼촌은 집 앞으로 찾아온 예약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 중이었다. 공항 가는 가장 비싼 이동 수단인 택시를 예약해 드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부모님의 나이가 드셨다는 생각에 왠지 조금 슬퍼졌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도착해 계시던 부모님과 만났다. 패키지투어 단체 카톡방에는 공항에 도착하는 대로 출석 카톡을 보내달라는 가이드님의 공지가 있었지만 비 때문에 정작 가이드님이 타신 버스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항공사 티켓부스는 아직 오픈 전이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여행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고 게이트까지 이동하며 들이마시는 공항의 공기와 북적북적한 소음을 통해 전해져 오는 분위기가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줄은 금세 줄어들었고 우리도 티켓팅을 수월하게 마무리했다. 수화물 접수 후 의례적으로 기다리는 십 분 정도의 지루한 시간을 거쳐 입국 심사장으로 향한다. 심사 간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장소이다. 삼촌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잊혀 있던 동전이 몇 개 나왔고 아버지의 허리 보호대를 풀어 다시 한차례 엑스레이에 넣긴 했지만 이 정도면 큰 문제없이 통과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저것 조금이라도 더 좋고 편안한 것들은 다 챙겨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식사도 푸드코트를 뒤로하고 라운지를 이용하였다. COVID-19 이전에 수많은 웨이팅을 기다린 후 들어갈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라운지를 찾아갔지만 월요일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한산하기보다는 적당히 붐벼서 활기차지만 복잡하지 않은 정도의 느낌이었다. 편한 자리를 잡은 후 든든히 아침을 먹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라운지 창너머로 이제 막 티켓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왠지 이 유리창을 통해 조금 전 내가 티켓팅하던 지나간 시간의 장면을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유 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할 게이트 근처로 이동했다. 게이트 근처로 이동하면서 장시간 비행을 대비하여 목베개를 구입하였다. 두 가지 종류의 목베개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 각자가 취향 것 하나씩 골라 구매하였다. 계산대에서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놀랐지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마치 그 정도 가격인 줄 이미 알고 구매한다는 듯 계산을 마쳤다. 우리는 게이트 근처의 의자에 앉아 비행기 출발 시간을 기다렸고 오래지 않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자로 나란히 좌석을 배정받았다. 비행기의 오른쪽 창가석에는 다른 여행객이 앉았고, 그 옆 왼쪽으로 쭉 4자리를 배정받아 앉았다. 비행기 좌석이 3개 좌석씩 나누어져 있어 엄마와 아빠가 붙어 앉고, 나와 삼촌이 붙어 앉게 되었다. 거기에 운 좋게도 나와 삼촌이 앉은 좌석의 옆좌석은 공석으로 비어 조금 더 편하게 11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기내식은 두 번이 제공되었는데 첫 번째는 비행기 타자마자, 두 번째는 비행이 끝나기 1시간 정도 전에 먹을 수 있었다. 두 번의 기내식 사이의 시간이 거의 9시간 정도 되어 두 번째 기내식을 먹기 전에는 꽤 허기가 느껴지기도 해서, 별도로 간식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배가 고프던 안 고프던 시간은 지나갔고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패키지투어의 인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잠시 듣고 인솔에 따라 브라브존 행 비행기로 환승을 위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은 늦은 오후의 시간으로 강한 햇빛이 공항의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맑은 날씨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환승을 위해 이동하던 중, 환전소에 잠시 들렀다.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환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터키 리라로 환전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얼른 환전을 마치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화장실 근처에 갔을 때 가이드님께서 삼촌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셨다며, 조심하셔야겠다는 말을 해 주셨다. 우리 가족들은 놀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삼촌이 잘 걸어오셔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별일이 아니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삼촌은 처음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잘 걸어오셨지만 점점 걷기 힘들어하시고 다리 쪽에 통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공항복도에서 한번, 환승 심사대에서 한번 더 넘어지시고는 튀르키예 국내선 게이트까지는 휠체어 서비스를 받아 이동했다. 예상외로 규모가 컸던 이스탄불 공항에는 이동이 불편한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삼촌도 공항 직원이 뒤에서 운전해 주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탑승 케이트 앞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정신이 쏙 빠졌던 우리 가족은 이제 좀 쉬며 트라브존행 비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긴장이 풀리자 가족들은 화장실부터 찾았다. 물론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을 부축해서 화장실로 이동하려고 생각해 봤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터키항공 안내소에 휠체어들이 몇 개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가서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영어로 소통이 힘들었고, 터키 항공의 직원들은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가서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휠체어를 사용하라는 말만 해 주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길을 되돌아가서 휠체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공항 내 무인 휠체어 대여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무인 대여소는 2시간까지 휠체어를 무료로 사용하고 공항 내 어느 대여소에나 반납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다만, 2시간 이후 반납이 안될 경우를 대비하여 신용카드를 등록하여 디파짓을 걸어 놓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시도에 신용카드 등록하는 부분에서 진행이 되지 않아 실패하였지만 두 번째 시도에 휠체어를 대여할 수 있었다. 대여한 휠체어를 사용하여 삼촌이 화장실 가는 것부터 도와 드렸고, 트라브존행 비행기의 게이트도 꽤나 먼 곳으로 변경되었지만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조금 늦게 도착하여 거의 밤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트라브존에 도착하였다. 트라브존 공항은 아주 아담했다. 그래서인지 짐도 빠르게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숙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공항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고 버스를 타고 길거리에 있는 상점들의 불빛들만 보며 30여분을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동안 봤던 풍경은 예상보다 내게 낯설지 않고 의외로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한국에서 아주 가까운 어느 나라에 왔기 때문에 한국과 비슷한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고 한국에서부터 거의 24시간을 이동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 거기에다 호텔 엘리베이터가 왜 이리도 작은지!!! 2명이 짐을 가지고 타면 꽉 찰 정도로 작아서 앞사람들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느라 한참만에 우리가 묵을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은 오래되었 보였지만 많이 좁지 않고 깔끔했다. 우선 몸이 불편하신 삼촌을 침대에 눕혀 드리고 이런저런 나머지 정리를 했다.


숙소에서는 우리 부모님이 한방을 쓰시고, 삼촌과 내가 한방을 쓰게 되었다. 방이 서로 다르고 바로 옆방도 아니다 보니 전화로 연락해서 필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일반 로밍서비스에 추가금 3000원을 더 내고 가족으로 묶인 회선들도 로밍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신청해서 전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로밍 설정을 아무리 만져보아도 가족회선으로 묶인 부모님의 휴대폰으로는 로밍이 되지 않아 결국 로밍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로밍 센터는 24시간 운영되는 듯했고 빠르게 연결되어 해결 방법을 알려주었다.(문의하여 알아보니 가족 회선으로 지정된 사람들이 받은 문자의 링크를 통해 웹페이지로 이동하여 로밍서비스 이용 동의를 해줘야 로밍 서비스 이용이 가능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지 않고 누우면 내일 더 번거로워질까 봐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챙겨보고는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금방 기절하듯 잠이 들 것 같았는데 막상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튀르키예 시간으로 새벽 1시경은 한국 시간으로 오전 8시쯤으로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내일 일정이 있으니 무조건 눈을 감고 잠이 올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아주 얕은 잠에 들었다 깨며 뒤척이길 한두 시간쯤 했을까… 갑자기 창밖에서 큰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여 깜짝 놀라 잠이 확 깨버렸다. 그리고는 매우 큰 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현지인들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소리인가 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밖은 이미 환해졌지만 흐린 날이어서 햇빛이 비추지는 않고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내다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우리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와있다는 것 있었다. 호텔 맞은편으로 뾰족한 산들이 솟아 있었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날씨는 약간 선선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거리에 돌아다니는 개들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놀랐다기보다는 약간 무서웠다. 거리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돌아다니거나 누워 있었는데 개들의 몸집이 웬만한 성인 남자의 크기였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들은 한 마리도 볼 수 없었고 엄청나게 큰 개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조금 무서워서 개 근처에 가지 않고 피해 다녔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행히도 길거리에 개들은 모두 온순했다. 그렇게 개들을 피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엄마로부터 혹시 일어났냐고 묻는 카톡이 왔다. 혼자 산책하기 무서웠던 엄마가 나를 깨워 같이 나가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와 동행하여 다시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엄마는 슈퍼마켓 앞을 지나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채소며 과일들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고 나에게 한 가지씩 한국돈으로 얼마나 하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저렴한 과일과 채소가격에 놀라며 구경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서는 나머지 일행들을 깨워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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