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4. 트라브존

by Will

튀르키예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다. 호텔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그닥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국과는 다른 튀르키예의 모습 중 하나가 건물의 층수 표기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땅에 붙어 있는 층을 1층으로 시작하여 위로 2층, 3층 이런 식으로 층수가 올라가지만 튀르키예는 땅에 붙어 있는 0층을 시작으로 바로 한층 위의 A층(보통 식당이 있다.), 그리고 그 위로 2층, 3층 이런 식으로 층 수를 표기한다. 이런 표기 방식 때문에 부모님께서 조식 식당을 찾아 다른 층으로 가버리시는 일이 한두 번 있기도 했다.


조식은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메뉴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거의 열 종류의 치즈가 잔뜩 담긴 접시들이 한쪽을 꽉 채우고 있었고 여러 가지 채소들이 담긴 접시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접해볼 수 없었던 채소들도 몇몇 볼 수 있었고 특이하게도 샐러드드레싱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 외에 이름 모를 주황빛깔을 띄고 있는 수프와 계란 요리들이 몇 가지 있었고, 빵은 아예 별도의 테이블을 두고 가득 쌓여 있었다. 생소한 메뉴들이었지만 한두 개씩은 모두 접시에 담아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수프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따끈한 국물을 먹는 느낌이 좋았고, 치즈들은 제각각 다른 식감과 맛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소 짠 편이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다는 빵은 커다란 바게트빵을 잘라 놓은 모양이었는데, 껍질 부분은 적당히 딱딱하고 안쪽은 쫀득하니 맛이 좋았다. 생소한 음식들이었지만 생각보다는 입맛에 잘 맞아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첫 번째 여행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여행 포인트는 트라브존 중앙공원이었는데, 여기는 정말 동네 한가운데 있는 작은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혼자 걷기가 힘들어지신 삼촌을 부축해서 천천히 걸어 일행을 쫓아 공원 입구에 늦게 도착했지만 공원이 너무 작아 보여서 공원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다시 버스 근처로 돌아왔다. 아직 나머지 일행들이 공원에서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마침 버스가 주차해 있던 곳 바로 앞에 사장님이 막 가게를 열고 계신 카페가 눈에 띄어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사장님께 장사를 시작했는지 여쭤보고 이제 막 시작했다는 대답을 듣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엔 시원한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커피메뉴 바로 아래 ‘차이 라테’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튀르키예 여행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찾아볼 때 튀르키예에서는 차이(홍차)를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기에 호기심이 생겨 시원한 차이 라테를 주문하였다. 내 주문을 받으신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차이라테는 아주 단맛인데(very sweet) 괜찮겠냐고 다시 물어봐 주셨지만 막상 마셔본 차이라테는 아주 살짝 달착지근한 정도일 뿐이었다. 음료와 함께 잠시 쉬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혼자서는 걷기조차 힘들어하시는 삼촌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후의 다른 관광지들을 돌아보는 것을 다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체념한 상태였다.


나와 삼촌은 먼저 버스에 올랐고 잠시 후 다른 일행 분들이 우르르 버스에 탑승하셨다. 그리고 버스는 바로 출발하여 두 번째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버스가 움직이자 가이드님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오셨고, 삼촌이 움직이기 불편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계시는 것은 괜찮으니 앞으로 삼촌이 못 가실 만한 곳에서는 기다리실 장소를 확인하여 모셔두고 나는 관광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삼촌뿐 아니라 나도 튀르키예까지 관광을 온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며 의견을 주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관광지마다 가이드님의 의견을 구해서 너무 힘들 것 같은 장소는 삼촌을 대기 장소에 모셔두고 둘러보았다.


두 번째로 버스가 도착한 장소는 트라브존에 있는 성당이었는데, 우연히 성당의 이름이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Hagia Sopia) 성당과 똑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규모면에서는 이스탄불의 성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아담한 했지만 뒤뜰로 들어서면 흑해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성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모여 있었다.

트라브존 아야소피아 성당의 모습(출처 : 구글맵)

우산을 펼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애매한 빗방울에 우선 우산을 펴지 않고 성당 구성을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가까이 서 있어도 한눈에 다 들어올 만한 크기의 성당이었는데 그래도 내부에 들어가니 천장에 벽화가 그럴듯하게 그려져 있어 놀랍기도 했다.

트라브존 아야소피아 성단 천장 벽화

내부도 그리 넓지는 않았기에 빠르게 둘러보고 흑해가 보이는 뒤뜰로 빠져나왔다. 비가 와서 매우 흐린 풍경이었지만 오랜만에 시야의 좌측 끝부터 우측 끝까지 꽉 차는 수평선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트라브존 아야소피아 성당 뒷뜰에서 볼 수 있는 흑해의 모습

비를 많이 맞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잠시 수평선을 감사하고는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주어진 자유시간이 다소 남아서 주변 가게들을 구경하러 나섰다. 성당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제법 있어서인지 주변에는 기념품가게, 음식점, 카페등 제법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성당 주차장에 들어오며 봤던 튀르키예 전통과자 로쿰(Lokum) 가게가 생각나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그냥 흔한 기념품 가게였다. 아쉬웠지만 결국 근처에 손님이 많아 보이는 빵집에서 파는 간식거리만 사서 버스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는 쉬멜라(Sümela) 수도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 수도원은 기원전 4세기부터 1923년까지 사용되다가 이제는 박물관처럼 관람객만을 받고 있다고 한다. 수도원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대형버스로는 산아래 주차장까지 이동 후,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수도원으로 가는 산길의 입구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후 다시 걸어서 15분 정도 가벼운 산행을 하면 그제야 수도원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삼촌은 버스 주차장에 있는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차 한잔을 주문해 드렸고 나와 부모님은 버스를 갈아타고 출발했다.

트라브존 쉬멜라 수도원 가는 길


미니버스의 기사님은 2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채로 구불구불한 산 비탈길에서도 일반 도로를 달릴때마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속도를 내셨다. 커브를 돌아 올라갈 때마다 우리에게 스릴을 느끼게 해 주며 몇 분 만에 수도원으로 가는 산길 입구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수도원 입구까지 가는 산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았지만 무난한 오르막길이 계속되어 약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길을 걸으며 슬슬 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할 때쯤 수도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입구에서 일행이 모여 다시 만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수도원 구경에 나섰다.


수도원의 입구는 절벽을 따라 계단을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계단도 두 명이 함께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어서 수도원이라기보다는 무슨 요새의 입구와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트라브존 쉬말라 수도원 입구 계단

계단을 올라 입구를 지나가면 돌산 안쪽에 암석들로 둘러싸인 도시와 같은 느낌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암석들 곳곳에 크고 작은 방들이 지어져 있고 방들을 오갈 수 있는 통로와 계단들이 구성되어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수도원 안쪽 풍경에 놀랐고, 돌을 쌓고 깎아 만든듯한 도시의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한 유적지처럼 보이는데도 아무런 제한 없이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고, 심지어 벽화를 만져볼 수도 있게 관리가 되고 있는 점도 신기한 부분이었다.

트라브존 쉬말라 수도원 내부

수도원 내부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니 처음 도착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원지 지어진 부분은 산의 암벽이지만 주변의 산들은 푸르고 큰 나무들이 가득하고 우리나라의 산처럼 뾰족하게 봉우리가 솟아 있기도 해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도 있었는데 최근에 비가 많이 왔었던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물이 거칠게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쉬멜라 수도원 관광을 마치고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음식점에 삼촌이 보이지 않아 너무도 놀랐다.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주변을 둘러보다 길을 잃어버리신 건 아닌지,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셔서 움직이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계신 삼촌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촌께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삼촌이 서계셨던 자리는 작게나마 나무사이로 쉬멜라 수도원이 올려다 보이는 장소였다. 이렇게 먼 곳까지 여행을 오셨는데 몸이 불편하여 마음껏 관광을 하지도 못하는 답답한 마음에 근처를 둘러보셨구나 하면서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려 주지 않아 놀란 마음에 삼촌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복잡한 심경이었다.


쉬멜라 수도원을 마지막으로 트라브존에서의 관광은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숙소가 있는 시바스(Sivas)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보통여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여행을 시작하는 설렘, 걱정, 두려움, 짜증, 화남, 측은함, 슬픔, 가족 간의 사랑, 감사와 미안함… 여행치 고는 꽤나 길었던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 감정들이 계속 반복되고 서로 섞여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경험했다. 초반부에는 이런 마음의 상태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어떻게든 여행을 빨리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행히도 내 마음이 조금씩 대범해졌다. 그 결과 나도 어느 정도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그 어떤 여행보다 여운이 강하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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