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14. 이스탄불 시내 관광 - 1

by Will

여행을 시작한 지 8일 만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물론 튀르키예에 도착한 첫날에는 이스탄불 공항만을 거치긴 했지만 왠지 한번 둘러본 익숙한 도시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숙소는 튀르키예 일정 중 가장 깔끔하고 좋은 숙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남는 시간 동안 주변 구경을 할만한 곳이 없었다. 물론 남는 시간도 많지는 않았다.


https://maps.app.goo.gl/HwGwt2kyPxUEPCJn9?g_st=ic


호텔에서 숙박기간 동안 휠체어를 사용하도록 해 주어서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휠체어를 싣고 출발했다. 버스는 30분 정도를 달려서 우리를 첫 번째 여행지인 피에르롯티 케이블 주차장에 내려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많지는 않지만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 보였다. 다른 일행들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떠나버렸지만 우리는 버스에서 가장 늦게 내려 삼촌을 휠체어에 태워서 계단 앞까지 이동하고, 삼촌이 휠체어에서 내려 계단 손잡이를 잡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것을 부축해 드린 다음, 휠체어를 들어서 계단 위로 올려 삼촌을 다시 태워서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갈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려서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을까 봐 미안한 마음으로 탑승장으로 들어갔지만 다행히 아직 케이블카가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에는 조그마한 고양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튀르키예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개들과는 사뭇 대비가 되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들이었는데 케이블카 탑승장에 사람이 꽤나 많았는데도 아무런 두려움이나 어색함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케이블카가 내려와 정차하는 부분에 올라가서 쉬고 있는 고양이들도 있어서 케이블카가 내려왔을 때 다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나보다 그곳에서 더 오래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케이블카가 탑승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모두들 슬금슬금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순서대로 탑승했고 케이블카는 그리 높지 않은 곳으로 우리를 올려다 주었다. 올림포스산의 케이블카에 비하면 이곳의 케이블카는 타자마자 내리는 수준으로 한국의 남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꼭대기에서 내려서는 다행히도 휠체어로 모든 곳을 갈 수 있도록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전망대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커다란 강을 볼 수 있었는데,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빠져나온 커다란 줄기인 ’골든혼‘만 이었다.


피에롯티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아래쪽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골든혼 주변으로 자리 잡은 여러 언덕들을 가득 채운 나무숲과 군데군데 보이는 커다란 모스크의 원형 지붕들, 높지 않은 붉은 톤의 지붕을 가진 많은 건물들이 어우러져 이스탄불만의 특이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잠시 풍경을 보며 한숨을 돌리고 우리 일행은 다시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두 번째 목적지는 그랜드 바자르. 이스탄불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재래식 시장 같은 공간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튀르키예 여행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랜드 바자르 입구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제법 자유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거기다 내부의 길도 대리석 같은 매끈한 재질로 아주 잘 포장이 되어 있어 휠체어를 끌고 다니기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만 내부가 넓고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다니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고, 내부 통로들도 고저차가 존재해서 내리막, 오르막길을 지나다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우리 가족은 우선 입구로 들어가서 앞으로 쭉 나있는 큰길을 따라 출구까지 한번 구경을 한 뒤 다시 뒤로 돌아와 큰길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사이 골목길들을 훑어보았다. 한국의 재래시장을 예상했었지만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는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깔끔한 쇼핑몰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모든 가게들은 깔끔한 별도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고, 길 가운데서 장사를 하는 노점 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랜드 바자르 내부


이런저런 가게들을 둘러보던 우리에게 머그컵과 작은 접시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기념품으로 머그컵을 사고 싶어 하셔서 몇 군데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예상보다는 비싼 가격을 제시하였고, 거의 할인도 해주지 않았다. 몇 군데를 더 둘러 보다 결국 처음 보았던 가게로 가서 어머니는 머그컵,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한 작은 소스 그릇을 골랐다. 점원은 우리가 고른 상품들을 여러 겹 신문지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가게의 다른 도자기 그릇들을 구경하였는데, 일반 도자기보다 무게가 매우 가벼워 신기해서 점원에게 물어보았더니 경량 세라믹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상품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에 점원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 상품가격에 조금 모자랐지만 그것만 다 받고는 상품을 건네주었다.


기분 좋게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그랜드 바자르의 반대쪽 출구에서 다른 일행들과 합류했다. 다음 목적지는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걸어서 성당까지 이동하였는데, 제법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삼촌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 가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종종 자연석을 깎아서 포장을 한 구간도 나왔지만 휠체어를 끌고 가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내를 약 20분 정도 걸어서 성당 근처에 도착했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로 로마시대에 성당으로 건축되었다가 1400년대에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되어 사용되었으나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에 세속주의 정책(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정책)으로 약 3년여간 봉쇄되었다. 이후 박물관으로서 다시 개방되었다가 2020년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다시 이슬람 모스크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성당


아야소피아 성당은 근처에만 도착해도 그 존재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돔형태의 지붕을 가진 건물 주위에 뾰족한면서도 우직한 기둥들이 매우 높게 솟아올라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질 수로 압도적인 크기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려는 인파들의 행렬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 앞쪽에는 이미 100미터도 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줄이 뱀처럼 여러 차례 휘어지고 휘어져서 넓은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행히도 성당 내부에서는 시간을 들여 관람해야 하는 행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어서 줄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성당 입구까지는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성당의 예배실로 들어가는 부분에 꽤나 높은 턱이 있어 휠체어를 들어 올려 넘어갈 수가 없어 보였다. 거기에다 예배실 내부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자 삼촌이 자신은 여기서 기다리면서 안쪽을 들여다봐도 충분하니 얼른 안쪽을 구경하고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먼저 선뜻 자신을 놔두고 들어가라고 해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안쪽의 장관을 함께 보고 올 수 없어서 너무도 아쉬운 마음이 교차하면서 복잡한 심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지만 나는 조금 비겁하게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와 하면 부모님만 모시고 예배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야소피아 성당 내부


성당 안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내부 공간에 우선 압도되었고, 그 넓은 천장에 빼곡히 그려져 있는 예술작품과도 같은 벽화들이 너무도 이국적이고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지붕아래로는 성당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샹들리에 조명들이 아주 낮게 매달려 있었다. 아주 단순한 검은색 원형 테두리에 촛불을 형상화한 백열전구들이 빛을 내고 있었을 뿐인데 이 조명에서 발산되는 옅은 주황색빛이 성당내부의 화려함을 배가 시켜주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거기에 그 넓은 실내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의 모습이 섞여 떨쳐내기 힘든 웅장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붐비는 사람들로 복잡했지만, 관광객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관람을 이어갔고 심지어 한쪽 구역은 기도하러 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섞여도 전혀 어색하거나 서로 불편한 느낌이 없었는데, 아마도 오랜 시간 관광객을 받으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공간을 배분해 놓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성당 관광을 마치고 다시 20여분 정도 시내를 걸어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히포드롬을 지나가게 되었다.


https://maps.app.goo.gl/61djFqQXa7hmVXUa7?g_st=com.google.maps.preview.copy

히포드롬

히포드롬은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이었던 터를 공원으로 탈바굼해 놓은 공간이다. 공원의 한쪽 끝에는 기원전 1400년경의 상형 문자가 새겨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세워 멋진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시내의 대부분의 인도가 잘 포장되어 있어 휠체어를 끌고 가기에 좋았지만 식당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좁은 내리막 골목을 지나가야 해서 약간 진땀을 빼며 삼촌을 모시고 식당 앞에 도착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힘들어 보일 때마다 가이드님, 튀르키예 가이드, 일행분들이 도와주셔서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곧 식당에 도착했고 우리 일행들을 위해 예약한 좌석은 2층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나와 삼촌 두 명을 특별히 1층 바깥쪽 테라스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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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당연히 케밥이었는데 이 음식점의 케밥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맛의 크림이 추가된 토마토소스를 곁들여 먹도록 서빙을 해 주었다. 튀르키예 여행을 하며 점심식사는 거의 케밥만 먹고 있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스타일의 케밥을 먹다 보니 물려서 더 이상 못 먹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혼자서 탄산음료를 두 개나 주문하여 벌컥벌컥 들이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휠체어까지 끌고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다녀서 갈증이 많이 났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톱카프 궁전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식당으로 올 때 내리막길을 지나왔으니 이번엔 다시 그 길을 올라가야 할 차례이다. 내리막을 내려오면서도 삼촌이 타신 휠체어의 무게 때문에 조금 끌려내려 가듯 천천히 움직였었는데, 오르막에서는 밀고 올라가야 하니 두 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힘든 내색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하였지만 내 표정과 움직임에서 티가 났는지 지나가던 튀르키예 사람이 선뜻 옆으로 와서 휠체어를 함께 끌어주기도 했고, 현지 가이드의 도움도 받아 오르막을 금방 올라올 수 있었다.


오전에 관광을 마친 아야소피아 성당옆을 다시 지나서 톱카프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원통형으로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기둥을 가진 톱카프 궁전의 웅장한 입구를 지나면 귈하네 공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톱카프 궁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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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의 내부는 거대한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중간중간 커다란 건물들이 서로 충분히 널찍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에게 무선 이어폰이 하나씩 주어 졌고, 이것을 통해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가는 관광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입구에서 출발을 했고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이는 정원 끝의 전망대를 목표로 이동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만나는 몇 개의 건물 내부를 통과하며 실내를 돌아보는 코스였지만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이나 턱이 높아서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코스였다. 아쉽지만 나와 삼촌은 건물 내부 구경은 포기를 하고 정원의 길을 따라 정원 끝쪽으로 이동을 했다. 정원의 길은 유럽처럼 수많은 돌들을 촘촘히 깔아서 올록볼록하게 포장해 놓은 터라 휠체어를 밀기도 어려웠는데, 건물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정원 끝으로 가는 직선 길을 찾지 못하여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나온 다른 일행들보다 오히려 뒤처져 버렸다. 한참을 헤매며 정원 끝부분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볼 수 있는 테라스 직전까지 도착하였으나 경사가 꽤나 급한 내리막을 한번 내려가만 했기에 결국 삼촌은 내리막 앞에 잠시 기다리시는 것으로 하고 나와 부모님만 테라스로 내렸다.

테라스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며 어머니가 너무 무리해서 삼촌을 모시고 다니지 말고 적당히 어디에 기다리시도록 모셔두고 관광을 하라며 반쯤 짜증 섞인 잔소리를 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이왕 같이 여행을 온 것이니 내가 조금 힘들어도 다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좋지 않겠냐며 같이 짜증을 냈고, 잠시 삭막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 덕분에 보스포러스 해협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어머니는 사진도 안 찍겠다며 버티시기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톱카프 궁전 안의 정원에서 보이는 보스포러스 해협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아마도 삼촌을 모시고 다니면서 고생하는 내 모습을 보시면서, 본인이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 폭발하여 짜증을 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조금 힘들어도 어떻게든 더 많은 곳을 모두 함께 돌아보겠다는 목적의식과 충분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내 몸이 힘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생각의 차이가 며칠간 계속되다 보니 결국 마음속에서 밖으로 표출되어 서로 짜증을 내기까지에 이른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즐거워야 할 여행 중에 왜 자꾸만 짜증을 내셔서 분위기를 망치시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저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자연스러운 상황들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해협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마치 강처럼 반대쪽에 존재하는 육지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광활하게 펼쳐진 남색에 가까운 아주 짙은 파란색의 물결 때문에 더욱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경치를 잠시 감상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서 삼촌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내려올 때 예상했던 것보다 경사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삼촌이 탄 휠체어를 끌고 내려갔었다면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는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기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오래 할 틈도 없이, 나는 오르막길을 반쯤 달려올라가 다른 일행들을 앞질러 간다. 얼른 삼촌을 만나서 다른 일행들에 뒤처지지 않게 다음 관광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오르막을 다 올라가자마자 삼촌이 기다리고 계셨고, 얼른 휠체어를 끌고 일행의 무리에 합류하여 따라가기 시작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항상 패키지여행을 함께하는 다른 일행분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함께였다. 여행을 준비하고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저 버스를 타고 가이드님이 안내해 주는 장소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가끔 기념품이나 간식을 사는 타이밍에만 나서서 부모님과 삼촌을 도와드리면 되는 아주 손쉬운 여행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이렇게 부담감을 안고 며칠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적응이 어느 정도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삼촌을 모시고 다니느라 정신없는 시간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걱정하는 시간이 여행의 전부였던 것처럼 느껴졌었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이른 이 시점에는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관광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타협의 기준과 어머니가 생각하는 타협의 기준에는 차이가 좀 있었지만.


다음 코스는 궁전 안에 위치한 ‘하렘’ 구역이다. 하렘은 궁전내부에서 여성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구역이었는데, 400여 개가 넘는 방이 존재한다고 한다. 황제의 어머니나 후궁, 궁녀들이 함께 생활했던 장소이니 만큼 내부는 궁전만큼이나 넓었고 잘 꾸며져 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 통로가 한두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좁고 턱도 많아서 이번에도 삼촌은 밖에서 기다리시기로 하고 나와 부모님만 하렘 내부를 둘러보고 나왔다. 하렘 내부는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가이드님을 따라서 정신없이 구경을 하다 보니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부에는 여러 가지 공간들이 있었는데 매우 간소한 방,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모스크와 같은 공간들이 섞여 있어 흥미로웠다.




하렘 관광을 마치고 나서는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 가족은 하렘 출구 근처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음료수를 마시기로 했고, 내가 음료수를 사기 위해 궁전 내부 매점으로 향했다. 뜨거운 햇빛이 비추는 날이러서 그런지 매점에는 엄청한 사람들이 음료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매점에서 보유한 냉장고가 음료수를 사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차가운 음료수는 아예 동이 나고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가족도 할 수 없이 차가운 음료수는 포기하고 구매할 수 있는 물을 사서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음료를 마시고는 다 같이 잠시 쉬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리현상이 있어났고 우리 가족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도 돌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길이어서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도착했는데, 예상치 않게 장애인 화장실 칸까지 따로 갖춰져 있어 살짝 놀랐다. 하지만 장애인 칸은 굳게 잠겨있었고 다시 한번 나와 삼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궁전 내부 시설을 관리하는 듯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장애인칸의 문의 열어 주었고, 덕분에 화장실 이용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장애인칸 내부를 보니 아마도 청소 도구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삼촌이 화장실을 사용하시는 동안 잠시 화장실 입구 근처 벤치에 낮아 쉬기로 했다. 기다란 벤치의 한쪽 끝에는 30대로 보이는 커플이 먼저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가볍게 인사를 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였다. 알고 보니 커플 중, 남자분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며 한국도 수차례 다녀간 경험이 있어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지금은 유럽 쪽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조금 늦은 2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커플은 여름과 겨울에 각각 2주 정도씩 휴가기간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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