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파묵칼레 열기구 투어
여행 7일 차의 새벽이 다가왔다. 오늘의 일정은 그토록 기다리던 열기구 투어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버스에 탑승했다. 우리 일행이 카파도키아에 머물렀던 이틀의 일정동안 날씨의 영향으로 그 지역에 모든 열기구 투어가 취소되었지만 이곳 파묵칼레에서도 열기구 투어를 진행할 수 있어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다행히 어제 오후 숙소로 돌아오며 가이드님을 통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열기구 투어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지를 받았다. 이후에도 취소 소식은 없어 모두들 새벽에 모여 버스를 타고 열기구 투어 장소로 출발했다.
우리 일행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열기구를 향해 이동했다. 미니버스가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어둠을 뚫고 우리를 열기구 근처에 내려 주었다. 열기구에는 반쯤 바람이 들어가고 있었고 저 멀리에는 이미 하늘로 올라가는 열기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열기구를 타본다는 들뜬 발걸음으로 우리는 열기구옆에 모여 있었다. 가이드님께 문의했을 때 몸이 불편하신 삼촌도 당연히 참여하실 수 있다고 했었기에 우리 가족들은 별 걱정 없이 열기구에 바람을 넣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열기구에 뜨거운 바람이 거의 가득 차 하늘로 떠오르자 열기구 스태프들이 우리 그룹에게 와서 타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우리 가족보다 빨리 열기구 쪽으로 간 사람들이 열기구에 올라타기 시작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당황해서 순간 내 정신이 멈추어 버렸다. 열기구의 바구니의 한쪽 벽이 문처럼 열리며 걸어 들어가 탑승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바구니에는 그럼 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한쪽 벽면에 걸어 놓은 간이 사다리를 통해 사람들이 벽을 넘어 바구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과 삼촌을 모시고 온 나는 다시 한번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 가족들이 성인의 가슴정도 높이의 벽을 넘어 바구니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나마 제일 건강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고 순간적으로 열기구 투어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제 와서 열기구를 못 탄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꽤나 비싼 관광 비용을 이미 지불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세 노인분들을 바구니에 넣어야 했다. 우선 내가 먼저 사다리를 통해 바구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은 우리 아버지의 차례였다. 평소 계단은 잘 오르내리셨지만 사다리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기력이 많이 약해지셔서 사다리 첫 칸에 다리를 올리시고는 두 번째 칸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를 끌어당기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수월하게 탑승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열기구 설치 스태프 중 한 명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키였지만 한눈에 봐도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 스태프였는데 우리에게 선뜻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아버지를 아래서 받쳐 올려 바구니의 벽을 훌쩍 넘어 올라타도록 도와주었다. 다음은 어머니의 차례였다. 사다리를 어찌 올라가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그 남자 스태프가 어머니를 번쩍 안아서 들어 올렸다. 갑자기 낯선 남자에게 안겨서 들어 올려진 어머니는 당황하면서도 재미있어하시는 눈치였다. 그 남자 스태프는 어머니를 들고 바구니로 다가와 가뿐하게 벽 너머로 내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삼촌의 차례였다. 삼촌은 키도 크시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시는 편이라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 남자 스태프가 바구니 바깥에서 들어 올려 주고 내가 안에서 잡아당겨 힘겹게 탑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탑승을 완료 하자 열기구는 바로 지상에서 떨어져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로 점점 높이 올라가는 동안 바구니 벽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조금 묘했다. 손이 닿을 듯이 가깝던 땅바닥이 이제는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열기구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주변의 동네 넓은 들판과 많은 집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하늘에는 떠오르는 햇빛의 뜨거운 주황색과 새벽녘의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며 물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튀르키예 열기구투어를 평생에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고 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열기구를 운전하는 파일럿은 바구니에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자리 잡았는지 쓱 둘러보고는 가방에서 360도 촬영이 가능한 액션캠을 꺼내어 기다란 봉에 연결한 뒤 열기구 바구니의 한쪽 벽에 거치해 두었다. 바구니에서 긴 막대가 바깥쪽으로 튀어나와있고 거기에 액션캠이 달려있게 되었는데 그걸로 전체 과정을 촬영하는 것 같았다. 아이패드를 꺼내 액션캠으로 촬영이 정상적으로 시작된 것을 확인하고는 파일럿이 램프의 레버를 당겨 불꽃을 뿜어 열기구를 이륙시켰다.
우리가 탄 열기구 주변으로 20여 개 정도의 열기구가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열기구들은 제각각의 무늬를 뽐내며 너무도 조용하고 부드럽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멀리까지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묵칼레 온천수가 흘러내리며 만든 하얀 석회 언덕도 이제는 저 아래의 작은 언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올라 새벽의 땅거미가 모두 사라질 때즈음이 되자 열기구는 가장 높은 지점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열기구의 파일럿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열기구 램프의 레버를 잡아당겨 적당한 불꽃을 뿜으며 부드럽게 열기구를 하강시켰다.
열기구가 땅에 가까워지자 저 멀리서 열기구를 정리하기 위한 자동차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새끼손톱만 해 보이던 차량이 열기구가 점점 하강함에 따라 점차 실제 크기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열기구를 타보기 전에는 열기구 탑승장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위치에서만 타고 내리는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타보니 그렇지 않았다. 열기구에 탑승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장소는 대략적으로 정해 놓고 출발하는듯하지만 다시 착륙하는 장소는 그때그때 날씨, 특히 바람의 상황을 보고 파일럿이 임의로 정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열기구가 착륙하는 장소 근처에는 이미 착륙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는 열기구가 있었는데, 두세 명의 스태프들이 열기구가 착륙하는 것을 따라와서는 풍선에 바람이 반쯤 빠져 땅으로 누워버리는 동시에 풍선을 쥐어짜듯 바람을 빼면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열기구를 조금 지나쳐 우리가 탄 열기구도 땅에 스치듯 착륙하기 시작했다. 노 부모님을 모시고 열기구에서 내릴 생각을 하니 조금 막막하였지만, 다행히도 우리 가족이 탑승할 때 도와주었던 스태프가 우리가 탄 열기구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탄 열기구는 땅 바로 위에 떠서 옆으로 한동안 이동하다가 땅에 착륙하였는데, 그 직후에 다른 열기구가 우리 쪽으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여 착륙하려는 바람에 조금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우리 열기구의 스태프가 그 열기구에 매달린 밧줄을 잡아당겨서 열기구의 방향을 바꿔 놓는 바람에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착륙 후에 우리가 탄 바구니의 모든 사람이 내린 후,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내렸다. 아니, 내려졌다. 너무도 고맙게도 우리 부모님, 삼촌을 열기구에 올려주신 스태프는 다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 가족 모두가 바구니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열기구에서 내리고 난 뒤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그 스태프에게는 팁을 아주 두둑이 챙겨 주었다.
문이 없는 바구니 때문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사히 열기구 투어를 마쳤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안에는 부모님과 삼촌이 예상보다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열기구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데 이제야 모두들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짓고 있는 표정이 보인다. 왜 내 기억에는 부모님이 활짝 웃고 있는 표정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걸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부모님의 표정에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