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쉬린제와 에페스 유적지
새벽녘부터 열기구 투어를 끝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인 쉬린제로 출발하기 전 간단히 가죽 제품 쇼핑을 마치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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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당연히 또 케밥. 하지만 이번엔 양고기를 다져서 만든 떡갈비 같은 느낌의 케밥이었다. 케밥을 입에 넣었을 때 양고기 특유의 향이 약간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 향이 고기의 부드러운 육질과 어우러져 좋은 느낌을 배가시켜 주었고 의외로 괜찮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칠 때까지 우리 일행은 쉬린제에 가게 될지 안 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이드님의 말에 따르면 쉬린제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딱 한 개뿐이라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여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일요일에 쉬린제에 방문하게 된 우리 일행은 이후에 에페스 유적지도 둘러보고 이스탄불행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가이드님은 비행기 출발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점심식사가 마무리되는 시간이 늦어지면 쉬린제를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예상보다 점심식사까지의 일정이 빠르게 마무리되어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쉬린제를 향해 출발했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 쉬린제 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버스가 주차장에 주차를 했고 우리 일행은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쉬린제는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기에 삼촌은 버스에서 내려 그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시고 나머지 세명만 다녀오기로 했다. 언덕길을 따라 계단을 오분정도 올라가니 산속에 있는 공간에 위치한 관광지와 같은 장소가 등장했다. 높은 지대라서 그런지 한쪽으로는 산아래에 위치한 예쁜 마을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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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시간이 허락되어 쉬린제에 오긴 했지만 우리 일행에게는 많은 자유 시간이 허용되진 않았다.
슬쩍 둘러보니 이곳의 특산물인 와인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도 많이 있었다. 우선 와인 상점으로 들어가 와인을 1/3잔 정도씩 홀짝이며 시음하고는 다른 곳을 구경하기 위해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여러 가지 다른 상점들 중 눈에 띈 곳은 튀르키예의 전통 커피를 파는 가게였다. 뜨거운 모래에 커피 포트의 아래쪽을 묻어 끓여주는 커피였는데 여행 오기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이라 더 눈길이 갔다. 튀르키예에 오면 길거리 여기저기서 이런 전통커피를 파는 가게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여행 중에 쉬린제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전통 커피를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얼른 한잔을 주문했다. 커피 가게의 점원은 이미 다른 손님들의 커피가 담긴 포트를 모래에 넣고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한 코코아 분말색의 모래는 매우 고와 보였는데 뜨겁기도 한 것 같았다. 커피포트를 반쯤 모래에 묻히도록 놓아두기도 하고, 살살 모래에 묻혀있는 채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도 하며 모래의 열기로 커피를 끓여준다. 포트 안의 커피는 매우 진한 색을 유지하며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유지되다가 끓는점에 도달하면 갑자기 한 번에 확 끓어 올라 그동안 참고 있던 거품을 뱉어낸다. 그리고 점원은 그 순간을 포착하여 한 방울의 커피도 흘리지 않은 채 커피포트를 모래에서 꺼낸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커피가 적당히 끓었다고 생각되면 잔에 따라 손님에게 내어준다.
신기한 구경을 하며 조금을 기다려 우리도 한잔의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기대를 한가득 가지고 커피를 한입 들이켰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맛에 너무도 놀라버렸다. 머릿속에서는 아주 고소한 맛에 약간 쓴 향기가 가미된 진한 커피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혀끝에 느껴지는 커피의 맛은 쓴맛이 너무도 강했고 입안으로는 곱게 갈려진 커피의 가루들이 함께 밀려들어오며 텁텁한 느낌으로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마치 바닷가에서 모래가 잔뜩 들어간 물을 마시는듯한 느낌이었다. 첫 한입을 마시는 순간 가족의 인원수대로 세잔을 주문하지 않고 한잔만 주문한 것이 너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가족들도 한입씩 맛만 보고도 커피가 남아 다른 일행 몇 명도 맛을 보았으나 다들 반응은 비슷했다.
남은 커피를 어디다 버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가이드님께서 시간이 없으니 버스로 이동하자고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커피를 손에 들고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따라 내려와 삼촌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금방 다 달았다. 삼촌에게 커피맛을 보여드리고는 버스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에서 이동하여 그곳까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곳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겠거니 하고 걷기 시작하였는데 이럴 수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삼촌을 부축하여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제법 잘 걸어 내려가시는 듯했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는 도저히 못 걷게 다며 멈춰 서 버리셨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정말 한두 걸음을 걷기도 힘들 정도의 상태인지 의심가기도 했다. 한걸음 한걸음 겨우겨우 걷고 있는 나와 삼촌 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따라오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께 먼저 버스에 가서 상황 설명을 좀 드리고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언덕 저 아래, 약 오백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버스가 주차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버스로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며 삼촌을 부축하여 한 걸음씩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삼촌은 도저히 못 가겠다며 멈춰 섰고 급기야 땅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하셨는데, 여기서 주저앉아버리면 내가 거구의 삼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자신이 없어 있는 힘을 다해 부축하여 버티고 있었다. 땡볕 아래서 삼촌을 끌고 언덕을 한 걸음씩 내려가며 버스 쪽을 보니 부모님이 버스에 도착하여 올라타시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나머지 일행분들 몇 분이 모두 버스에 오르자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버스가 우리를 두고 출발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삼촌을 붙잡고 끌어서 언덕을 계속 내려갔다. 다행히도 버스는 우리가 내려가는 길 근처로 이동해서 기다려 주었고,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버스는 다음 목저지인 에페스 유적지로 출발한다.
삼촌을 버스에 무사히 태우고 나도 자리에 앉은 바로 그 시간이 여행 중에 가장 긴장이 풀리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자리에 앉은 후 버스가 출발한 뒤 약 10여 분간은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려 편안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잠시 후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다음 일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삼촌과 함께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된다.
에페스 유적지는 전체를 도보로 이동하여 구경하는 코스였기 때문에 삼촌은 버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부모님과 나만 버스에서 내렸다.
유적지는 마치 그 당시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도시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당시의 호화로운 생활을 반영하듯 도시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는 길 전체를 대리석으로 깔아 놓았다. 대리석은 뜨거운 햇빛을 받은 데다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가 아주 매끄럽게 연마가 되어 있었다. 너무 매끄러워진 탓에 우리 일행 중 두 분이나 걸어가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에페스 유적지 않아는 테라스 하우스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은 예전에 만들어진 주상복합 공간이다. 커다란 건물 안에 공간을 나누어 주거지, 상점들을 모두 넣어 놓은 구조였는데 그 옛날에도 이런 발상을 해서 건축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테라스 하우스는 1층에서 시작하여 2층을 둘러보고 출구로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2층 출구로 나가면 작은 뒷마당 같은 공간이 나오고 이곳에서 저 멀리 낮은 곳의 풍경들을 볼 수 있어 마치 높은 건물의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테라스 하우스를 지나 셀수스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도서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지금은 건물의 앞쪽 외형만 남아있는 듯했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셀수스 도서관을 바라보고 우측 편에도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다.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은 공간의 모습이지만 군데군데 남아있는 거대한 기둥들이 예전에는 이곳에 규모가 제법 큰 건축물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셀수스 도서관 근처를 모두 둘러본 후 오른쪽으로 쭉 뻗어 있는 길을 빠져나오자 원형 경기장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형 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건물인 줄 알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보니 튀르키예를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원형 경기장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의 원형 경기장도 제법 큰 규모를 가진 장소였다. 모든 객석에서 잘 보이도록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원형의 운동장에서 과연 어떤 공연이나 연설들이 이루어졌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원형 경기장에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무대뒤에서 준비하고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과 통로등이 구비되어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원형 경기장 내부를 구경하고 출구방향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저 멀리 원형 경기장의 내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포인트에 도착했다. 지형의 고저차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우리가 서 있는 평지에서 높은 벽이 감싸고 있는 원형 경기장의 안쪽 일부가 들여다 보였다.
에페스 유적지 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 장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삼촌을 홀로 남겨두고 버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괜찮다고 웃고만 계시지만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와서 버스에만 앉아 있어야 하다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실까…
저녁 식사는 한식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허름한 한식집이었는데 비빔밥과 한국 반찬, 그리고 국이 함께 제공되었다. 버스가 주차하자마자 다른 일행들은 서둘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나와 삼촌은 맨 뒤에서 천천히 식당으로 따라 들어갔다. 삼촌을 부축하고 식당 안으로 뒤늦게 들어갔을 때, 일행들은 꽤 넓은 식당 내부의 가장 안쪽에 있는 단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와 삼촌은 식당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따로 앉아 식사를 마쳤다. 삼촌께서는 식사를 마치시면서 오랜만에 잘 먹었다며 만족해하셨다. 여행 기간 중에 한 번도 한식을 찾지 않으셨지만 그동안 내심 한국식 밥을 드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저녁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우리 일행은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늘 튀르키예 국내선 비행기를 타게 되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하게 된다. 꽤나 긴 일정의 여행이었고 노부모님과 몸이 불편한 삼촌을 모시고 다니느라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에도 막상 여행이 곧 끝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아쉬운 마음이 내가 아직 여행 중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며 지친 몸과 마음 때문에 잊고 있었던 여행의 설렘을 조금 되살려 놓는다.
공항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 우리와 함께 일정을 소화해 준 기사님과 작별인사를 마치고, 약간의 팁을 드리고 우리 가족은 그동안의 일정과 마찬가지로 가장 늦게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삼촌을 부축하여 제일 뒤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나를 제외하고 그나마 제일 건강하신 어머니가 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힘겹게 끌고 앞장을 서서 공항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튀르키예 가이드가 우리를 위해 공항 스태프들과 이야기하여 휠체어도 마련해 주고, 수하물 처리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가 조금 딜레이 되는 바람에 우리는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려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우리 가족들의 좌석이 모두 여기저기로 나눠져 있었다. 삼촌은 비행기의 가장 앞쪽 좌석에(아마도 거동이 어려운 부분을 배려하여 입구와 가까운 좌석으로 배정해 준 것 같다) 부모님은 중간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몇 칸 더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되었다. 삼촌은 혼자 따로 앉는 것이 불안하신지 계속 나를 찾으셨고 삼촌의 옆자리에 앉으셨던 패키지여행 일행 중 한 분이 자리르 바꿔주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짐을 위쪽 선반에 올려버리고 자리를 잡아버린 터라 다시 짐을 꺼내어 앞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도 조금 불안했지만 승객들이 다 타자 승무원들은 더 이상의 이동을 허용하지 않았고 비행기는 그대로 이륙했다. 비행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기내식도 제공되었다. 놀라운 점은 아주 따끈따끈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도착해서 비행기를 탔지만 그래도 기내식 맛이 좋아서 금방 먹어버렸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는데 내 옆자리에 앉았던 튀르키예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 삼십 분 정도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람도 우리와 비슷하게 트라브존을 방문하고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트라브존에 조부모님이 살고 계신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바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30여분 정도를 달려 늦은 밤에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로비의 리셉션으로 달려가 휠체어부터 빌려 삼촌을 태웠다. 호텔에서 빌려준 휠체어는 오래되어 보이긴 하지만 튼튼한 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모든 일행이 너무도 피곤한 모습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열기구 투어를 하고 몇 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본 뒤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각각 방의 키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고 일행들은 모두 같은 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드디어 숙소에 들어가서 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듯했지만 그것 도 잠시, 호텔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들이 배정받은 방의 문이 하나도 열리지 않고 있었다. 결국 다시 로비로 내려가 한참을 설명하고 기다린 뒤에 완전히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삼촌과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씻는 시간이었다. 혼자서는 걷기도 힘들어하시는 삼촌은 일단 한번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앉으시면 혼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어하셨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그렇게 멀쩡하던 사람이 도대체 며칠 만에 이렇게 까지 힘들어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많이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매일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 잠자기 전까지 삼촌이 움직이실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힘겹게 겨우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한걸음 한걸음을 움직여 화장실을 가시거나 씻으러 가실 때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혹시 삼촌이 넘어지시지 않을까 걱정하며 옆을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히도 여행 중에 삼촌이 또 넘어지셔서 다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밤새 누웠다 일어났다 하시며 화장실을 가시는 삼촌 때문에 나도 대부분의 밤을 뜬눈으로 설쳤다.
이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밤 열한 시가 거의 다 되어서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삼촌이 씻고 주무실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열두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너무도 피곤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여 혼자 먼저 잠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늦은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는 또 내일 일정동안에 삼촌을 어떻게 모시고 다닐지 걱정이 시작된다. 호텔에서 빌린 휠체어를 가지고 나가도 되는지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하면 어쩌지. 차라리 그냥 가지고 나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