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10. 지중해와 맞닿은 도시 안탈리아

by Will

여행 5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의 바람은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잠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열기구를 타러 가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우리가 카파도키아에 머무는 기간 중에는 열기구 투어가 모두 취소되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다소 느긋한 아침식사를 즐기고 안탈리아로 출발할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 까지는 대략 500km 정도의 거리. 당연히 버스는 중간에 한번 쉬어가야 했는데 그 장소는 바로 콘야(Konya)였다. 콘야에 몇 시간 정도 머물면서 관광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일정상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은 장소에 잠시 들러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https://maps.app.goo.gl/4tRA2yA2FnS5EFaEA?g_st=ic

점심식사의 메뉴는 길이가 거의 1.5미터는 되어 보이는 피데였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테이블 위에 차려진 기본 음식들을 살펴보고 모든 테이블마다 가운데 일렬로 놓아진 받침대와 같은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음식점의 직원이 갑작스럽게 긴 피데를 들고 와서는 테이블 위 받침대 위에 올려주고는 돌아갔다. 길이가 워낙 길어서 4인용 테이블 긴 방향으로 꽉 차는 정도의 크기였는데 받침대 덕분에 피데 아래쪽에도 다른 음식을 놓고 먹을 수 있었다. 피데는 인도의 난과 같이 얇게 구운 빵반죽 위에 고기와 야채, 그래고 소스가 섞어 올린 후 구운듯한 느낌의 맛이었다. 피데가 워낙 길고 양이 제법 많아서 점심 메뉴는 이것 한 가지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 개인별로 닭고기 케밥이 한 접시씩 더 서빙되었다. 이번 케밥은 닭고기를 양념하여 꼬치에 끼워 구워낸 듯한 맛이었는데 기름기가 없이 담백한 맛이 아주 좋았다.


엄청나게 길었던 피데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나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안탈리아를 향해 한참을 이동했다. 안탈리아 중심부에 도착하자 제법 큰 도시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싣고 달리던 버스는 지중해가 보이는 길을 따라 이동하다 지하 주차장에 우리는 내려 주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절벽의 위쪽이었는데 안탈리아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걸어서 바닷가까지 내려가야 했다. 가이드님께서는 위쪽과 아래쪽을 연결해 주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걷기 힘든 삼촌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쯤엔 삼촌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셔서 평지를 걷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셨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가지고 주차장에서부터 절벽 위쪽까지 힘겹게 삼촌을 끌고 걸어갔다. 하지만 삼촌을 부축하여 걸어가는 내게로 가이드님이 멀리서부터 급하게 뛰어 오시는 것이 보였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임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삼촌은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드리기로 했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카페라 드넓은 지중해가 시야를 꽉 채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아드리고 음료까지 주문해 드리고 나서야 함께 유람선을 타러 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삼촌도 조금 평안한 미소를 보이시는 것으로 보고 나는 급하게 일행을 뒤쫓아 아래쪽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벽아래의 선착장 까지는 제법 경사가 있는 계달이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유람선 출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야 했기에 곁눈질만 하며 길을 따라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아래쪽 선착장에 도착하자 부두를 따라 수많은 유람선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각각 전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유람선들을 지나가니 우리가 탈 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https://maps.app.goo.gl/QG8LpceLKgZd5hby6?g_st=i


부두의 맨 마지막 구역에서 우리가 타야 하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나무로 된 해적선을 본떠 만들어놓은 듯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는데 조금은 유치하지만 배로 올라타는 부분이 입을 벌리고 있는 상어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어 사람들이 상어 입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연출되도록 꾸며 놓았다. 조금 유치한 게 무슨 상관일까. 우리 가족을 선두로 모두들 머뭇 거림 없이 배에 올라탔고 배는 금세 부두를 벗어나 넓은 지중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안탈리아 유람선


적당한 파도가 넘실대는 배 위에 앉아있으니 삼촌이 기다리실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조금 뒤늦게 일행을 쫓아오느라 정신이 없고 급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배는 조금 흔들렸지만 비교적 부드럽게 부두에서 멀어져 갔다. 부두 뒤쪽으로 높은 절별이 보였고, 절벽 꼭대기에 삼촌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도 시야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저 카페의 바닷가 쪽 자리 중 하나에 삼촌이 앉아서 배들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삼촌과 함께 움직일 때는 나보다 덩치가 더 크신 삼촌을 부축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소모되었다. 거기다 다른 일행분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에 조급해지기 일쑤였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만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 관광을 하면서도 주변의 멋지고 좋은 장면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아직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몸도 힘들도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다행히 여행을 포기하자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 점점 더 적응해 나가면서 조금씩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촌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삼촌이 함께 관광지를 둘러보지 못하고 기다리시는 경우에는 조금 편하게 여행지를 돌아보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부두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배의 정면에는 시야를 꽉 채우는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보는 시야에 꽉 차고도 넘치는 수평선인지 모르겠다. 바다와 하늘을 반으로 나누는 수평선이 시야의 좌측 끝에서 우측 끝까지 꽉 차게 되면 그 중심 부분이 위로 살짝 동그랗게 휘어 있는 듯이 보이는 듯하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좌우 양쪽 끝으로 뻗어 나가는 수평선을 보았던 인상적인 기억이 없는듯하다. 정말로 본 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국적인 모습이 없는 국내 여행이라서 마음속에 깊은 각인이 되지 않아서일까?


안탈리아 부두와 유람선에서 본 풍경

배에 타자마자 웰컴 드링크로 제공되는 와인을 한잔씩 마시고 여러 방향으로 보이는 바다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배는 다시 돌아가고 있었고 우리 일행은 다시 부두에 점점 가까워졌다. 배안에 있던 튀르키예 선원들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찍어 둔 우리들의 사진들을 출력하여 액자에 끼워서 보여주며 판매를 하기도 했다. 배가 부두 근처로 들어오자 출항 때는 보지 못했던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란 방파제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도, 삼촌도 낚시를 참 좋아하시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두 분 모두 아주 건강하셔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서해 바다로 새벽 배낚시를 가시곤 하셨다. 최근 2~3년 사이에 두 분 모두 기력이 많이 약해지셔서 낚시라는 취미는 이제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매우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삼촌은 자신의 차 트렁크에 낚시 도구와 캠핑장비를 항상 실어 두시고는 언젠가 몸상태가 다시 좋아지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계신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을 하시겠다며 산책을 나서신다. 이젠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으니 너무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는 나가지 말시라고 당부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만류하여도 밖으로 산책을 나서시는 이유는 예전만큼 활발히 움직이지 않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리라.


배에서 내려 다시 육지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부두 근처의 계단을 통해 오르막길을 올라 근처 공원을 경유하여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https://maps.app.goo.gl/feJBK61ArbBvUETh6?g_st=i


잠시 후, 상점가를 따라 이동하여 히드리아누스의 문을 둘러보았는데 이런 규모의 유적지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https://maps.app.goo.gl/wQNz1YbHsK6aRU5i8?g_st=i


상점가의 인파에 묻혀 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처음 모였던 장소 근처까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삼촌이 기다리고 계신 곳 근처까지 왔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지중해 유람선과 근처를 둘러보는 관광에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으로 광장의 전망대에서 절벽 따라 형성된 마을의 전경을 둘러보고는 가이드님과 함께 삼촌이 기다리시는 카페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탈리아 항구 절벽 위쪽에서 바라본 풍경


카페 안으로 들어서서 삼촌이 앉아 계시던 테이블 쪽으로 급히 뛰어갔지만 삼촌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했지만 아마도 주변에 계시리라 생각하며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페 밖의 멀지 않은 벤치에 삼촌이 앉아 계셨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한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리셔야 했던 삼촌은 화가 많이 나 계셨고 나와 가이드님에게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소리를 지르셨다. 순간 나도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아는 사람도 없이 홀로 카페에 앉아서 기다리셔야 했던 삼촌의 마음도 헤아려야 했지만 삼촌의 화내시는 모습에 내 마음속에 쌓여오고 있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삼촌에게 나도 힘들다고, 왜 내 마음은 몰라주냐고 한바탕 하소연을 쏟아내었다. 그렇게 쏟아내고 나니 다시 정신이 들고 현실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나는 삼촌을 부축해서 우리 일행들이 기다리는 버스가 있는 곳까지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 했다. 나와 삼촌은 아직 서로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지만 다시 서로 손을 잡고 서로의 힘을 합쳐 걷기 시작했다. 삼촌을 부축하여 걸어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서 삼촌과 함께 여행을 마무리하려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삼촌이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함께 걸어갈수록 힘들어하시는 너무도 약해 지신 삼촌의 모습에 화로 가득 찼던 마음은 어느새 다시 연민의 마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가 주차장 입구 근처까지 걸어갔을 때, 이미 버스는 다른 일행들을 모두 태우고 입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앞에서 잠시 정차한 버스에 힘겹게 올라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다.


https://maps.app.goo.gl/Uufanr2aUE9D9LPR6?g_st=i


버스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스스로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이미 내 마음은 거의 다 진정이 되었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고 어쨌든 쌓였던 스트레스들이 마음속에서 빠져나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의 침울했던 기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에는 앞으로의 여행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버스가 숙소에 도착하여 다시 삼촌을 부축해서 방으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은 침울해할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삼촌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지만 삼촌이 기다리시던 카페의 직원들이 삼촌의 빈 음료잔을 치워고 나서 계속 다가와서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삼촌에게는 직원이 말이 ‘더 이상 음료를 주문하지 않으실 거라면 자리를 비켜 달라’는 것처럼 느껴지셔서 매우 불편하였고 그래서 카페를 나와 주변 벤치에 앉아계셨다고 한다. 거기다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도 아파서 견디기 힘드셨다고 하셨다.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삼촌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몸이 제일 힘들고 마음이 답답한 사람은 삼촌이셨을 텐데…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곧 장 잠자리에 들었다. 부모님도 나의 가라앉은 마음을 느끼셨는지, 오후 내내 걸어서 관광을 하시느라 피곤하셨는지, 그날은 주변 산책을 하자는 말씀 없이 주무셨다. 나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점점 더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억지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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