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카파도키아 2일 차 - 데린쿠유, 괴뢰메, 파샤바, 데브란트
4일 차의 첫 관광일정은 개미집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지하도시 ‘데린쿠유’였다.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이곳은 튀르키예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 붙여졌다. 입구는 일반적인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으로 매우 소박하고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내부 구조는 점점 복잡해지고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곳에 와보기 전에 사람들이 살던 지하도시라는 설명을 듣고 지하게 굉장히 넓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좁은 통로와 공간들을 보고 나니 여기서 어떻게 거주를 했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조명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어두운 분위기가 합쳐져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도저히 장기간 거주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상부터 지하깊이까지 수직으로 뚫려 있는 환기구 덕분에 지하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아주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쾌적한 점은 놀랍기가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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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데린쿠유의 관광객용 통로를 따라서 도보로 약 20여분 정도 이동하여 입구 근처의 다른 포인트에 있는 출구를 통해 나와서 마무리되었다. 도보로 좁은 동굴 안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서 몸이 불편하신 삼촌은 당연히 이번 투어는 포기하고 버스에서 기다리시는 것으로 결정했다. 부모님 두 분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입구에서 티켓팅을 하기 직전에 튀르키예 현지 가이드가 나를 불러 세웠다. 매우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힘든 경로도 있을 수 있어 부모님(특히 아버지)이 가실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평소에도 매일 걷기 운동을 하셨고, 특히 이번 여행을 위해서 하루 만보정도씩 꾸준히 걸어오셨기에 나는 자신 있게 내가 도와주면 충분히 가실 수 있다고 현지가이드를 안심시키고는 투어를 시작하였다. 내 예상대로 대부분의 동굴 통로들은 부모님이 걸어가시기에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 즈음에 몸을 완전히 웅크리고 오리걸음으로 2~3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순간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버지가 지나실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일단 어머니를 맨 앞에 가 시도록 하고 그다음 아버지, 그리고 맨뒤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힘내시라는 응원을 계속하며 쫓아서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매일 열심히 걸어서 체력을 쌓아 오신 덕분인지, 응원의 힘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부모님 두 분 모두 다른 도움 없이 힘든 구간을 잘 통과하셨다.
가장 좁았던 통로를 통과한 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길들이 이어졌다. 마지막 지점엔 동굴을 제법 넓게 파서 만든 몇 개의 방과 같은 공간이 모여있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유시간을 잠시 가진 후 출구를 통해 다시 지상의 뜨거운 햇빛 속으로 빠져나왔다. 입구로 들어갈 때도 그랬지만 출구로 나왔을 때도 작은 매점과 같은 상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한 별다른 시설이 없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곳이라 큰 매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먼 아시아에서 날아온 우리에게는 너무도 특이하고 이국적인 관광지인데 이렇게 소박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의외였다.
이날도 점심식사는 당연히 케밥이었다. 지난번과는 다른 음식점이었지만 한번 더 항아리 케밥을 먹게 되었는데 맛은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버스를 타고 금방 음식점에 도착하였는데 실내가 제법 넓고 많은 테이블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미 세팅이 완료되어 있는 테이블에 우리 일행이 자리를 채우자 지난번 항아리 케밥과 마찬가지로 조리가 완료된 케밥이 들어 있는 항아리를 테이블 앞으로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서 보여주고는 개인 접시에 나누어 주었다. 케밥을 모두 나누어 주고 나서 남자 직원이 트롤리에 갖가지 종류의 술을 잔뜩 담아서 우리 테이블 주변을 끌고 다니며 구매를 권유하기도 하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직접 가져온 소주를 마시려고 꺼내자 그 직원이 급하게 다가와서는 어색한 한국어로 ‘노 소주’를 외치며 마시지 못하도록 막았다. 결국 소주를 못 먹게 된 일행은 음식점에서 파는 맥주를 주문하였는데 조금 전 소주를 못 마시도록 막았던 직원이 맥주를 서빙해 주면서 ‘소주 오케이’라고 말하며 소주와 함께 마셔도 좋다고 말해주어 일행이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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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후에는 괴뢰메 야외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라고 하면 보통 건물 안에 여러 가지 유물들을 전시해 놓는 것을 말하는데 튀르키예에서는 야외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관광지도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260만 년 전 일어난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로마 제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숨어 지내던 장소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경도가 낮은 응회암의 특성을 활용하여 동굴을 파서 거주하면서 약 30여 개의 교회를 만들어 종교활동을 이었갔다고 한다. 야외 박물관은 이런 교회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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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암 지역은 거의 돌산과 같은 지형이기 때문에 큰 나무들이 많지 않아 야외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뜨거운 햇볕과 함께 해야 한다.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시고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제법 긴 길을 걸어야 하고 가파르진 않지만 꽤 높은 언덕길로 올라가는 경로도 있고 해서 삼촌은 입구 근처의 카페에 쉬면서 기다릴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드렸다. 다행히도 카페의 테라스 좌석에 앉아 있으면 괴뢰메 박물관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지를 눈앞에 두고 입장하지 못하는 삼촌의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드릴 수 있었다.
동굴 형태의 교회들은 내부에 여러 명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제법 크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제각각 다른 규모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떤 교회는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을 위한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기에도 제법 높은데 예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던 것일까?
나와 아빠는 비슷비슷한 교회의 모습을 둘러보다 야외 박물관의 중간즈음에 이르렀을 때 흥미를 잃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설악산의 다람쥐처럼 응회암 언덕 꼭대기 여기저기에 뚫려 있는 동굴을 바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70세가 넘은 연세에 저 정도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대단하게도 생각되었지만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아버지와 삼촌의 몸상태가 비교되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다음 관광지는 파샤바 계곡이었다. 파샤바 계속으로 이동하면서 가이드님은 이곳에 버섯모양으로 풍화된 응회암 바위들이 스머프 마을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는 설명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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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전체가 응회암으로 뒤덮여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괴뢰메 야외 박물관고 비슷하였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바람에 의해 깎여서 만들어진 버섯 형태의 특이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모습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가 파샤바 계곡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의 가장 더운 시간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관광지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올리브 나무를 발견했다. 사람키의 두 배정도로 그리 크지 않게 자라난 올리브 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사방으로 자라난 가지아래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어머니를 제쳐두고 나와 아버지는 그늘을 발견하자마자 그 아래로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다.
오늘의 일정은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이 없었기 때문에 파샤바 계곡을 둘러보고도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가이드님은 급하게 한 곳을 더 둘러보고 숙소로 복귀하기로 결정하였고 우리를 ‘데브란트’로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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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란트도 파샤바 계곡과 마찬가지로 풍화된 응회암이 만들어낸 기암괴석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흥미로운 모양의 바위들이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응회암 관광에 흥미를 잃으셨는지 차에 남아 있겠다고 하셨고 결국 나와 어머니만 차에서 내려 응회암 언덕을 올라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언덕이 제법 가파르고 높아 오르내리기 조금 힘들었지만 꼭대기에 올라가면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어 시원한 경치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데브란트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는 길에 가이드님께서 저녁식사 후 벨리댄스 공연 관람과 내일 일정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안 좋은 소식 하나도 전해 주셨다. 내일 새벽에 날씨가 좋다면 다시 도전할 예정이었던 열기구 투어는 튀르키예 관광청의 권고에 따라 향 후 2~3일간 모두 취소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 여기저기 여행정보를 찾아보던 중, 열기구 투어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을 정도로 취소가 빈번하다는 후기를 보기는 하였는데, 막상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다니… 앞으로 일정 중, 파묵칼레에서 한번 더 열기구 투어를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당시에는 우리 일행은 여행운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 한없이 아쉽기만 했다. 열기구투어가 가능한 경우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벨리댄스 공연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없다는 가이드님의 조언에 공연 관람을 하지 않고 모두들 숙소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 예정이었지만 열기구 투어가 취소되어 다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많이 걸었던 오늘 일정에 다들 지쳐서 숙소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에 벨리댄스를 관람하고 온 다른 일행분들로부터 의외로 재미있는 공연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우리 부모님과 삼촌에게는 숙소에서 푹 쉬고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카파도키아의 관광지들은 모두 걸어서 이동하며 주변을 돌아봐야 해서 오래 걷기 불편한 삼촌은 버스나 관광지 입구의 카페에서 기다리셔야 했다. 삼촌을 두고 관광지를 돌아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때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관광지 근처나 버스에서 기다리시게 될 때도 삼촌은 오히려 힘들지 않게 편히 쉬어서 괜찮다며 그저 웃으셨지만 우리가 관광지를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 삼촌이 앉아계시던 주변을 조심히 걸어 다니시거나 멀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관광지 방향의 사진을 찍고 계신 모습을 보면 삼촌도 스스로의 불편한 몸이 매우 원망스럽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속상하셨을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다시 와보기 힘들 먼 곳으로 여행을 왔음에도 온전히 돌아보지 못하고 있기에 아쉬움을 그 누구보다 많이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 계속되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들 중 한 가지는 ‘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모시고 오지 않았을까?’였다.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미리 계획하여 몇 년만이라도 일찍 이곳에 왔다면 지금과 같이 아쉬운 상황들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삼촌께, 그리고 부모님께 느낀 미안한 마음은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 같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 닥쳐서야 이런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자책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늦기 전에 많은 일들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