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스탄불 시내관광 - 2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그늘에서 잠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음 관광 코스인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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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을 내려가서 입구에 도착하였고, 아무 생각 없이 삼촌을 모시고 티켓팅 게이트를 통과하여 지나갔는데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맨 마지막에 들어오려고 했던 우리 어머니를 못 들어오게 막아서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이번 코스는 패키지여행에 기본으로 포함된 코스가 아니었는데 걸어서 관광하시기 어려울 것 같은 삼촌은 제외하고 추가 관광을 신청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삼촌이 앞에서 입장을 하고 나니 마지막에 들어오는 한 명은 입장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가이드님이 금방 확인해 주셔서 추가 입장료를 지불하고 우리 가족 모두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꽤나 넓었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기 위해 아주 약간 돌아서 가야 했지만 다행히 박물관 건물 내부는 매끈한 바닥으로 잘 포장되어 있어 삼촌과 함께 다니기 매우 수월 했다. 거기에다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어 아주 시원하고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대부분의 전시물들을 스쳐 지나가듯 구경하고 지나가야만 했던 점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박물관에는 여러 가지 튀르키예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옛 무덤(튀르키예의 무덤은 거대한 석관으로 되어 있다), 로마시대의 대리석 조각, 고대에 사용되던 화폐(동전)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리석 조각은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만든 조각상들과 견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
혹시나 다른 일행들보다 늦어서 폐를 끼칠까 걱정되어 우리 가족은 조금 서둘러 구경을 하고 시간에 맞춰 박물관 건물을 빠져나와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었는지 패키지여행을 하는 일행들이 모두 나오고 나서도 가이드님이 오시지 않았고, 잠시 기다린 후에 모두 함께 다음 장소인 예레바탄 지하 궁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내를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나와 삼촌 그리고 튀르키예 현지인 가이드님이 앞장을 서서 출발했다. 지하 궁전에는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서 이동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먼저 삼촌이 편히 기다리실 수 있도록 근처 카페에 모셔다 드리고 입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는 길 마지막 부분에 완만한 오르막길을 만나서 속도가 점점 늦어졌고, 나와 삼촌이 궁전 입구 근처에 도착한 뒤 곧바로 다른 일행들도 도착하여 입장을 위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내가 삼촌이 기다리실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자, 현지 가이드님이 길건너의 카페를 가리켜 알려주었다. 난 망설임 없이 휠체어를 밀고 카페로 돌진했다. 카페 입구가 좁고 살짝 높은 계단이 하칸 있었지만 휠체어를 뒤쪽부터 계단을 내려가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카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삼촌께 음료를 뭘 드실지 여쭤봤지만 삼촌은 생각이 없다고만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내 마음대로 오렌지 주스를 한잔 주문했고, 삼촌께는 목이 말라도 음료가 나오면 한 번에 다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놓으라고 당부해 드리고는 나도 지하궁전 입구로 돌아와 줄에 합류했다.(튀르키예에서는 빈 음료잔이 있으면 바로 치워버린다. 빈음료잔을 치운 이후에도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마치 아무런 주문 없이 테이블만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직원들이 계속 와서 말도 걸고 물어보게 된다. 이것 때문에 지난번에 삼촌께서 매우 부담스러워하셔서 혼자 기다리시던 카페에서 나와 여기저기 서성이신 적이 있었다.)
줄이 금세 줄어들어 많은 기다림 없이 예레바탄 지하궁전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예레바탄 사라이는 사실 궁전이 아닌 수도공급을 위한 저수지로 만들어진 곳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사를 시작했다는 이곳은 지하공간 유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기둥 336개를 놓아 천장을 받치고 있었는데, 이 기둥들이 저수지 건설을 위해 새로 만든 것이 아닌 기존 유적지에 있던 기둥들을 가져다 재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여러 시대의 유적지에서 가져온 기둥들이기 때문에 기둥들을 조각한 양식들이 시대별로 서로 다른 것이 관광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메두사의 머리이다. 저수지 가장 안쪽에 있는 두 개의 기둥에 뒤집어진 거대한 메두사의 머리 조각을 끼워서 받쳐 놓았는데, 저수지에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부적으로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화려한 조명을 껐다 켰다 하며 일종의 전시공간을 꾸며 놓았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조명이 켜지는 순간 메두사의 머리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 북적이기도 했다.
매우 습했던 예레바탄 저수지 관광을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가볍게 뛰어서 삼촌이 기다리시는 카페로 이동했고, 다시 삼촌이 탄 휠체어를 밀고 다른 일행들에 합류하기 위해 출발했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다음 목적지인 블루모스크를 향해서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삼촌은 현지 가이드님의 안내를 받아서 조금 서둘러 뒤쫓아 갔고, 블루모스크에 거의 도착해서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블루모스크 또한 계단을 올라가야 입구가 있는 구조여서 삼촌은 모스크 앞마당에서 기다리시기로 했다. 모스크로 들어가기 위한 줄에 합류하여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입구 게이트에 있는 직원이 들어가는 줄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복장이 불량한 사람(스카프를 하지 않은 여성이나 하의가 너무 짧은 사람 등)을 찾아서 스카프를 주거나, 임시로 입을 수 있는 치마를 건네주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 중에 나에게만 임시로 입을 수 있는 치마를 건네어 주었고, (반바지를 입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치마를 입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모스크 내부는 아야소피아 성당보다 다소 작은 규모였지만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의 무늬들을 정말 장관이었다. 천장의 한가운데 가장 높게 솟은 부분의 무늬들이 푸른색을 띠고 있어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것 같았지만 주황색 조명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황금색을 띠고 있어 블루모스크라는 별명이 무색해져 버린 듯했다.
블루모스크는 입구와 출구가 서로 건물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건물 반대편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촌을 모시러 어떻게 가야 하나 둘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출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삼촌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구가 반대편인 것을 알고 있던 현지 가이드님이 삼촌을 출구 쪽으로 미리 모셔다 놓았다고 했다. 모스크 관람을 마친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한낮의 더위와는 다르게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우리 가족은 다른 일행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여유 있게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저녁식사. 인근의 한국 음식점이었는데 메뉴는 닭개장이었다. 닭개장과 파전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이 나오는 구성이었는데, 한국 음식점이었지만 한국인 직원은 한 명도 없어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내부에 한자로 적힌 문구들이 몇몇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원래는 중국음식점이지만 우리 일행을 위해 한식을 준비해 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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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부모님과 삼촌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케밥을 먹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식사를 하시는 중에도 확실히 더 많이, 잘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오랜만에 잘 먹었다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일 점심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케밥을 드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으셨던 부모님과 삼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주변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삽십여분 정도 주변 기념품 가게들을 조금 둘러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한 물건은 없었다. 주변 교통 체증이 심하여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가질 수 있었던 쉬는 시간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이스탄불 탁심거리였다. 일행 각자가 탁심거리를 자유롭게 관광하는 자유시간이 주어질 예정이다. 탁심 거리가 이스탄불의 명동과 같은 장소라는 소개를 받았던 터라 버스가 우리를 큰 대로변에 내려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버스는 아주 넓은 지하도의 중간에 위치한 승하차 공간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바로 탁심거리가 시작되는 포인트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삼촌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 바로 앞쪽에 위치한 약간 허름해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느낌은 강해졌고 곧 엘리베이터가 고장으로 운행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바로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안심했지만, 혼자서 몇 걸음 걷기도 힘들어하시는 삼촌은 당연히 계속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기가 쉽지 않았다. 삼촌을 억지로 잡아끌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성공하였지만 움직이는 계단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삼촌의 다리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앞에는 벌써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지점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고, 삼촌을 어떻게 내려드려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대책을 세울 틈도 없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고, 삼촌은 바로 내리시지 못해 다리가 걸려 넘어질뻔한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며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이런 위기를 넘길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이번에도 또 한 번 힘든 상황을 무사히 넘겼구나 하는 생각. 며칠 전 한국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혼자서 잘 걸으시던 분이 어떻게 한걸음 걷기도 힘들어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 안쓰러움. 짜증들. 이번 여행은 한국에서 한번 여행오기 쉽지 않은 먼 곳인 튀르키예에 왔다는 특별함도 있었지만, 이전에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니 느낄 필요가 없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다가오는 특이한 경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여행도 쉽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뼈저리게 몸소 느끼게 된 여행이었고, 나의 부모님, 삼촌이 이제는 정말 많이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에 다시 모이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공지사항을 듣고 각자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탁심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큰길의 가운데에는 트램도 다니고 있었지만, 대부분 완만한 평지로 되어 있어서 이동하는데 크게 어려운 부분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길거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큰길을 따라 천천히 관광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상점들이 끝없이 자리 잡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활기찬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상점들은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어, 부모님과 삼촌은 크게 흥미를 느끼시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삼촌께서 화장실을 가셔야겠다고 하셔서, 거의 30여분을 화장실을 찾아 돌아다녔고 결국 어느 쇼핑몰에 들어가서 급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지친 우리 가족은 쇼핑몰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었는데 한국어를 공부하는 튀르키예 사람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와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잠시 쉬고 나서 쇼핑몰을 빠져나와 다시 거리를 따라 모임 장소로 천천히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번화가가 그렇듯이 중심부인 탁심 광장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점점 더 화려함은 없어지고 거리도 점점 어둡고 한적해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홍합밥을 파는 노점상이 보여 한번 먹어볼까 했지만 어머니가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신 데다 잔돈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모임장소에 도착했고,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도 한잔 더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모이는 장소로 돌아왔다.
모든 일행이 모이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 뒤 가장 마지막으로 한국, 현지 가이드님이 도착했고 여기서부터 갈라타 다리까지 야경을 보며 내리막길을 내려갈 예정이라고 안내해 주셨다. 다만, 나이가 드신 분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어서 현지 가이드님이 우리 가족은 조금 편히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겠다고 설명을 해 주셨다. 다른 사람들은 구불구불 휘어진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를 시작했고, 우리 가족은 현지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역 안의 플랫폼으로 들어서니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철 레일이 평지를 따라 연결된 것이 아니고 경사가 급한 내리막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플랫폼도 경사가 있었다. 당연히 터널을 통해 이동하는 트램도 기울어진 채로 움직였고 한참을 내려가 우리를 내려 주었다.
갈라타 다리는 우리나라의 잠수교처럼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쪽에는 도로와 인도가 있고, 아래쪽에는 많은 레스토랑들이 있어 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였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갈라타 다리의 아래쪽 중간쯤 위치한 음식점이었는데 갈라타 다리의 위층에서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다리에 도착했지만 결국 또 계단을 만나는 바람에 추월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리의 중간쯤 있는 계단으로 바로 내려가 레스토랑으로 먼저 이동했고, 나는 현지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다리를 완전히 건너야 나오는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온 후에 다시 다리 중간쯤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야 했다. 남들보다 조금 멀리 돌아서 이동해야 했지만,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운 시간이고 다리 위에 바람도 많이 불어서 제법 시원한 느낌에 즐겁게 이동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 일정만 버티면 숙소에 가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움직였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제법 넓은 인도가 있었는데,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리의 위층은 수면에서부터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다리의 난간게 붙어 서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 줄을 내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보니 물고기들을 제법 잡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엄지손가락 두 개를 겹쳐놓은 정도의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제법 멀리 돌아서 가야 했기에 조금 급하게 이동하느라 여유 있게 구경은 못했지만 야경을 즐기며 다리를 건널 수 있었고,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다시 다리의 중간쯤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안주를 곁들인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상태였다. 나도 얼른 앉아 잠깐이나마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삼촌이 레스토랑 안의 좁은 통로를 지나 화장실에 다 오시는 것을 도와 드리고 나서야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너무도 갈증이 나서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맥주를 마시고 나면 숙소까지 삼촌을 모시고 가는데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지만 종일 휠체어를 끌고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 나니느라 힘들었던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만큼은 맥주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많이 마실 수는 없었지만 시원하게 마신 맥주 한잔이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느낌이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멍하니 다리 바깥쪽의 물결을 보고 있었는데, 뭔가 반짝거리는 세로줄들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까 다리 위쪽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아래로 내리고 있던 낚싯줄이었다. 여러 개의 낚시 줄이 쉬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장면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조금 여유 있게 쉬고 나서 다리 아래층의 길을 따라 다시 다리를 건너갔다. 나와 삼촌은 이미 지나왔던 길이었기에 조금 수월히 이동할 수 있었고 다리 근처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씻고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삼촌이 씻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침대에 누우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잠이 들 수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는 시점에는 너무도 불편하기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익숙해져 버려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벌써 튀르키예에서의 마지막 밤이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