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살린 조선 소의 근대사 page24~25
사료와 사육법
소의 사료는 보통 굵은 사료(무게에 비해 부피가 큰 사료)와 농후 사료(무게에 비해 부피가 작은 사료)로 나뉜다.
작물, 영양가가 높은 사료로 건초(건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조 사료 외에, 소를 용역을 주는 시기나 조 사료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콩류(주로 콩), 곡류(주로 보리, 쌀겨) 등의 농후 사료를 첨가해 주기도 했다.
근대 이전에는 주로 조사료를 먹이거나 젖소의 유량 증대 등 생산성 향상이 요구되면서 점차 농후사료(옥수수, 콩 등)의 비중이 높아졌다(앞의 츠다 '소와 일본인').
히즈카 쇼타(肥塚正太)는 조선산 소의 일반적인 사료로 볏짚, 수수짚, 콩류의 줄기와 껍질, 들풀, 청초, 건초 등을 꼽았다.
건초(건초)를 꼽고 있다. 이러한 조사료 외에 소를 연일 사육하는 시기나 조사료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콩류(주로 콩), 곡류(주로 보리, 쌀겨) 등의 농후사료를 첨가해 주기도 했다.
다음으로 소의 사육법〈사육법〉의 실제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자(히즈카 『조선의 소』, 모리타 『조선의 소』참조).
야생초가 자라는 시기에는 매일 소를 외양간에서 꺼내어 풀밭에서 푸른 풀을 먹이는 '방목'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강가나 강변에서 소를 연결한 긴 그물을 나무나 말뚝에 묶어 하루 종일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였다. 이를 '연목(連牧)'이라고 한다.
또한 소를 쫓아다니며 풀을 먹이는 '추목'이라는 방식도 있었다. '연결목'과 '추목'은 주로 6, 7세 '목동'의 일이었는데, 소의 사육법(사육 방식)의 실제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자(히즈카 『조선의 소』, 모리타 『조선의 소』참조).
순한 조선 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소 쫓기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이루어졌다.
야생초가 없는 겨울철에는 주로 우사(주택 옆이나 별채에 있는)에서 사료를 '하루 두세 번 정도' 준다.
볏짚, 수수깡, 건초 등을 6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로 자르고, 콩 찌꺼기나 쌀겨 등을 넣어 가마솥에서 끓인 후, 뜨거운 국물과 함께 사료통에 옮겨 먹인다.
'사료통'은 사료를 먹이기 위한 고정된 용기를 말한다.
혹독한 추위가 심한 조선 북부에 비해 추위가 덜한 남부 지방에서는 물에 담근 사료를 한 번 주물러서 먹이기도 했다.
모리타는 “사료를 끓이는 대신 뜨거운 물을 붓고, 또 뜨거운 물이나 물을 부어 잘 비벼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이는 것은 소가 사료를 쉽게 섭취할 수 있게 하고, 영양과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그 이점에 대해 언급했다.